운명은 순간인거야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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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은 순간인거야 <67>
  • 한지윤
  • 승인 2019.03.13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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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기자 한지윤의 기획연재소설

미술적 가치는 잘 알 수 없으나 구도나 그린 필치가 마음에 든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 그림을 설교의 자료로 곧잘 쓰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서른이 넘을 때까지 부모를 도와서 나자렛에서 평범한 목수생활을 하면서 지내셨습니다. 그 매일의 생활을 조금도 소홀히 하지도 않았거니와, 부탁을 받은 일은 무엇이든지 수선해 주었고, 작은 것 이라도 만들어서 생활을 해 왔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큰일을 할 자격이
없다는 것이지요.“
“그렇군요. 그것도 중요한 일이겠죠.”
“작은 일이란 큰일에 연결되는 것이지요. 큰일이란 작은 일로써 지탱되는 것이고. 간단한 일이지만 철칙 같은 것입니다.”
“이 그림에서 예수의 손은 더럽혀져 있군요. 목수 일보다는 농사일이라도 한 것처럼 말입니다.”
한 박사는 자기가 새삼스레 발견한 이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
“박 여사는 입은 좀 험한 편인데…… 이 그림을 몹시 악평하고 있지요. 손을 이 정도의 리얼리즘으로 더럽게 그린다면 얼굴도 더럽게 그려야 한다고 말이죠. 얼굴만 신답게 그린 것은 이상하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성모마리아도 살림에 찌들린 옷이나 머리 수건을 하고 있어야 어울릴 것이라고……”
“그러나 신의 손이라도 일할 때는 더럽혀지는 법입니다. 만일 더럽혀지지 않는다면 일할 수 없는 것이니까요.”
한 박사는 신부의 말을 일부러 무관심하게 듣는 척했다.

“대단히 좋은 그림을 보여 주셨습니다.”
한 박사는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어떤 성당 이었나 하고 궁금했습니다. 이렇게 와보니 오기를 잘했다고 생각이 듭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토요일까지 연락을 드리지요.”
마테오 신부는 해가 무척 길어졌다 싶은 앞뜰까지 한박사를 전송해 주었다.
한 박사가 항도 성당의 마테오 신부를 만나고 돌아온 날, 아내인 윤미는 집에 없었다. 딸 유리가 현관에서
“이상구란 남자가 한 시간 전쯤에 찾아 왔어요. 난 문 열어주지 않았어.”
하고 대뜸 말했다. 혼자 있을 때는 누가 와도 문을 열어 주어서는 안 된다고 일러두었기 때문이었다.
“이상구? 모르겠는데.”
“아빠는 언제쯤 돌아오느냐고 자꾸 묻기에 저녁때에는 올 거예요, 라고 말했더니 그럼 병원 대기실에서 기다린다고 했는데……”
“엄마는?”
“몰라. 아빠 나가고 곧 차가지고 나갔어.”
한 박사는 병원으로 가 보았다. 환자 대기실에 들어가자 초여름인데도 검정색 양복을 입은 반백의 남자가 슬리퍼를 신은 다리를 꼬고 앉아 주간지를 읽고 있었다.
“이상구 씨 입니까?”
“네, 선생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남자는 반갑다는 표정으로 일어섰다. 한 박사는 아무래도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실례지만 어디서 뵈었던가요?”
“언젠가 문교위원회의 연수회에 오셔서 강연해 주십사하고 선생님을 찾아뵈었던 이상구입니다.”
한 박사는 비로소 생각이 떠올랐다. 시의회에 문교위원회라는 것이 있다. 그 멤버는 매월 연수회라는 것을 하고 있었다. 그 월례회에 ‘위생보호법’ 이란 연제나 아니면 모체의 건강에 대해서 유익한 이야기를 해 달라는 청을 하러 온 사람이 있었는데, 그때 이상구라고 자기소개를 했었다. 그 당시 ‘선생님 사시는 곳이 바로 여기입니다.’라고 한 바로 그 장본인이었다. 많은 산부인과 의사 중에서 아마도 이 이상구 씨는 한 박사의 병원 간판을 기억하고 있었거나 아니면 누구에게 들었거나 하고 찾아 왔을 것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선생님께 청이 있어서 찾아뵈었습니다.”
상구는 주저주저 하는 태도로 말하고 있었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지금 외래환자도 없고 하니 이야기해 보십시오.”
대진인 천세풍 의사는 아마 별일이 없을 때에는 자기 방에 있을 것이다. 한 박사는 텅 빈 외래의 진찰실에서 주저하는 이상구를 환자들이 앉는 자리에 앉으라고 권했다.

“오늘이 일요일인데, 무슨 급한 용무가 있으신 모양이지요?”
상구 씨가 휴일인데도 전화도 없이 찾아온데 대해 한 박사의 말에는 가벼운 저항감도 포함해 있었다. 이런 섬세한 점에 대해 이상구는 전혀 무관심한 것 같았다.
“실은 좀 더 빨리 의논드리러 올까 했으나 말씀드리기도 어려운 일이 돼서 이렇게 늦었습니다.
한 박사는 잠자코 이상구의 말만 듣고 있었다.
“제 생질녀인데요. 이 아이가 어릴 때 열병으로 귀가 난청이 되었지요. 신체의 발육도 늦고, 지능도 좀 낮은 편입니다. 할 수 없어 중증심신장애자시설에 넣었습니다.”
“몇 살인가요?”
“스물셋이나 됐지요. 지난번에 전화가 걸려 와서 알았는데, 이 아이가 임신을 했다는 겁니다. 기막힌 일이지요. 임신을 알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경과된 뒤라서 눈에 띄게 배가 불렀다고 하더군요.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다는 것은 너무 무관심한 처사가 아니었느냐고 나도 화를 냈지만……”
이 시의원이란 사람도 좋지 못한 일은 모두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성격을 닮은 듯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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