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것도 없는데 왜 행복한 사람이 별로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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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것도 없는데 왜 행복한 사람이 별로 없을까?”
  • 김옥선 기자
  • 승인 2019.03.30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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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린내 나고 단내 쓴내 있는 대로 풍기는 날것 그대로의 세계, 거추장스러운 껍데기를 뒤집어쓰기 전 심장에 아로새겨진 그 신령스러운 것이 이끌어가는 삶이 진짜 삶이에요. 당신에게서 배웠어요, 당신을 사랑해요. 나 스스로밖에 모르고 내 생각이 옳다고 생각하던 나를 이만큼이라도 사람 꼴로 만들어준 것이 바로 당신들이랍니다’고 작가의 말에서 밝히고 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김해자 저 | 삶이 보이는 창 | 1만 3000원

김해자 시인이 쓴 민중구술사 ‘당신을 사랑합니다’는 11명의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날 것 그대로의 삶을 기록한 책이다. 이들은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다. 우시장에서 일하는 상인, 노동자, 해녀, 농사꾼, 이주노동자 등 모두 우리와 함께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이웃들이다. 그 평범함이 오히려 비범함으로 다가오는 것은 순전히 기록의 힘과 작가의 필력에서 오는 힘이다.

소설가 윤영수는 추천의 글에서 “묵묵히 사는 나무, 그저 제 할 일 하는 나무, 삭풍이 불고 때로 눈보라쳐도 잎도 나오고 꽃도 열매도 맺는 믿음직한 우리들의 나무가 당신이라고 말하는 시인 김해자가 이들에게 주는 한마디의 위로, 가슴에 맺힌 뜨거운 연서다. 우리 개개인은 모두 땅에 뿌리를 박고 이 시대를 견디는 나무 한 그루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한데 모여 숲이다.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사는 숲의 운명으로 우리는 함께 묶여 있다”고 말한다.

마장동 우시장 윤주심 씨는 1937년 충남 장항에서 태어나 서울 용두동, 종묘, 청계 등지에서 노점상을 하다가 1974년부터 지금까지 마장동 우시장에서 일하고 있다. 새벽 4시면 출근해 한겨울이면 얼음물에 손 넣고 일하기 위해 소주 두 병은 너끈히 마신다는 윤주심 씨 이야기는 자식들 위해 자신의 몸 상하는 줄도 모르고 살아온 우리 어머니의 이야기다.

인천 배다리 헌책방거리에서 헌책방을 운영하며 ‘시가 있는 다락방’을 열고 시인을 초대해 시낭송회를 여는 아벨서점 곽현숙 씨는 “그가 가는 길, 내가 가는 길, 모양새는 다르더라도 나는 그 사람 속에서 최고의 것을 봐. 그가 지향해가는 뭔가에 취하는 것이 좋아. 그 사람은 동그라미이고 난 네모인지도 몰라. 난 어릴 때부터 책만 읽었어. 그림이고 음악이고 다 읽어버려. 그리고 읽은 대로 책이 가자는 대로 살아”라고 말한다.

책은 어쩌면 거대한 나무로 만든 숲인지도 모른다. 그 숲 안에서 숨을 쉬고 내쉬면서 책의 향기가 내 것이 되고 책이 뿜어내는 숨결이 내 피부가 되어 나를 살아 움직이게 만드는 힘이 된다. 그래서 곽현숙 씨의 삶이 더 나에게로 다가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반찬공장에서 일했던 심정희 씨는 1938년 경기도에서 태어나 한국전쟁으로 양부모를 잃었다. 고아원에서 아이를 돌보는 것을 시작으로 식모, 파출부, 농사 봉제 일을 하다가 눈이 어두워진 이후로 반찬공장에 다녔다. 2003년 뇌종양으로 돌아가셨다. 심정희 씨는 “행복이 뭣이냐고? 가난해도 열심히 살고 욕심 부리지 않고 현재에 만족하는 거, 그기 바로 행복이여. 별로 어려운 것도 없는디 왜 행복한 사람이 별로 없으까?”라고 말한다.

행복한 삶을 위해 많은 이들은 현재에 안주하지 말고 미래를 준비하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의 미래는 지금 현재를 열심히 살아가면 행복한 미래가 선물처럼 주어지는 것은 아닐까.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의 이웃들에게 이러한 삶의 진리를 듣는 일은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

도종환 시인은 “이 책에 나온 사람들은 평생을 쉬지 않고 일했고 하루하루 땀 흘리며 성실하게 산 사람들이다. 모두 착한 이들이다. 모두 가난한 이들이다. 바보 같은 이들이다. 몸이 부서져라 일하다가 육신에 병이 들고 몸뚱이가 망가져도 나보다 남을 더 걱정하는 이들이다. 그래서 없이 살고 어렵게 살았어도 행복하게 살았다고 말하는 이들이다. 그들 모두가 우리 아버지고 어머니고 자매들이다”고 말한다.

우리는 저마다 존재 그 자체로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있다. 그 생생하고 가치 있고 절절한 삶의 이야기들을 담아낸 민중열전 ‘당신을 사랑합니다’가 의미 있게 다가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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