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은 순간인거야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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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은 순간인거야 <73>
  • 한지윤
  • 승인 2019.04.24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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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기자 한지윤의 기획연재소설

심리적인 요소가 가미된 일시적인 폐뇨증에 물소리를 들려줌으로써 해결하는 방법이었다.
한 박사는 그 날의 보고를 수석간호사에게서 받고 있었다.
“저는 아줌마에게 ‘축하해요.’라고 말해 버리고 웃었어요. 수석 간호사도요.”
영은이는 재미있었다는 듯이 재잘거리면서 따라왔다.
“선생님 전 말예요. 지금 와서 자기에게 주어진 건강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조금은 알 것 같아요. 지금까진 그렇게 관심도 없었는데 말예요.”
“그래. 걸을 수 있다는 것, 볼 수 있다는 것, 들을 수 있다는 것, 말할 수 있다는 것, 먹을 수 있다는 것, 정상적인 배설을 할 수 있다는 것 등등……”
“선생님 전 말예요. 민선이 아줌마 이야기를 할 생각이 아니었어요. 그 보담 선생님께 여쭈어 볼 것이 있는데요.”
“뭐지?”
“선생님, 사모님 일 알고 계세요? 우리 아빠와 자주 만나고 있다는 것 말예요.”
“글쎄. 전부 알고 있다고 할 수는 없겠고 전혀 모른다고 할 수도 없어.”
“그대로 두시는 거예요?”
“어떻게 하면 좋지? 다 큰 어른이 나가서 하는 짓을 쇠사슬에 꼭 매어둘 수도 없고……”
“전 말예요.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어요. 어릴 때부터.”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고? 큰 일 날 소리. 그건 병신이 돼.”
“우리 엄마도 어른이 된다면 가엾어 라고 하곤 했어요.”
“턱도 없이 위험한 생각이군. 어른이 안 된다는 것은  완성이 안 된 것과 똑같아.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아 먹지 않고 있는 건가?”
“네에?”

영은이는 속마음을 꿰뚫어 보았나 싶어선지 놀랐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건 아니지만요.”
“먹지 않으면 기력이 없는 늙은이 같은 어른이 돼요. 먹으면 팔팔한 어른이 돼지.”
“지금까지 그런 것은 생각지도 못했는데……”
영은이는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는 바스트가 자랑이래요. 옛날부터 그랬다면서 그 나이가 돼도 처지거나 체형이 흐트러지지 않는다고 자랑하고 있어요. 전 그런 것이 싫어요.”
“여자들이 나이를 먹지 않는 방법이 하나있어. 생활을 건강하게 긴장을 갖고 일하는 것이지.”
“일하는 거?”
“그래, 불면증 같은 건 들판 일을 시켜봐. 백퍼센트 나을 거야. 이 근방에서 일하고 있는 농가의 아주머니들은 서울의 주부들보다는 형편이 없을지는 모르지만 자연에서 많은 건강의 혜택을 받고 있지.”
한 박사는 자기의 처신이 비겁하다고 생각할 때가 가끔 있다.
얼굴을 직접 대하고는 거절 못하는 주제에 상대 쪽에서 그것만 잊어 주었으면 싶을 때가 있는 것이다. 마음이 내키지 않다고 생각되는 것도 좋다고 승낙을 해 버리는 버릇도 있다.
마테오 신부가 신도의 외손녀가 심장수술을 받기 전에 세례를 받는데 동행하기를 권했을 때만해도 못가겠다고 거절을 해 버렸으면 될 것을 가도 좋은 척 말하고 말았다. 그 당시의 분위기나 기분에서 같이 가겠다고 승낙을 하기는 해 버렸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한 박사에게는 신이나 부처에 대한 신앙심보다는 두려움이 더 컸다. 절이나 신을 모신 사당 옆에도 두려워서 가까이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한 박사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사람의 외손녀의 세례에 간다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라 생각되었다.
마테오 신부로부터 아무런 연락이 없기를 마음속으로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이 일은 마테오 신부가 잊어버려 주었으면 싶었다. 그렇다고 해서 자기 쪽에서 먼저 거절할 용기도 없었다.
은근한 기대와는 달리 약속한 전 날인 금요일 오전에 신부가 전화를 걸어왔다. 자기가 차로 모시러 가겠다고 하는 말도 덧붙여 말해왔다.
“할 수 없군. 소아병원 견학이라도 하고 와야겠어.”
한 박사는 대진인 천 의사에게 말했다. 신부는 비가오고 있는 날씨인데도 아주 정확하게 약속 시간에 나타나서 납치라도 하듯 한 박사를 그 고물 자동차에 밀어 넣고 떠났다.
“아침에 박 여사와 전화를 했는데 오늘 오후에 선생님과 함께 간다고 말했더니 그럼 이 말 전해주면 좋겠다고 말하던데……”
마테오 신부가 차를 몰면서 말했다.
“그래요?”
“지난번에 의논한 아이, 낳거든 토마스씨에게 꼭 의논해 주면 좋겠다고……전하면 알거라고 하던데.”
“그래요. 정말 상관없을까.”
한 박사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어떤 일인데요?”
한 박사는 신자는 아니었지만 신부에게라면 거리감 없이 죄다 이야기를 해도 좋다고 생각했다.
“귀가 난청으로 지능도 낮은 신체장애의 아가씨가 구개파열에다 또 중증의 간질환자의 청년에게서 임신을 당한 케이스인데, 여자의 부모 쪽에서는 손자까지 떠맡을 수는 없다고 하고 있지요.”
“그렇겠군요.”
“벌써 임신 8개월이 됐습니다. 어제 진찰을 받으러 왔는데 아무래도 예정보다는 빨리 낳을 것 같고…… 그런 여자이니 그 말 전부 신용할 수 없지만.”
“순조로운가요?”
“극히 순조로워요. 부기가 좀 있기는 하지만 귀가 들리지 않아서 종이에 싼 음식을 먹지 말도록 써 주었더니 ‘넷! 넷!’하고 초등학교 1학년처럼 큰 소리로 대답을 하더군.”<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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