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은 순간인거야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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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은 순간인거야 <74>
  • 한지윤
  • 승인 2019.05.01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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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기자 한지윤의 기획연재소설

토요일인데도 불구하고 비가 와서 그런지는 몰라도 길이 비교적 한산해서 예정대로 차를 곧장 몰수가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차는 녹음으로 덮혀 있는 소아병원의 정문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신부님, 부탁이 있습니다. 난 아무 관련도 없는 사람인데 종교적인 의식에 참석한다는 것이 쑥스러워서…… 끝날 때 까지 여기서 기다렸으면 싶습니다. 그 후에 견학을 시켜주십시오.”
“좋습니다. 편할 대로 하십시오. 세례식은 10분이면 충분합니다.”
한 박사는 마테오 신부가 세례식을 하는 동안에 가지고 온 문고판 책이라도 읽을까 하다가 머리에 들어갈 것 같지도 않아서 그만 두었다.
병원에 와서 의사의 진찰을 기다리고 있는 환자가 된 기분으로 대기실에 출입하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토요일의 면회시간이라서 그런지 문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거의 젊은 어머니나 아버지들로서 유치원의 모자회나 부형회의 회원이 될 나이의 젊은 사람들이었다.
한 박사는 문득 윤미에게 불행을 가져온 것은 이런 병원에 입원한 자식도 겪어보지 않고 극히 순탄한 생활을 해 온 탓에서 그런 것이 아닌가 하고 느껴 보았다. 한 박사는 만일 이런 말을 한다면 여기 있는 아이들의 부모로부터 무슨 사치스런 말이냐고 나무람을 받을 것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윤미라는 여자는 자기에게 주어진 행복에 감사할 줄도 모르는 분별력이 없는 여자였던 것이다.
비가 계속 오고 있었다. 제 자식을 보러오는 젊은 어머니들의 접어든 우산 끝에서 눈물과도 같은 물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입술연지를 진하게 칠한 어머니도 있었고, 창백한 얼굴로 머리에 빗질도 하지 않은 어머니도 있었다.

모두 다 이들이 지고 있는 운명의 괴로움을 생각하면 인권이니, 자유니 하고 떠들고 있는 것도 우스개 같은 일이라고 한박사는 생각하고 있었다.
국가가 아무리 치료를 해 주어도 선천적인 기형은 낫지 않을 경우가 많다.
병을 혼자서 짊어지고 이 세상에 태어난 아이들은 자기의 책임은 아니다. 자기는 모르는 일이다. 그래도 괴로운 운명은 혼자 달게 받아야 한다, 이것도 운명인가?
생각보다 빨리 신부는 흰 가운을 입은 의사와 함께 한 박사 앞에 나타났다.
“부원장님이신 김철수 선생님입니다.”
한 박사는 웃저고리에서 명함을 찾았으나 가지고 오지 않은 것을 알고 당황해 했다.
“아니, 좋습니다.”
김철수 부원장은 웃으면서 말했다.
“신자 분의 일은?”
한 박사가 신부를 보며 물었다.
“끝났습니다. 나중에 천천히 방문하겠다고 말해두고 왔습니다.”
“제 방으로 가십시다.”
신부와 한 박사는 운동선수처럼 몸집이 큰 김철수 부원장을 따라서 복도를 걸어갔다.
신부와 한 박사는 부원장실에서 차를 대접받았다. 이야기는 부원장과 신부에게 맡겨둔 채 한 박사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흘려들으면서 접대용으로 내어놓은 과일을 먹었다.
얼마 후 세 사람은 부원장실에서 나와 병동 쪽으로 갔다. 붉은 색종이로 꽃을 오려서 붙인 그림이 붙어있는 복도까지 왔을 때였다. 신부를 찾고 있던 젊은 여자를 만났다. 지난번 성당의 사제관에서 만난 적이 있는 신정길이라는 분의 딸인 성 싶었다.
“신부님. 할머니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요. 조금 있다 가죠.”

“할머니는 신부님이 어디 계신지 모시고 오라고 하시던데요.”
“그럼, 신정길 방으로 먼저 가는 것이 어떨까요?”
하고 한 박사가 제안을 했다.
우연이랄까, 아니면 좋은 기회라 해야 할지 신정길씨 손녀의 입원실은 복도의 맨 끝방이었다.
견학을 한다면 거기서 시작해도 상관없는 순서가 된다.
신정길의 손녀는 그 방 맨끝 쪽인 침대에 누워 있었으므로 한 박사는 가까이 다가가서 여윈 여자 아이의 머리를 어루만져 주었다.
“잘 됐네. 열도 내리고. 수술을 받을 수 있게 되어서.”
“네, 덕택으로요. 모두 수술 받는 것을 부러워하고 있어요. 여기 와서 보니 너무 욕심낼 수도 없어요. 우리 미정이 같이 나아서 나갈 수 있는 아이도 많지는 않아요.”
사제관에서 만난 신 씨의 젊은 할머니는 목소리를 죽여서 말하고 있었다.
세례에 입회한 사람은 그녀와 아기 엄마와 그 외에 아가씨 한명 세 사람 뿐이었다.
한 박사는 수술을 기다리고 있는 미정의 옆 침대에 시선이 갔다. 엎드려 두 다리를 파닥파닥하고 두드리고 있는 어린아이는 어디가 아픈지 알 수가 없었다.
아이는 얼핏 보기에 7,8개월이 된 듯했다. 걸음마를 하기 직전의 자연스러움을 보이고 있었다. 기저귀 커버 위에 깨끗하게 빨아 입힌 내의가 눈길을 끌었다. 이 아이는 마치 돌 위에 올려놓은 자라새끼처럼 다리를 파닥파닥 놀리고 있었다. 울지도 않았고 혼자서 놀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아이는 어떤 병이죠?”
한 박사는 가볍게 팔짱을 끼고 김철수 부원장에게 물었다.
“몽고증과 유사한 증상이라고 되어 있습니다만, 아직 염색체의 검사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부원장은 아이를 바로 눕혔다. 눈과 눈 사이가 비정상적인 간격을 한 눈을 반짝이며 부드러운 눈매로 천정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박사는 아이의 얼굴을 보자 이내 병 증상을 알 수 있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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