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의 천주교 순교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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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의 천주교 순교 성지
  • 전용식 기자
  • 승인 2007.09.20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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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성은 예부터 교통, 체신, 행정의 중심지요. 국방의 요새지로 내포의 사도 이존창에 의해 복음의 씨앗이 전해진 곳이다.
 홍성읍의 한복판에 위치하고 있는 홍주읍성은 전체가 순교 현장이다. 군청, 객사, 동헌 등 구석구석이 처형지로 사용되었으며 기록상 충청도에서 공주 다음으로 많은 순교자를 배출했다.
천주교인들에 대한 탄압이 심했던 고종 때 흥선 대원군이 1866년 병인양요와 1871년 신미양요에서 승리하고 그 해 서울 종로와 전국 각지에 세운 척화비(斥和碑)는 구항 면사무소 건너편 산자락에 서 있다.
 지난 2일 서울 여의도성당의 순교지 성지순례에 대한 본지의 기사를 보고 많은 홍성군민들은 ‘처음 알게 되었다’, ‘자세히 알고 싶다’는 요청이 쇄도하여 특집으로 홍주성에 관련한 천주교 성지를 소개하고자 한다.[편집자 주]
 
 ▶목사의 동헌(현 안회당 서남쪽)
이곳은 조선시대 때 홍주 목사(정3품)의 동헌이 자리 잡고 있던 곳이다. 본래의 동헌(즉 근민당)은 현존하는 동헌(즉 안회당, 사적 231호)의 서남쪽에 위치해 있었다고 한다. 박해  때 목사의 동헌 앞에서는 특히 전주교의 우두머리로 지목을 받은 지도층 신자들이 문초와 형벌을 받았다.
 
▶홍주진영(현 한국통신 건물 자리)
홍주 진영(즉 충청도 전영前營)의 동헌(경사당)은 지금의 동문(즉 朝陽門) 서쪽에 위치한 한국통신 건물 자리로 추정되고 있다. 병인박해 때의 순교자들은 대부분 이곳에 있던 영장의 동헌 앞으로 끌려가 문초를 받았다.
 
▶홍주옥터(구 홍성 법원 및 검찰청 자리)
구 홍성 법원 및 검찰청 자리는 조선시대 홍주 옥이 있던 곳이다. 천주교 박해가 계속되는 동안(1791-1869) 홍주로 끌려온 천주교 신자들은 갖은 문초와 형벌을 받으면서 이곳 옥에 수감되어 순교의 길로 나아갔다.
 
▶홍주 저자거리(홍성군청 앞)
홍주의 저자거리(즉 구장터)는 관아로 끌려갈 때, 처형되기 전 조리돌림을 당했던 곳이다. 지금의 홍성군청 앞이 구장터 저자거리이다.
 
▶홍주 북문교 옆 참수터
홍성읍 북문교 옆(북문교 서쪽)의 월계천변. 1801년의 황일광과 1868년의 유 마르타(교수형의 가능성도 있음)가 참수형을 받은 장소는 지금의 홍성읍 북문교 옆(북문교 서쪽)의 월계천변으로 추정된다. 이곳은 옛 홍주성 북문 밖 20m 지점인데, 월계천이 북문교와 만나는 곳으로 일반적인 처형지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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