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보다 ‘피’가 무서운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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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보다 ‘피’가 무서운 사회
  • 편집국
  • 승인 2007.11.27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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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는 남들 앞에서 말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많은 사람이다. 그러나 화려한 말만 한다고 해서 훌륭한 리더가 되는 것은 아니다. 리더가 유연한 자세로 조직구성원들의 의견을 경청한 후, 조직의 진퇴여부를 분명하게 결정하고 그에 대한 무한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일 때 위대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런데 경청은 고도의 테크닉이 요구된다. 우선 화자의 말에 깊은 관심을 갖고 적극적인 자세로 경청해야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또 듣는 사람이 화자가 던지는 메시지에 집중하면서 끝까지 경청하는 자세를 보일 때, 화자는 비로소 청중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갖게 된다.

만약 리더가 조직구성원들의 얘기를 잘 들어주고 자신의 불필요한 말을 아낀다면, 그 조직은 리더와 구성원들간에 아주 견고한 휴먼-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리더가 정립해야 할 경청의 바람직한 모델은 ‘명창名唱과 고수鼓手’의 관계다. 판소리에 ‘일(一) 고수, 이(二) 명창’이란 말이 있다. 그것은 “얼쑤!”와 같은 추임새를 통해 명창의 기를 돋우고 관객들에게 흥과 재미를 가미해 주는 고수가 명창보다 더 중요하다는 의미다. 사실 고수의 맞장구가 없다면, 유명한 명창의 노래도 김빠진 사이다에 불과하다. 그런데 여기서 리더는 명창이고, 조직구성원은 고수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앞으로 어느 누구도 조직구성원들의 협조를 받지 않고서는 리더로서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시사한다.

참고로, 한국인들이 즐겨하는 화투놀이의 변천을 살펴보자. 화투놀이는 민화투, 나이롱뽕, 고스톱 순으로 발전해왔다. 민화투에서는 20점짜리 광(光; 삥광, 삼광, 팔광, 똥광, 비광)이 최고이고, 피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이때 광은 리더(임금)를 나타내고, 피는 조직구성원(백성)을 의미한다. 그러나 나이롱뽕에서는 삥(1)’부터 ‘비(12)’에 이르기까지 7개의 연속적인 숫자 모음만 중요할 뿐, 광과 피 사이에는 어떠한 차이도 인정하지 않는다. 이는 리더와 조직구성원들 사이에 평등한 사회가 도래했음을 시사한다.

한편, 고스톱의 세계로 들어오면 피의 위력이 하늘을 찌르고도 남을 정도다. 고스톱에서 가장 무서운 형벌은 ‘피박’이다. 피를 6장 이상 확보하지 못한 사람은 우승자가 낸 점수의 2배에 해당하는 벌점을 감내해야 한다. 또 고스톱의 점수산정에는 광, 10끗, 5끗, 피의 차이가 일체 반영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노름꾼들이 제일 먼저 집어내버리는 화투가 비광이다. 민화투에서 상종가上終價를 자랑하던 비광의 처지가 하루아침에 ‘유효기간이 끝난 극장 초대권’처럼 따라지신세로 전락했고, 오랫동안 천덕꾸러기였던 피가 최고로 대우받고 있다.

고스톱의 놀이가 보편화된 지금은 백성의 힘이 임금의 권력보다도 훨씬 더 무서운 사회다. 이런 때에 임금이 백성들로부터 역성혁명의 대상으로 지목받지 않으려면 무엇보다도 백성들을 떠받들어 모시는 서번트servant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이 논리는 오늘을 살아가는 리더와 조직구성원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그런데도 우리 주변에는 권위주의에 기초한 훈계형의 반말 투로 자기 말만 하고 조직구성원들의 얘기를 무시하는 리더들이 적지 않다.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진언의 비법을 찾아라!

‘피가 광보다 세다.’고 해서 조직구성원들이 리더를 함부로 대해도 괜찮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럴수록 조직구성원들은 리더에게 더욱 더 말조심을 해야 한다. ≪한비자≫를 보면, ‘호랑이가 개를 굴복시킬 수 있는 것은 무시무시한 발톱과 강력한 어금니 때문이다.’라는 글귀가 나온다. 어느 조직구성원이 리더가 추구하는 이념(또는 철학)에 정면으로 도전하거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힐 경우, 리더는 언제든지 자신의 권력이나 파워를 이용하여 위해危害을 가할 수 있다.

리더와 의견이 상충될 경우, 조직구성원들은 부드러운 태도로 최대한의 예의를 지켜가면서 문제점을 지적하고 합리적인 대안까지 제시하는 것이 바람직스럽다. 대안이 없는 경우에는 오히려 침묵하는 게 좋다. 그래야만 적어도 리더의 불필요한 오해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직구성원들이 이와 같은 자세를 갖는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많은 중국 고전들이 별도의 장을 만들면서까지 진언進言의 비법을 소개하는 것도 그 때문인지 모른다.

진언에 관한 대표적인 충고로는 ≪한비자≫에 등장하는 역린지화逆鱗之禍를 들 수 있다. 역린지화란, ‘용이라는 동물은 익숙해지면 사람이 탈 수 있을 만큼 온순하다. 그러나 목 아래에 한 치 길이 정도의 비늘이 거꾸로 나 있는데, 이것을 건드리면 곧 물려 죽는다.’라는 의미다. 용의 목 아래에 거꾸로 난 비늘이 다름 아닌 임금의 아킬레스건이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감추고 싶은 아킬레스건이 있다. 임금이라 해서 예외는 아니다. 비록 임금의 총애를 한 몸에 받는 신하라 하더라도 주군主君의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을 함부로 건드리면 죽음을 면하기 어렵다. 따라서 진언을 할 때는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사기≫라는 책도 ‘신하가 임금에게 3번 간諫해서 듣지 않으면 의義를 가지고 떠나라!’고 충고한다. 또 ≪맹자≫는 ‘군주의 친척이 되는 대신大臣은 군주에게 중대한 과실이 있으면 간할 수 있다. 그러나 친척이 아닌 대신은 잠자코 있는 게 상책이다.’라고 조언했다. 이것을 보면, 리더와 조직구성원간에 친밀한 인간관계의 유지를 위해서는 서로의 아킬레스건을 피해가면서도 문제의 본질을 놓치지 않는 합리적인 진언의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그래야만 적어도 조직에서 왕따나 불이익을 당하지 않고 롱런할 것 같다. 예나 지금이나 모난 돌은 정을 맞게 되는 운명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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