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와 어머니의 핸드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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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와 어머니의 핸드폰
  • 김상구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11.11.10 14:39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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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구 교수의 돋보기 & 오늘과 내일]

어머니가 요양원에서 사용하시다 정지한 핸드폰을 열어보니 비워두었던 어머니 집 전화번호가 여러 번 나타난다. 당신의 집에 왜 그렇게 반복적으로 전화를 하셨을까? 하루가 너무 지루해서였을까? 어느 시인은 고향에서 혼자 사시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옛 일기장을 보았더니 여러 곳에 ‘종일본가(終日 本家)’라고 씌어 있어 절절한 그의 외로움에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스마트폰을 비롯한 전자제품들은 노인들이 익숙하게 사용하기에는 적지 않은 시간이 요구된다. 그러나 익숙해지면 노년의 지루함을 달래기에 오히려 안성맞춤이 스마트 폰이 아닐까 싶다. 노년에 스마트폰을 비롯한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사용법을 익히면 많은 정보뿐 아니라 현실참여가 늘어난다. 이런 매체들과 소통이 세상으로부터의 소외를 막아주고 삶의 활기를 띠게 한다. 농경시대와는 달리 컴퓨터와 SNS가 소통의 중심이 되는 세상에서 노인들의 스마트폰 경험이 적지 않은 효용성으로 나타날 수 있다.

미디어의 발달은 세상을 바꾸어 놓고 있다. 스마트 폰으로 앱을 다운받아 무료로 전화를 걸고, 카카오 톡으로 문자를 주고받기도 한다. 신문기사들을 모두 검색하고 사진을 찍어 그 자리에서 보낸다. 이메일을 보내고, 은행에 가지 않고 송금을 한다. 혹자는 SNS같은 미디어가 세계의 독재자들을 끌어내리고 민주화를 가속화시키고 있다고 한다. 중동의 재스민 혁명도, 박원순 서울시장의 당선도 젊은이들이 트위터같은 SNS를 통하여 신속한 정보를 주고받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가 상상하고 꿈꾸는 모든 일들이 스마트 폰을 통해 실현될 미래가 올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스마트 폰이 항상 순기능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 SNS와 같은 미디어를 통한 활발한 의사소통은 오히려 가족 간의 대화를 상실하게 할 수 있다. 어느 고1의 스마트폰의 사용내역을 보니 한 달 3000건 이상의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은 반면 통화는 고작 15통 내외였다고 한다. 집에 오면 자기 방에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고 친구끼리 문자메시지를 주로 주고받는다. 원래 인간사이의 소통은 말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우선이고 그다음이 글자를 통해 이루어졌다. 이제는 문자가 우선이고 말이 다음인 듯싶다. 문자를 먼저 보내지 않고 불쑥 전화를 걸면 예의 없는 사람쯤으로 취급받는다.

루소는 ‘문자언어가 음성언어를 병들게 한다’라고 비판했고, 레비 스트로스는 ‘슬픈 열대’에서 남비콰라족을 망쳐놓은 것이 문자이고, 문자언어의 중심은 불평등의 기원이 될 수 있음을 밝히고 있다. 그 시대에 글자를 모르는 사람이 있어서 그럴 수도 있었겠지만 이제는 문자 중심의 미디어 사용법을 몰라서 불평등을 초래할 수 있다. ‘미디어가 메시지다’라고 미디어의 우월성을 강조한 캐나다 커뮤니케이션 학자인 맥루한의 탁견(卓見)은 예리해 보인다. 그러나 의사소통의 근본은 얼굴을 마주 보고 자신의 생각을 눈빛과 함께 전달하는데 진정성이 있다.

거미줄 같은 SNS를 통해 남을 간섭하거나 비방하는 허접한 이야기만 난무한다면 그 피해가 막중하리라. 얼마 전 방송심의위원회가 스마트 폰 애플리케이션과 SNS의 심의를 전담하는 ‘뉴미디어 정보 심의팀’을 신설하려고 하자 SNS상의 여론을 통제하려는 정치적인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냐며 일부에서는 비판을 가하고 있기도 하다.

어느 젊은이는 서울시장 선거 때 자기와 생각이 다른 부모님을 수안보 온천에 예약해드렸노라고 트위터에 올렸더니 조국 교수가 ‘진짜 효자’라고 칭찬했다고 한다. 칭찬을 들었다니 올겨울엔 온천에 함께 가서 아버지의 등도 밀어드리고, 스마트 폰 사용도 자상하게 알려드리길 바란다. 젊은이들끼리만 트위터와 문자메세지를 날리고 노인 세대들 혼자 TV만 보게 해서는 세대 간의 갈등은 사라지지 않는다. 마르크스는 계층 간의 갈등을 보고 공산사회 건설이라는 꿈이라도 꾸어보았지만 세대 간의 갈등은 불행 이외에는 가져다 줄 것이 없어 보인다. 세대 간의 불화는 가정과 사회를 우울하게 할 뿐이다. 트위터같은 SNS로 하루를 보내는 젊은이들에게도 세월이 지나가면 어줍어질 미디어가 또 등장할 지 누가 알겠는가? 누구에게나 노년은 소리 없이 옆자리로 슬금슬금 다가오고 젊음은 저만큼 물러나게 마련이다.

어머니의 스마트폰을 개통하고 바삐 요양원 앞마당에 다다르니 은행나무에선 노오란 은행잎이 가을비에 속절없이 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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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순 2011-12-05 21:35:53
현대인들은 유아기때의 아이중 감정에 대한 안정감을 느끼지 못하는 아이들 중 엄마와의 분리시 분리불안증을 느끼는 것처럼, 휴대폰이 손에 장착(?)되어 있지 않으면 불안해 한다고 한다. 그래서 시시때때로 자신의 손을 점검하듯 휴대폰을 확인하는 예측불가능한 사회속에서 불편한 심리를 그렇게 표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문이 든다.

김태달 2011-11-17 09:26:30
격리된 인연 孝星/金泰達


대한(大寒) 지나
입춘(立春)이 왔으니
새해가 열렸음을 알리고

원단(元旦)이라
수탉의 힘찬 울음소리
새날이 밝았음을 알리네

임들은 복조리에
청참(聽讖)을 치고
설빔에 가족들과 덕담을 나누겠지만

초점 잃고 피하는 시선
아비와의 마지막 사진을 찍고
섣달 그믐날 불초(不肖)는 요양소를 뒤돌아 서야하네.

석류 2011-11-11 15:48:53
요즈음 교수님의 칼럼을 읽으면서 삶과 죽음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는데 ~~
이 컬럼 또한 마음이 찡함이 오네요.
어머니의 스마톤- 요양원- 은행잎-가을비라는 단어를 통해 교수님의 사랑도 느껴지구요.
저는 개인적으로 페북을 통해 미국에 있는 아들과 매일 채팅을 하는 축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교수님 말씀처럼 스마트론과 sns가 역기능의 역할도 하지만 중년이후 노년에는 치매 예방에 딱인 것 같습니다.

홍민정 2011-11-11 07:30:18
늦가을비가 내리는 아침...어머니 핸드폰...엄마라는 글만 읽어...
새로운것들을 쫒아가기에 버거운 나이 허지만 부지런하게 쫒아가야하는 의무감이 있습니다.
최신스마트폰을 사온 남편 겨우 핸폰기능 사용하는데 중3아들 중1딸아이 최신형 게임기로 변신해버렸지요. 순기능과 역기능을 동시에 지니고...어머님 스마트폰을 드리며 세월의 무상함에 또 칼럼이 나옴이 보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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