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충남의병기념관 왜 홍성이어야 하는가
상태바
[특별기고] 충남의병기념관 왜 홍성이어야 하는가
  • 이용록 <홍성군수>
  • 승인 2023.01.12 08: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홍주의병은 홍주지역의 유학자와 평민들이 홍주성을 거점으로 일제와 치열하게 항전한 의병을 뜻한다.

1896년의 홍주의병은 김복한을 총수로 갑오개혁과 을미사변, 단발령 공포에 대항해 일어났으며, 1906년의 홍주의병은 을사늑약에 대항해 민종식을 대장으로 홍주성을 점령하는 등 기세를 올렸다.

이러한 홍주의병은 1896년과 1906년, 그리고 이후 1910년까지 지속적으로 항일전을 수행했다는 점에서 그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의병은 지고 이기는 것에 상관없이 항전한다는 ‘성패불고(成敗不顧)’와 목숨을 바쳐 인을 이룬다는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정신으로 항전하는 특징이 있는데, 홍주의병 역시 그 성패를 떠나 불굴의 정신으로 한민족의 주권과 자유를 회복하기 위해 투쟁했을 뿐만 아니라 홍주 일대 유생과 민중들이 당파와 학파의 차이, 신분의 차이를 극복하고 투쟁한 민족 통합적인 항일전쟁이었다. 

이것이 시대의 위기 앞에 의연히 일어선 희생정신과 목표를 위해 모두를 끌어안는 통합과 화합의 정신이며, 이러한 의병의 초월적 희생과 나라사랑 정신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우리의 무형적 자산일 것이다.

특히 홍주의병의 홍주성 점령과 홍주성 전투는 의병진이 한 지역의 읍성을 점령하고 10여 일에 걸쳐 성을 방어하면서 수차례 일본군을 격퇴한 독립운동사의 빛나는 전공 중 하나로 평가되며, 1200명 이상의 대규모 병력 동원은 지역을 기반으로 한 의병진 중 최대 규모다. 

또한 단일 전투에서 300여 명이 전사하고, 중화기로 무장한 400~500여 명에 달하는 일제의 진압작전은 홍주성전투가 의병사에 있어 얼마나 치열했던 전투였는지를 방증한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홍성군은 대한민국 대표 항일의병의 중심지이며, 전국 의병전쟁의 도화선이 된 의병의 성지다. 특히 홍주읍성에서 의병과 일본 정규군이 최대의 전투를 벌였고, 인근에 홍주의사총, 홍주의병기념탑, 병오항일의병기념비 등 의병 관련 유적이 있어 의병기념관 건립 취지에 가장 부합한다고 할 수 있다.

‘홍주’의 역사는 고려가 건국한 918년 기록에 처음 등장하는 ‘운주’라는 지명에서부터 시작해 1018년(현종 9) 경 ‘홍주’라는 행정구역명이 채택된 후, 조선시대에는 충청도 서북부지역인 내포의 행정중심지로 기능하며 지금까지 이어온 100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홍주의병의 최대 격전지인 홍주읍성은 통일신라 말부터 고려, 조선, 근·현대를 거쳐 홍성의 역사적 상황과 궤를 같이한 자부심이자 상징으로 현재 사적 제231호로 지정돼 관리되고 있다.

앞으로 홍성군은 홍주읍성의 신속한 복원·정비에 군정 역량을 총동원할 예정이며, 이와 함께 의병기념관이 홍주읍성 내 위치한다면 주변 의병 관련 유적지들과 상호 연계가 돼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으며 홍주의병의 위상을 높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홍성군은 지산 김복한, 복암 이설 등 위인들이 떨치고 일어난 고장이자, 의병정신을 선양·계승하기 위해 33개 시군이 가입된 대한민국의병도시협의회의 창립 지자체의 한 일원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히 의병기념관 건립의 최적지는 홍성군이라고 할 수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