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주(洪州)’ 지명 되찾기, “지역의 정체성 되찾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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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洪州)’ 지명 되찾기, “지역의 정체성 되찾기다”
  • 한기원 기자
  • 승인 2024.07.18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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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점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홍주(洪州)’ 고유지명 ‘홍성(洪城)’으로 바꿔
일제의 ‘홍주’지명 변경, 저항정신·항일정신 말살하고자 하는 의도가 짙어
1941년 ‘홍주면’을 홍성읍으로 승격… ‘홍주’라는 지명 자취를 감춘 지 83년

우리 고장 홍성은 일제강점기 일본에 의해 강제로 고유의 지명이 바뀐 치욕의 역사를 간직한 현장으로 남아 있다. 우리나라의 지명들은 조선인의 기(氣)를 떨어뜨리겠다는 일제의 악의적인 기도에 의해, 혹은 일본인이 발음하거나 표기하기에 까다롭다는 이유만으로 의해 상당수 자취를 감추게 됐다.

정부는 광복 50주년을 맞아 지난 1995년 쇠말뚝 철거작업과 구 조선총독부 완전해체를 최대 역점 사업으로 정하는 등 민족정기를 바로 살리기 위한 운동을 가속화 했다. 이때 일제에 의해 개명됐던 산과 들, 마을의 이름도 광복 50년 만에 제 이름을 찾게 되는 계기가 됐고, 많은 지역이 옛 지명을 회복하게 됐지만 홍성은 지금까지 그대로다. 

지명 되찾기 운동의 열풍이 지나갔지만 우리 고장 홍성의 경우 지금까지도 고유지명인 ‘홍주(洪州)’를 되찾지 못하고 전국의 옛 목사 고을 가운데 유일하게 일제에 의해 강제로 바뀐 지명을 사용하고 있는 곳이 됐다. 우리 고장은 고려 성종 14년(995) 전국을 재편성할 때 홍성 지역을 ‘운주’라 하고, 현종 3년(1012) 개편 때 ‘홍주(洪州)’로 고쳐 부르기 시작해 조선조까지 같은 지명으로 불렀다. 

‘홍주(洪州)’라는 고유지명이 ‘홍성(洪城)’으로 바뀐 것은 일제강점기인 1914년 3월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홍주군은 ‘결성현(結城縣, 지금의 결성면)’의 11개 면을 병합하면서 홍주군의 ‘홍(洪)’자와 결성현의 ‘성(城)’자를 따서 ‘홍성군(洪城郡)’이란 새 이름을 갖게 된 이래 지금에 이르고 있다.

충청도 4목사고을(청주, 충주, 홍주, 공주) 중 ‘홍주(洪州)’와 ‘공주(公州)’의 일본어 발음이 모두 ‘코우슈우(こうしゅう)’로 같아 행정상 불편이 있다는 명분으로 ‘홍주(洪州)’의 지명을 바꿨다. 하지만 일제의 속셈은 다른 데에 있었다. 홍주는 을미사변과 을사늑약에 저항해 홍주의병이 발기했던 곳이자 홍주성 전투는 우리 의병사에 뚜렷하게 각인돼 있을 정도로 저항정신이 높은 고을이었기 때문에 홍주의 항일정신을 말살하고자 하는 의도가 짙은 대목이라 하겠다.

‘홍주(洪州)’ 지명 되찾기는 1012년부터 지금까지 ‘홍주’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사용되고 있는 지명이 공교롭게도 충남도청이 홍성으로 이전해 오는 2012년에 ‘홍주 지명역사 1000년’을 맞이한다는 점에서 지명되찾기와 관련한 문제를 제기하면서 다시 불을 붙였지만 하세월로 지금에 이르렀다. 

‘고유지명되찾기운동’은 이에 앞서 지난 1991년 1월 이상선 군수가 부임하면서 홍성군을 ‘홍주군으로 바꾸자’는 논쟁이 불붙었다. 홍성군은 같은 해 4월 3일 향토유적보호위원회를 소집, 일제의 식민지 정책에 의해 잃어버린 옛 이름 ‘홍주’를 되찾자고 합의했다. 1992년 1월까지 홍성군을 홍주군으로 바꾸겠다는 안을 군의회에 상정했고, 군의회는 7월 25일 ‘홍주이름되찾기검토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주민들의 의견이 찬반으로 분분했던 가운데 7월 13일에는 ‘홍주지명 고찰을 위한 간담회’가 열렸다.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기 위해 홍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고, 결성의 역사성을 계승하기 위해서라도 ‘홍성’이란 이름을 계속 써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면서 절충안으로 홍성읍을 홍주읍으로 바꾸자는 주장도 제기됐다. 

하지만 ‘홍주이름되찾기’ 사업은 지역 주민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결성면 주민 200여 명이 1991년 9월 5일 홍성군 명칭보존을 위한 결의대회를 갖고 ‘홍성군명보존회’를 만들었다. 홍성군이 홍주군으로 바뀌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고, 홍성이 시(市)로 승격될 때 홍주시로 옛 이름을 되찾자는 절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후 1991년 11월 9일 당시 정원식 국무총리는 홍성군청 대강당에서 충남도민과의 대화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당시 이상선 군수는 ‘홍주군’으로의 지명 변경을 건의했다. 배석했던 최인기 내무부차관은 “군민의 의사가 합의되고 군과 도에서 건의하면 홍주 이름을 찾기 위한 행정구역조정에 관한 법률개정안을 내년에 국회에 상정할 용의가 있다”고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으면서 절호의 기회를 맞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이상선 군수가 1993년 1월 13일 홍성군수직을 떠나면서 ‘홍주지명변경운동’이 시들해졌다. 11개월 15일 만인 1994년에 이상선 군수가 다시 부임했지만 6개월 만에 석연찮은 이유로 충남도로 발령이 났다. 홍주지명 변경을 중심에서 이끌었던 이상선 군수가 떠나면서 지명 변경 논의는 유야무야 끝이 나고 말았다.

이후 홍주가 홍성으로 개명된 지 꼭 100년만인 지난 2014년 9월 홍주지명되찾기운동본부 준비위원회가 발족돼 같은 해 12월 지역 내 각계 인사, 주민 등 200여 명이 명예회장, 고문, 자문위원, 운영위원으로 참여하는 집행부가 구성되면서 다시 불을 붙였다. 

2015년 2월 운동본부가 공식 출범하면서 운동본부는 홍주지명 되찾기 학술세미나를 개최하고 홍주 지명 변경 필요성 등 홍보에 나서기도 했지만, 결국 행정과의 협조가 원활하지 않아 성과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홍성군에서도 ‘홍성’에서 ‘홍주’로의 지명 변경이 필요하다는데는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고 밝히면서도 명확한 대답은 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다만 지명 변경을 언제 어떻게 할지에 대해 구체적인 계획을 밝히지 않은 상황에서 ‘지명 변경을 위해서는 명분이 제일 중요한 만큼 홍주지명 1000년의 해로 정한 2018년이 아닌 홍성군이 시로 승격되는 시점에 맞춰 지명을 바꾸는 것이 홍성군의 입장’이라고 밝히며 유야무야 미뤄왔다. 

‘홍주시’로의 승격 추진은, 민선 6기 김석환 군수의 공약사항이었지만 3선을 역임할 때까지 결과는 전무했다. 사실 ‘시 승격’과 관련해서도 ‘전남 무안군과 함께 지방자치법 개정을 통해 시 승격을 실현한다’는 계획을 밝혀왔지만 결과는 사실 불가능한 일이라는 여론이 지배적이었다. 지명 변경 추진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12년의 군수 임기를 마쳤다.

특히 2018년의 경우 홍주라는 지명이 사용된 지 1000년이 되는 해로 수십억 원의 예산을 들여 기념사업을 진행했다고 하지만 “2018년 홍주지명 1000년이 되는 해를 맞아 홍성의 지명을 ‘홍주’로 변경해야 한다”는 주장은 곳곳에서 제기됐지만 정작 ‘홍주지명되찾기’는 없었다. 

결국 일제에 의해 강제로 빼앗긴 ‘홍주(洪州)’라는 고유지명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이 이뤄진 지 110년, 1941년 홍주면이 홍성읍으로 승격되면서 ‘홍주’라는 지명이 자취를 감춘 지 83년,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은 지 79년, 1991년 이상선 군수가 ‘고유지명되찾기운동’을 편친 지 33년, 2006년 충남도청이전지가 홍성으로 확정된 지 18년, 2014년 홍주지명되찾기범군민운동본부가 꾸려져 출범한 지 10년 동안 ‘홍주지명되찾기’는 말없이 표류하고 있다.

충남도청 등 충남의 행정도시를 품고 있는 지역의 정체성을 되찾는 일, 일제 잔재의 청산과 역사바로세우기는 우리의 사명감 아닐까. 올바른 역사를 후대에 물려주는 것이 시급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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