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대잡기 위해 초가삼간 태울 수 없다’는 조병옥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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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대잡기 위해 초가삼간 태울 수 없다’는 조병옥 박사
  • 한관우 발행인
  • 승인 2015.07.17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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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국항쟁의 진원지를 찾는 역사기행 <5>

충청 독립운동가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천안시 병천면 용두리의 유석 조병옥 박사 생가.

독립운동가 유석(維石) 조병옥(1894~1960) 박사는 광복 전에는 독립운동에, 광복 후에는 반공·반탁(신탁통치)에 삶을 바친 ‘애국 충정’의 인물이다. 항일 독립운동과 대한민국 건국 및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평생을 헌신해 큰 업적을 남긴 유석 조병옥 박사. 조 박사는 1894년 5월 21일 태어났다. 태어나고 자란 곳인 천안 병천면 용두리에 생가가 있다. 조병옥 박사는 1909년 평양숭실학교를 졸업했고, 1914년에 연희전문학교 졸업과 동시에 미국으로 유학을 했다. 와이오밍고등학교를 거쳐 컬럼비아대학에 입학해 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마침내 1925년 컬럼비아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조병옥 박사는 독립운동가였고, 또한 정치가였다. 1945년 8월 15일 광복 후에는 한국민주당을 창당했고 한국전쟁 때 내무부장관, 이어 제 3~4대 민의원을 지냈다. 1960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으나 1960년 2월 15일 불의의 병으로 67세를 일기로 서거했다. 조병옥 박사에게 정부는 1962년 대한민국 건국 공로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현재 천안 병천의 생가는 복원돼 있다. 원래 초가였던 생가가 이후 기와집으로 변형된 것을 문중의 고증을 받아 다시 초가로 복원했다고 한다. 생가는 일자형 초가와 헛간·외양간으로 사용하는 부속사와 우물 등이 있는데, 그의 공적을 길이 선양하고 후세에 본받을 교육의 장으로 삼고자 생가를 복원했다고 전한다. 유관순 열사 생가 인근에 위치해 있다.

 

생가지에 있는 조병옥 박사 일대기 비문.

조병옥 박사의 아버지 조인원 선생과 동생 조병호 역시 일제시대 독립운동으로 한 인물로, 유관순 열사로 널리 알려진 아우내장터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조인원 선생은 1919년 3.1 만세운동 당시 유관순을 설득하는 등 만세운동을 지휘했고, 결국 심장부근에 일본군의 총을 맞아 관통상을 입고 4년형을 받고 공주교도소에 수감됐다. 만세운동에 가담했던 조병호 역시 3년형을 받았다. 조병옥 박사는 연희전문에서 5년 동안 교편을 잡고 독립운동의 길에 들어섰다. 비밀독립단체인 그리스도교 신우회 회원으로 활동했고 같은 해 좌우합작 독립운동단체인 신간회의 창립위원으로 참가, 재정부장·총무부장 등을 지내며 활발히 활동했다. 1929년 광주학생운동을 배후조종한 혐의로 한용운 등과 함께 3년형을 받고 감옥에 수감됐다. 이후 도산 안창호가 지도하는 흥사단에서 활동하다 또다시 옥고를 치러야 했다. 1932년에는 조만식과 함께 경영난에 시달리는 조선일보 인수운동에 참여했고, 1937년 수양동지회 사건으로 다시 2년간 복역했다.

 

서울 도봉구 수유동 산 127의 유석 조병옥 박사 묘소.

조병옥 박사는 그의 선대 조상인 조선의 개국공신 조인옥이 그랬던 것처럼 대한민국의 개국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김규식을 옹립하려는 미 군정 사령관의 의견에 반대하며 이승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지지했다.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장면, 장기영, 모윤숙, 김활란, 김우평 등과 한국대표단으로 유엔총회에 참석했다. 1949년 2월10일 민주국민당 창당에 참여했고 1950년 7월 내무부 장관에 임명됐지만 1954년부터는 이승만 정권과 결별, 이 대통령의 정치노선을 비판하며 반독재 투쟁에 나섰다. 1954년 5월 3대 민의원에 당선됐고, 1955년에는 민주당을 창당, 최고위원이 됐다. 1956년 3월, 대선 직전 신익희가 급사한 후 당 대표를 맡아 같은 해 8월 윤보선 등과 함께 자유당의 선거방해에 항의하는 연좌시위를 벌였다.

1958년 4대 민의원으로 당선된 후 신익희, 유진산, 김도연, 윤보선, 김영삼 등과 함께 민주당 구파의 리더격으로 활동했지만 신·구파간 갈등이 유혈극으로까지 이어지면서 조병옥은 대통령 후보 경쟁포기를 선언했다. 1959년 말 민주당의 4대 대선후보로 선출돼 후보등록을 마쳤지만 갑작스러운 발병으로 미국으로 향했고, 1960년 미국 월터리드 육군병원에 입원한 지 23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서울 도봉구 수유동 산127 애국자묘역에 잠들었다. 정부는 1962년 3월 1일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목련장을 추서했다.

 


 

아버지, 아들 ‘3부자 야당 총수’ 지낸 대쪽집안

 

유석 조병옥 박사는 생전에 승정원 좌승지를 지낸 노병선의 딸 노정면과 결혼, 고(故)조윤형 전 의원과 조순형 전 의원 등 5남매를 뒀다. 그의 가계에는 여전히 정치인이 많다. 국회 부의장을 지낸 고(故)조윤형 전 의원과 ‘미스터 쓴소리’로 유명한 국회 최다선 의원으로 기록된 조순형 전 의원 등이 그의 아들이다. 조병옥 박사의 아들인 윤형과 순형은 지난 1986년 쓴 ‘아버님을 기리면서’라는 글에서 당시의 상황에 대해 “어린 시절 여관집 구석방에 웅크리고 있을 때 아버지는 가끔 홀연히 나타났다”며 “어떤 경우에도 꾸중 한 번 없었던 아버지의 모습이 선연하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이들은 “창씨개명을 하지 않아 구박과 놀림을 받는 우리들의 곤욕을 아랑곳하지 않았다”며 “대범하고 호방한 아버지가 우리에게는 어머니를 고생시키는 가장으로만 비춰졌다”고 밝혔다.

민주당 대표를 지낸 조 박사와 아들 순형, 민주한국당 대표를 지낸 윤형은 ‘3부자 야당 총수’라는 진기록을 세운 주인공이다. 이들 부자의 선수를 모두 합치면 무려 ‘15선’으로, 이들은 3, 4, 5, 6, 7, 8, 11, 12, 13, 14, 15, 16, 17, 18대에 걸쳐 국회의원을 지냈다.1932년 충남 천안 출생인 조윤형 전 의원은 서울고를 졸업한 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중퇴하고 조지타운대 외교관학교를 수료했다. 28세의 젊은 나이로 1960년 5대 민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당선됐다. 이후 6, 7, 8, 13, 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 국회 부의장까지 오르며 6선 의원을 지냈다. 1996년 2월 별세했다. 1935년 천안 출생인 조순형<사진> 전 의원은 서울고와 서울대법대를 졸업하고 1981년 정치규제에 묶인 형을 대신해 출마하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11대 총선 때 무소속으로 정계에 입문한 뒤 13대부터 16대까지 선친의 묘소가 있는 지역인 서울 도봉·강북 지역구에서 민주당, 새천년민주당 소속으로 내리 금배지를 달았다. 평소에 곧은 소리를 마다 않는 대쪽 같은 성품에다 학구적인 의정 활동을 펼쳐 세 차례나 백봉신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1, 12, 14, 15, 16, 17, 18대 총선에서 당선, 현재까지 국회 최다선인 7선 의원으로 기록되고 있다. 강직함과 소신으로 뭉친 선비형으로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각종 정치 현안에 대해 직언을 해 ‘미스터 쓴소리’라는 별명을 얻었다. 지난 2012년 3월 당시 자유선진당 소속 국회의원이었던 조순형 의원은 서울 중구의 국회의원 출마를 포기하고 정계 은퇴를 선언, 7선에 이르는 의정생활과 30여년의 정치 인생을 마감하고 초야로 돌아가 생활하고 있다.

조병옥박사 생가는 충남 천안시 병천면 용두리 261-6로 유관순 열사 생가로부터 불과 1.5km정도 밖에 떨어지지 않았다. 마당 입구 한쪽에는 그가 생전에 남긴 ‘빈대 잡기 위해 초가삼간 태울 수 없다’는 명언을 제목으로 세워 놓은 생애와 업적을 새긴 비가  있다. 현재 집에는 아무도 살고 있지는 않으나, 누군가가 관리하는지 주변은 깨끗이 정리정돈이 되어 있었고, 안방에는 영정이 잘 모셔 놓고 있었다. 천안시 관계자는 “이곳은 항일 독립운동과 전 국민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평생을 몸 바쳐 불후의 업적을 남긴 독립운동가로 정치가인 유석 조병옥박사가 태어나고 자란 곳입니다. 당시 초가였던 생가가 다시 기와로 변형된 것을 문중의 고증을 받아 대지 550평에 안채 15평, 부속사 7평 등 일자형 초가로 원형 복원했다”고 밝히고 “조병옥 박사님의 공적을 길이 선양하고 후세에 본받을 교육의 장으로 삼고자 정비해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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