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마, 인산리공소 옛터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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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마, 인산리공소 옛터 찾았다
  • 한기원 기자
  • 승인 2017.07.20 09:0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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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마면 인산리 석산마을 372번지 일대 ‘옛터’만 남아
1900년대 이전부터 있었던 인산리 공소 옛터.

우리에게 천주교와 옹기는 과연 무슨 관계가 있을까? 홍주지역에서 가장 먼저 천주교가 들어왔다는 금마면 인산리 석산마을 372번지 일대에 인산리공소 옛터와 옹기 터가 있었고, 최초의 4년제 보통학교 본교가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돼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런 연유로 천주교와 옹기의 관계가 새롭게 조명돼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는 가운데 옛 인산리공소 터와 옹기 터로 추정되는 곳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금마면 인산리 석산마을 현지를 답사하는 과정에서 본래 인산리공소가 있었던 옛터는 지금은 헐려서 밭으로 변해 있었고, 당시 옹기 터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곳은 축사와 밭으로 변해 있었다. 다만 옛 흔적을 찾을 수는 없었지만, 이를 기록으로라도 보존할 수 있다는데 만족해야만 했다.

인산리에 천주교 공소 옛터와 옹기 터가 있었다고 증언한 장성태(83·금마면 봉서리)옹은 “금마는 본래 홍주군 평면이었는데 일제가 강제로 개명을 했으며, 최초의 4년제 보통학교 본교가 있었는데 나중에 7년제 보통학교가 생기면서 지금의 금마초등학교와 합쳐져 옮겼고, 당시 그곳에는 천주교 공소와 옹기를 굽던 가마터가 있었다”고 증언하고 “옹기가마 터는 최 씨네 등 세 곳에 큰 가마터가 있었는데, 어려서 부모님을 따라 옹기를 사거나 바꾸러 다닌 기억이 난다”고 말하며 옛 기억을 더듬었다.

석산마을 서수석(61) 이장에 따르면 현재 살고 있는 집의 위쪽을 가리키며 “이곳에 옛 인산리공소가 있던 자리인데, 본래 가정집에서 시작됐고 1950년경 인산리공소를 새로 지었으며, 1980년대 봉서리 산 139-1번지로 인산리공소가 옮겨갔다”고 설명했다. “옛 공소는 몇 년 전에 헐렸으며, 옮겨간 인산리 공소에는 십자가와 성모마리아상이 있었다”며 “지금은 개인에게 매각돼 살림집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서수석 이장의 조부는 옹기터에 1919년 2월 20여 평 정도의 자기점을 열고 16명의 종사자가 연돌 115점, 수문 100점, 물동구리 150점 등의 자기를 생산해 냈다고 증언했다. 이로써 1919년 이전에 석산마을에는 이미 천주교신자들이 생활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대목이다. 당시는 예산본당 소속이었지만 홍주지역의 최초공소로 기록될 전망이어서 관심을 끌고 있다.
 

지금은 헐려 없어진 1950년대 신축됐던 옛 공소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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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옥 2017-07-20 15:31:46
홍주지역이라는 애매한 표현보다는 홍성지역으로 쓰는게 좋겠습니다. 인산리공소가 있기도 한참 전에 이미 홍성 오관리를 비롯하여 신자가 형성되었고 지금의 구항면 공리에 공소보다 상위개념인 수곡성당이 존재했습니다. 홍성지역 천주교 전래는 이미 1971년 박해때부터 홍주동헌 옥에서 순교자가 생기면서 공식화되었고 이후의 홍주천주교회사를 보면 홍성지역에 신자들이 살았음을 알수있지요. 따라서 홍성지역 최초공소라는 개념은 조금 어려운 듯 합니다.
ㅡ현옥공소여행센터 조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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