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하면 이 글은 지극히 개인적 감정이 담긴 글이다. 고등학교 동창의 친언니인 성병희 작가는 그야말로 동네 언니였다. 고등학교 시절 언니는 아니, 성병희 작가는 홍익대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있던 미술학도였다. 고등학생의 시선에서 봤을 때 당연히 우상같던 존재이기도 했다. 성 작가의 그림을 옆에서 꾸준히 보아왔고, 개인 생활 역시 친구에게 들어왔던 터라 성 작가 그림 변천사가 당연하게 이해됐다.
성 작가는 홍익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1992년 제1회 ‘이 땅의 사람들’ 개인전을 시작으로 ‘변두리 사람들’, ‘주변 사람들’, ‘민중미술 15년’, ‘더 많은 현실들·더 많은 아름다움’ 등 많은 전시회를 열었다. 그러던 성 작가가 돌연히 활동을 접었다. 그 사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리고 2010년 세 번째 개인전 ‘살아남기’를 열었다.
이전 1990년대 전시회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성 작가는 주변인들의 삶의 모습과 환경 등에 대해 꾸준하게 작업해왔다. 어쩌면 민중미술의 마지막 세대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랬던 그녀가 ‘살아남기’에서는 다른 그림들을 보여줬다. 묵직한 그림의 질감과 화폭에 담긴 그림의 멋은 여전하다. 그러나 무엇인가 슬프다.

“나는 단독으로 설정되기보다는 대부분 아들과 일체가 되어 출현한다. 아이와 나는 분리되지 못하는 아이고 나는 아이의 유일한 보호자다. 모든 부모, 특히 엄마의 마음이 그럴 것이다. 그러나 이 둘 만이 남은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역시 크다. 앞으로 닥칠 불안과 공포도 스며있다.”
사람은 누구나 삶을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상처를 받으며 살아가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상처를 들여다보는 일은 찢어질 듯한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일이다. 성 작가는 그런 자신의 삶의 상처를 화폭에 과감하게 드러내고 객관화 시킨다. 소품처럼 등장하는 해골, 피에로, 인평 여자아이, 주름진 천, 검은 새 등이 등장하며 입을 막고 머리를 감싸고 있는 나, 스스로 목을 조이고 있는 나, 눈에 돋보기를 대고 무언가를 응시하고 있는 나와 아들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다분히 어둡고 음울하다. 그러나 그 비극성이 지극히 개인적이기에 더 뜨겁다. 이후 2012년 ‘들여다보기’에서는 좀 더 절제된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류수원 미술평론가는 “그녀가 그리는 인간들은 늘 불안과 상처로 쫓기는 불안의 눈빛을 하고 외부의 강압으로 침묵을 강요당하거나 자신 스스로 만들어 낸 허무에 잠식당하는 불완전한 인간들을 표현해왔다. 그들은 타인이자 자기 자신이며 내부적 허무와 외부에서 오는 또 다른 허무에 의해 무너져 내리고 상처받는 이중의 고통을 받는다. 이번 작품들에서는 한 소녀이자, 여인이자, 인간으로서의 상처와 그 상처에서 기인한 혈혼과 고통의 흔적들이 호소하는 듯 한 눈과 손을 통해서 표현된다. 마치 수화 같기도 한 손의 동작들은 몸이나 얼굴과 하나라도 된 듯이 합쳐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한다.
성 작가의 ‘비-눈-물’이라는 작품을 들여다보면 아이의 커다란 눈망울과 합쳐진 비인지 눈물인지 모를 망울들이 수없이 오버랩 되면서 마치 보는 이의 마음의 눈물을 끄집어내게 만든다. 자신의 상처를 들여다보는 일은 눈물 없이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작가는 눈물만 흘리고 있지 않는다. 끊임없이 자신을 들여다보고 이를 화폭에 객관화시켜낸다. 그러나 자신의 삶을 객관화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이기나 할까. 그래도 그녀는 해내고야 만다.
그녀의 아들과 둘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학생들에게 그림을 가르치며, 아들을 돌보고, 밤에는 그림을 그려댄다. 지극히 개인적인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지만 사실 우리네 인생은 어쩌면 모두가 개인적이고 모두가 보편적이고 공공적이지 않은가. 개인적인 일이 사회적 보편성으로 확대되는 힘, 성병희 작가의 그림에서 볼 수 있는 회화의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