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바이어던'의 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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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바이어던'의 칼
  • 김상구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13.10.31 14:4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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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과 군 사이버 사령부가 사이버 상의 댓글로 대선에 개입했다는 의혹은 여·야의 정쟁거리만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근본을 훼손한 중대한 문제라고 아니할 수 없다. 국가라는 공권력은 내적으로는 법을 위반한 사람들을 처벌하라는 검·경찰로 대표되는 힘이고, 바깥으로는 외적의 침입을 막아 국민들의 삶을 안전하게 지켜내라는 물리적 군사력이다. 그런데 국정원을 비롯한 공권력을 본연의 임무에 사용하지 않고 개인을 강제하거나 힘 있는 자들의 편의에 따라 정권유지와 기득권 수호에 이용한다면, 토마스 홉스(1588-1679)의 국가라는 개념은 그 출발부터가 2% 쯤 부족해 보인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두려워 힘 있는 국가의 출발에 동의한 구성원을 국가가 위협한다면 그들은 더 큰 두려움에 떨고 국가의 노예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정치사상은 자신의 역사적 경험과 그 시대의 지적 유산을 반영한다’라고 했던 퀜틴 스키너의 말처럼 홉스의 정치사상도 그의 삶, 시대와 유관하다. 1588년 스페인의 무적함대가 영국을 쳐들어온다는 소문에 깜짝 놀란 홉스의 어머니가 그를 일곱 달 만에 낳았으니 칠삭둥이로서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감이 그를 늘 엄습했고, 그런 공포 속에서 노래 부르기, 발 마사지 하기, 테니스 치기 등으로 자신을 단련하여 아흔 살을 넘겼으니 그 당시로서는 보기 드물게 장수한 셈이다. 홉스에게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던 삶에 대한 공포감은 17세기라고 하는 혼란한 정치적 상황, 과학혁명의 분위기와 함께 그의 정치사상을 출현시킨 원동력이었다.

홉스는 『리바이어던』에서, 인간은 자연상태에서 끊임없이 폭력에 노출되어 죽음의 공포를 느끼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자기보존(self-preservation)을 위해 안전과 평화가 보장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준비했는데, 그것이 국가라는 ‘리바이어던’이다. 리바이어던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뱀처럼 생긴 괴물이다. 그런데 혼돈과 무질서를 상징하는 이 괴물의 힘이 오히려 인간의 안전과 질서를 유지해 줄 수 있다고 홉스는 생각한다. 홉스가 국가를 괴물로 표현한 것은 그 정체성에 이중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그가 들고 있는 칼로 사회적 계약을 어긴 자들을 처벌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시민을 향해 칼을 휘두를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관점에서 볼 때,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철두철미하게 ‘계산(reckoning)'이라는 도구적 관점에서 파악한 그의 사상에 선뜻 동의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이것이 우리가 사는 사회의 실체의 모습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인간이 타자와 공존하기 위해서는 ‘자비’, ‘동정심’, ‘자선’ 등과 같은 인간의 선한 면도 있어야하지만 이런 것에 비하여 인간의 이기심이 더 우세한 힘을 발휘한다는 뜻으로 홉스는 인간 사회를 파악했을 것이다.

자연상태에서 만인에 대한 투쟁이 발생할 수 있다는 홉스의 생각은 정치질서에서 보다 오히려 시장경제에서 더욱 또렷하게 나타날 수 있다. 오늘날 글로벌화된 시장경제에서 적용되는 적자생존의 원리는 밀림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대기업은 중소기업에 절대적 강자가 되어 중소기업에 대해 ‘갑질’을 해댄다. 중소기업은 더 약한 기업에 갑이 되어 비슷한 행동을 반복하고 있으니 자본주의 시장은 늘 아플 수 밖에 없다. 강자만이 독식할 수 있다는 신자유주의는 ‘상생의 논리’를 잃어버린지 오래다. 그래서 강자만이 저자거리를 어슬렁거리는 시장경제를 제어할 ‘리바이어던’이 필요하다. 누가 시장경제의 경제권력을 막아낼 수 있을까? 아마 홉스가 이 시대에 살았더라면 이 문제에 천착했을 것이다.

요즘 이야기되는 ‘경제 민주화’도 이런 관점에서 파악되어야 할 것이다. 사회주의의 통제경제를 하자는 것이 아니라 경제권력의 폭력화도 사회적으로 통제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리바이어던이라는 괴물은 힘의 상징으로 ‘칼(sword)’을 차고 있는데, 그 칼은 정치, 경제의 질서를 바로 잡고 사회의 정의를 구현하라는 칼이지 몰래 선거에 개입하라는 폭력의 칼이 아니다. 존 로크도 바로 이 폭력적인 괴물에 강한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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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산 2013-11-11 15:06:56
지금 한국은 국가가 권력의 칼로 막춤을 추는 형국입니다. 몇몇 언론은 그 막춤을 부추기고 또 방어해주고 있습니다. 누가 이것을 제어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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