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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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청춘들의 자화상 <26>
  • 한지윤
  • 승인 2016.09.12 15: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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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기자 한지윤의 기획연재소설-그래, 젊음은 아름다운거야

곧 식사가 고급스럽게 나오고 약속대로 아직 기름기가 지글지글 타는 소리를 내고 있는 커다란 비프스텍이 나왔다.
“다 먹어 낼 수 있을까? 그만큼……”
“거뜬히……”
“맛있어요!”
소영이의 혓바닥은 감격했다. 그는 생선회를 안주로 맥주를 마시고 있다.
“남자 친구는 많이 있겠지?”
“만나보고 싶으신 모양이죠?”
“음, 그래. 만나보고 싶군. 젊은이는 물론 나이 든 남자도 있겠지……”
“있지요”
“농담? 정말?”
“때때로 전부 진짜일 수 있는 걸요.”
슬리퍼만큼의 비프스텍을 절반쯤 먹고 나자 식성 좋은 소영이도 서서히 물리기 시작했다.
“아주 볼륨이 있는 걸요. 이 비프스텍.”
“젊으니까 그 정도는 다 먹을 수 있겠지……”
“다 먹을지도 모르겠는데요. 무리해서 먹으면 얼굴에 여드름이 나올 거예요.”
이윽고 술을 거의 다 마셔가는 한훈찬씨 에게도 비프스텍이 나왔지만 그것은 소영이것의 절반 정도의 크기도 되지 않았다.
“조금 드시는 모양이죠?”
“별로, 그런 편은 아니지만……”
소영이는 문득 이 상대를 다루기 쉽다고 생각했다. 식성도 왕성하지 못하고 다소 야윈 이런 남자 한 명쯤은 지혜나 기력면에서 문제가 아닐 성 싶었다. 사나이는 식사를 끝마치고 식후의 과일도 깨끗이 먹었다. 물수건으로 한훈찬씨가 입 가장자리와 손을 닦고 있을 때, 소영이가 입을 열었다.
“잘 먹었습니다. 덕분에 포식했군요. 그럼 이젠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상대는 뜻밖에 허를 찔린 사람처럼 당황했다.
“아가씨와 좀 더 사귀어 보고 싶었는데……”
그는 맥이 빠진 듯 힘없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도리가 없겠지, 그 대신 여름이 되면 속리산으로 초대해도 괜찮을까?”
“좋아요. 속리산이라면 가죠.”
한훈찬씨는 그날 차로 소영이를 집 근처까지 바래다 주었다. 택시 안에서도 한훈찬씨는 묵묵히 앉아만 있을뿐, 소영이 에게는 이별의 악수조차 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소영이의 집 전화번호를 묻고는 여름 약속을 잊지 말아 달라고 몇 번이나 부탁했다.
설마 정말로 한훈찬씨 로부터 전화가 걸려 오리라고 소영이는 생각지도 않고 있었다. 그 때 그렇게 약속을 한 것은 단지 그 자리만을 모면하기 위한 방편이었고. 더구나 오다가다 만난 사이라는 것은 허망한 결과로 끝날 뿐인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 한훈찬씨가 석 달이 지난 후 느닷없이 전화를 걸어와 속리산에 가지 않겠느냐고 그 약속에 대한 유혹을 해왔을 때, 소영이로서는 깜짝 놀라며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좋아요, 약속 했으니까, 가기는 가겠어요. 그런데 조건이 있어요, 방은 각기 따로 잡는 거예요. 약속해 주시죠?”
“어머님의 유언에 이런 게 있는데……넌 잠자리가 사나우니까 절대로 다른 사람과 함께 자서는 안 된다고……”
“어머님이 돌아가셨나 보죠?”
“아니, 아직 살아 계시지만, 어머님은 아무 때나 유언을 하시는 버릇이 있어요.”
상대방은 수화기에서 입을 떼고 웃음소리를 냈다. 약속은 반드시 지키겠다고 확답을 하고 한훈찬씨가 전화를 끊었을 때, 소영이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과연 한훈찬씨는 치한에 속하는 남자일 것인가, 아니면 젊은 여자와 시간을 보내는 즐거움을 좋아하는 단순한 남자일 것인가, 그러나 어떻든 그런 대로 모험을 할 수 있는 재미있는 일이라고 소영이는 생각했다.
맑은 토요일 아침, 소영이는 한훈찬씨와 둘이서 속리산으로 떠났다. 언제나 3등 좌석이나 아니면 통로에 입석하면서 소위 무전여행을 하는 데에 익숙해 있는 소영이로서는 새하얀 커버가 씌워져 있는 특등 좌석에 앉아 여행하는 것이 오히려 편칠 못했다.
소영이는 속리산의 낡은 집에서 묵자고 그에게 제의했고 그는 이에 순순히 따라줬다. 그리고 방도 각기 따로 투숙하는 약속도 지켜 주었다.
다음날 둘은 승마장으로 놀러 갔다.
“말을 타고 싶군요.”
“타 보지, 뭐……”
“아저씨는?”
“나는 구경해 줄게……”
그는 말을 빌리는 요금을 지불해 주었다. 어쩌면 돈을 쓰면 쓸수록 그는 소영이에게 손을 댈 권리를 그만큼 더 획득하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말은 노령이었고 다소 여위었으므로 얼핏 보면 무기력해서 온순할 것 같이 보였다. 소영이는 말 잔등에 올라탔다. 그는 소영이를 전송했다. 그녀는 들뜬 기분으로 말을 달렸다. 한참 달리다가 별안간 말은 길가의 숲 속으로 뛰어 들어가더니 고삐를 잡아 당겨도 움직여 주질 않았다. 말은 풀을 뜯어 먹고 있는 것이었다. 말의 주인이 제대로 먹이를 줘 사육하지 않은 듯했다. 소영이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고삐를 당기며 채찍질을 해 봐도 말은 꼼짝하지 않았다. 오직 풀만 열심히 뜯어 먹고 있으므로 소영이는 난처해지고 말았다. 도무지 자기 잔등 위에 앉아 있는 사람의 기분 같은 건 전혀 개의치 않고 있는 것이다.
훈련도 제대로 된 것 같지 않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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