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고통을 느껴야 아름다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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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고통을 느껴야 아름다움을 느낀다”
  • 조승만 칼럼위원
  • 승인 2017.02.19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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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 수필 <3>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노르웨이 베르겐 항구에서.

노르웨이, 남한의 4배, 인구 350만명, 지하자원 풍부
노르웨이 사람들, 국민소득 높지만 검소한 모습 인상
베르겐 항, 낮에는 생선냄새, 밤에는 장미향수로 유혹

 

여행을 하면서 메모하고 사진을 찍어 기록을 남기는 일은 아주 중요한 것 같다. 유럽지역은 국가마다 다른 면도 있지만 건축양식이 거의 비슷한 면도 있어 패키지여행을 할 경우 많은 곳을 가이드를 따라 여기 저기 시간에 쫓겨 다니기에 여행을 다녀 온 후 시간이 지나면 언제 어디를 다녀왔는지 잘 알 수가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여행 시 방문하는 곳마다 사진도 찍고 특히 기록을 남기면 자신이 다녀 온 과정을 더듬어 볼 수가 있고 공개하여 다른 여행자들에게도 많은 도움을 줄 수가 있을 것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스웨덴에서 일정을 마치고 버스에 승차하여 약 1시간 40분 정도 이동하니 노르웨이에 진입하였는데 국경 검문소에서는 일일이 개인에게 물어보지 않고 단체로 간단하게 체크하고 금방 통과하였다. 노르웨이는 국토면적이 남한의 4배 정도의 면적에 인구는 530만 명이고 지하자원이 풍부하여 GNP는 10만 달러나 된다고 하니 부럽기만 하다.

노르웨이는 스웨덴과 덴마크의 지배를 받았던 바이킹의 나라, 농어민의 나라에서 국민소득이 높고 천혜의 자연조건이 좋은 나라로서 발전했다고 한다. 하천에 가득히 흐르는 물은 빙하가 녹아서 흐르는 물이라고 하며 물 걱정이 없는 청정한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1905년 카스타드 협정에 의거 노르웨이가 스웨덴에서 분리 독립 하였으나 2차 대전 시에는 독일이 덴마크와 노르웨이를 점령하였으나 독일이 패망하자 소련이 한때 점령하기도 하여 사회주의 영향을 받기도 하였다고 한다.

우리가 방문한 노르웨이 오슬로 시청에서 노벨평화상을 매년 수여한다고 하는데 시 청사는 벽면과 바닥이 미술관에 들어온 것처럼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2000년도에 김대중 대통령이 이곳에 와서 대한민국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였지만 다른 분야에서의 노벨상 수상자는 단 한명도 없고 아시아에서 수상자가 가장 많은 일본은 과학 분야 등에서 23명이나 된다는 얘기를 듣고 우리도 각계각층에서 더욱 분발하여 많은 노벨상 수상자가 나왔으면 하는 바램도 해보았다.

노벨평화상은 다이너마이트 화약을 발명한 스웨덴 출신 노벨의 유언에 따라 그가 서거한 1896년 12 월 10일, 매년 같은 날에 노르웨이 오슬로 시청 홀에서 수여된다고 하는데 문학, 물리, 화학, 경제부문 노벨상은 스웨덴에서 심사선정을 하고, 평화상만큼은 노르웨이에서 심사결정 시상토록 한 것은 그 당시 노르웨이가 스웨덴의 통치를 받고 있었던 점에 비추어 서로 평화롭게 지내라는 뜻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노르웨이의 전설로 카를 요정이라는 것이 있는데 요정은 변장하여 꼬리가 있다. 노르웨이 지역에서 우리가 들렀던 기념품 판매소 어디에서든지 이 요정인형을 팔고 있었다. 그리고 세계의 3대 유전은 택사스 유전, 중동 유전, 노르웨이 유전이라고 하는데 노르웨이는 유전이 발견되기 전까지는 농어업국가에 불과 하였다고 하나 이 유전이 발견되고 나서부터 국민소득이 증가하게 되어 사회복지가 발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노르웨이의 오슬로에 있는 바겔랑 조각공원에 들렀는데 가끔 잡지에서나 볼 수 있던 조각 작품을 실제로 들여다보니 웅장의 극치를 바라볼 수가 있었다. 화강암의 거대한 돌에 인간의 군상에 대하여 조각을 하였는데 특히 인간의 120명을 조각한 모노리스 탑은 정말 장대하다고 말할 수 있다.

노르웨이에 밀레함마르 라는 곳은 1994년에 동계올림픽을 개최한 지역인데 노르웨이는 스키를 잘 타서 가 세계 1위를 하였고 우리나라에서는 유선희가 동메달을 획득 하였다고 한다. 노르웨이는 그러나 구기 종목은 약하지만 핸드볼은 잘 한다고 하며 한국과 노르웨이가 경기를 할 때면 가이드는 한국을 응원하나 남편과 시어머니는 노르웨이 사람이라 노르웨이를 응원을 하여 때로는 갈등도 있다고 전한다.

우리가 노르웨이서 머물면서 느낀 것은 노르웨이 사람들이 국민소득은 높지만 대체로 작업복이나 청바지를 입은 검소한 모습이었으며 건물도 고층빌딩은 거의 볼 수가 없었다. 가이드의 말을 잠시 들어보면 노르웨이 사람들은 독일의 지배를 받아서 그런지 독일 사람들을 가장 싫어한다고 했다. 우리가 가는 관광지 곳곳마다 일본인들은 간간히 있었으나 그리 많지 않았고 중국인들을 많이 볼 수가 있었다.

중국은 현재 세계에서 인구도 가장 많지만 노르웨이 면세점 등에서 몇 백만 원씩이나 하는 물건을 몽땅 싹쓸이 하는 것을 보면 도대체 중국 사람들은 돈이 얼마나 많기에 쇼핑백은 물론 여행가방이 찢어질 정도로 저렇게 물건을 많이 사고 가는 곳마다 돈을 물 쓰듯이 펑펑 쓸까? 하는 생각도 들었으며 과연 21세기 부의 중심은 중국으로 이동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중국인들이 돈을 그렇게 많이 써도 노르웨이 사람들로 부터 욕을 가장 많이 먹는다고 한다. 중국 사람들은 시끄럽고 남을 배려하는 기본적인 예의나 공중도덕을 찾아볼 수 없으며 식당이나 호텔에서 제공되는 빵이나 음식을 다 먹고도 호텔방이나 다른 곳에서 먹으려고 자기들이 가져온 봉지에 싸가지고 간다고 하였다.

중국인들은 남자나 여자나 머리에는 새집이 지어져 있는 사람들이 많고 옷은 주로 어두운 검정색 계통이며 머리에서 발끝까지 겉모습을 보면 중국인이라는 걸 금방 알 수가 있단다. 한국 사람들은 이동하기에 편한 실용적인 아웃도어를 입은 사람이 많아서 옷을 보고 판단하면 금방 한국 사람인지 안다고 하였다. 그러나 일본 사람들은 옷을 세련되게 입고 다닌다는 것이며 옷 입은 것을 보고 한국과 중국, 일본인을 구분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하였다.

노르웨이는 우리나라와 같이 운전석이 좌측에 있지만 자동차들이 핀란드처럼 라이트를 켜고 다니는 것이 특색인데 이는 자동차 사고를 줄이는데 크게 기여한다고 한다. 노르웨이의 하천마다 콸콸 흐르는 물은 산 위의 하얀 빙하가 있어서 녹아 흐르는데 초록 옥색의 빙하 물은 영양이 풍부하고 유기성분이 있고 끈적끈적 하다고 하였다.

산에는 반듯하고 곧게 하늘로 뻗은 소나무, 전나무, 자작나무 등이 빽빽하게 자라고 있어 산림자원이 풍부한 것이 부러웠으며, 노르웨이는 보통 세집에 한집 꼴로 별장을 소유하고 있는데 이들이 중산층이라고 하며 40대 이전은 주로 캠핑카를 이용하고 40대 이상은 요트, 승마를 즐긴다고 한다.

사람이 고통을 느껴야 아름다움과 예쁨을 느낀다고 한다. 이는 노르웨이의 속담이라고 하는데 이 말이 여행기간 내내 나의 생각에 어른거리기도 하였다. 노르웨이에서 빙하 협곡인 피오르드는 속내 피요르드가 가장 길고, 게이랑 피오르드는 아름답고 ,하당 피오르드는 아기자기 하였다. 피요르드에 흐르는 물은 바닷물이며 U자나 V자 모양으로 파여 있다고 한다.

노르웨이의 제 2의 도시, 노르웨이의 보석으로 칭하는 작곡가 그리그의 고향인 베르겐 항구를 방문하였는데 , 베르겐 항구에는 어시장이 형성되었고 베르겐이라는 말은 생선이라는 뜻이란다. 베르겐은 인구 25만의 도시로서 독일인들이 한사동맹을 맺고 13~15세기에 북유럽의 중요한 경제적, 정치적인 발판이 되었다. (독일어 Hanse는 ‘무리’나 ‘친구’라는 뜻이라고 함).

한자 동맹의 전신은 독일 상인들이 활동한 2개의 주요지역, 즉 북해 연안의 저지대 및 브리튼 섬과 교역 관계를 갖고 있던 라인란트, 독일인들이 유럽 북동부의 방대한 배후지와 서유럽 및 지중해 지역 사이에서 중개상 노릇을 한 발트 해 연안지역에 있던 지방의 상인단체들이었다. 독일인들이 1300년경에 일찌감치 들어와 부를 축적하였다고 하며 베르겐에는 목조건물 이지만 6~ 8백 년 된 독일풍의 건물이 즐비하였다.

독일인들이 지은 건물 안에는 한사우물이 있었는데 동전을 던지고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우물이란다. 베르겐은 한 낮에는 생선냄새의 항구이지만 밤에는 아름다운 장미와 향수가 유혹하는 도시의 거리였다고 하니 상상이 갈 듯 하다.
 

여행길에서
 
무지개 피어나던 날
차창 밖에 스치는
지난 세월
 
나를 만나고
구름을 만나던
무지개는 꽃을 피웠다
 
감동의 순간에
소리 지르고 나는 울었다
 
나무들은 달려가고
멀어져 갈 때 뒤 돌아 보니
모든 것은 순간 이었다
 
우리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남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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