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329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30 > 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30 > 30분이 넘도록 그렇게 서서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가게주인인 듯한 여자의 신경질적인 눈초리가 벌써부터 미라의 뒷모습에 박혀 있었지만 미라는 개의치 않고 바깥쪽만 뚫어지게 쳐다보고만 있었다. "이봐. 학생. 여기 물건 사러 들어온 거야? 뭐야?"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여자가 눈 꼬리를 치켜들며 말했다. "네?" 흘긋 뒤돌아보다가 사나운 눈초리에 부딪힌 미라가 부스럭거리며 바지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눈길을 바깥에 고정시킨 채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고는 유리창에 붙어 있는 인형 중 하나를 툭 잡아떼어 여자에게 내밀었다. "이거 하나 줘요." 여자가 기가 막힌 듯 콧방귀를 뀌었다. 30분 동안 꼼짝 않고 있다가 겨우 달라는 게 500원짜리 인형이라니. 게다가 만 원짜리 한 장을 불쑥 내밀면서. 여자의 표 교육 | 한지윤 | 2013-11-07 16:11 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29 > 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29 > 겁에 질린 아이는 거의 울상이 되어 사과했지만 그럴수록 패거리들의 기세는 더욱 당당해졌다. 모여든 녀석들이 한마디씩 떠들었다. "이 자식, 겁도 없구만." "너, 죽고 싶어? 임마." 죽을죄를 짓기라도 한 것처럼 당하고 있는 아이를 향한 반 아이들의 눈빛은 동정심과 공포 반반이었다. 종호네 패거리들과 한 반이 되고 나서 누구도 그냥 지나친 적이 없는 일종의 관문과도 같은 이런 일들에 모두들 익숙해 있는 듯 했다. 묵묵히 쳐다보고 있던 현우의 눈빛이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잠깐만." 아이들이 몰려 있는 곳으로 걸음을 떼려는 현우를 진영이 붙잡았다. 말없이 바라보고 있는 진영의 눈이 '가지 마'라고 말하고 있었다. 현우는 안심하라는 듯한 눈빛을 보내고는 진영을 뿌리치고 그들에게 걸어갔다. "무릎 꿇어. 임마." 교육 | 한지윤 | 2013-10-31 14:36 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28 > 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28 > 순간 여학생들의 시선이 일제히 아까 법석을 떨던 남학생들에게로 쏠렸다. 남학생들의 얼굴에 쑥스러운 표정이 떠올랐다. "차렷, 경례." 구령이 덜어지자 초등학생처럼 부동자세를 취한 민선생이 상냥하게 인사를 하며 자신을 응시하는 까만 눈들을 사랑스러운 듯 바라보았다. 교실 전체에 생기를 불어넣어주는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바라보는 현우의 가슴속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한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알 수 없었다. 현우의 귀에 민선생의 목소리는 의미 모를 노래소리처럼 들려왔다. 국민학교때부터 지금껏 어느 선생님한테도 들어본 적이 없는 말투를 민선생은 지녔다. 첫째, 민선생의 말씨에는 사랑이 듬뿍 담겨 있었다. 직업으로서의 교사의 태도를 가진 흔한 선생님들에게서 볼 수 있는 타성에 젖은 모습을 교육 | 한지윤 | 2013-10-24 15:11 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27 > 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27 > 종호가 다 그렇고 그런 게 아니냐는 듯이 능청스러운 웃음을 흘렸다. "착각하지마. 난 그렇게 값싼 아이가 아냐. 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애가 아니라구." 억지로라도 붙잡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억지로 감추고 쌀쌀한 표정으로 종호의 손을 뿌리친 미라는 종종걸음을 치며 집으로 향했다. 2교시를 끝낸 남자 아이들이 갑자기 부산을 떨기 시작했다. 항상 여학생들 차지이던 교실 뒤쪽 거울로 달려가 머리를 빗는다, 구겨진 남방 깃을 편다, 아우성이었던 것이다. 자리에 앉은 여학생들은 그런 모습을 보며 입을 삐죽거렸다. "밥맛이야. 걸레가 빤다고 행주 되냐?" 그런 여학생들의 비웃음에는 아랑곳 앉고 남학생들은 어깨를 으쓱이며 서로 경쟁하듯 거울앞을 차지하려고 이미 밀치고 저리 밀쳐댔다. "왜들 저래?" 의아한 표정으로 교육 | 한지윤 | 2013-10-17 15:41 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26 > 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26 > 희뿌연 담배연기로 가득한 실내는 미성년자로 보이는 아이들로 가득 차 있었다. 숭숭 뚫린 구멍사이로 빛을 발하는 조명기구가 어지럽게 돌고 있는 플로어에는 하나같이 짙은 화장에 미니스커트를 걸친 여자 아이들이 껌을 씹은 채 흔들어 대면서 어쩌다 눈이 마주치는 남자들을 향해 눈짓을 보내고 있었다. 어깨가 다 드러나는 소매 없는 셔츠를 걸치고 번들거리는 머리칼을 세운 남자아이들도 주위의 여자애들을 눈여겨보면서 의미 있는 미소를 던지며 귀청을 찢는 듯한 댄스뮤직에 맞춰 팔다리를 흐느적거렸다. 플로어 한 구석에 놓인 마이크 앞에서 썬그라스를 쓰고 번쩍거리는 옷을 입은 디제이가 역시 흔들어대면서 소리를 질렀다. "신나는 인생, 멋진 세상. 오늘도 저희 디스코텍을 찾아주신 여러분께 심심한 사의를 표합니다. 혹시 미성년자나 교육 | 한지윤 | 2013-10-10 14:57 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25 > 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25 > 종례가 끝났다. 현우는 계속 쳐다보며 수군거리는 그 세 아이의 눈길을 무시한 채 천천히 가방을 챙겼다. 이번 학교생활도 순탄치 않을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현우는 그런 아이들을 잘 안다. 자기들의 세력을 위협할 만한 인물을 그냥 두지 않는 것이 그애들의 룰이었다. 조만간 큰 싸움을 걸어올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현우는 싸움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다. 꼭 아버지와의 약속 때문이 아니라 아무 의미 없는 세력다툼, 주먹싸움 따위에 취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자신의 결심에도 불구하고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는 뻔한 일이었다. 현우의 마음속에서 '될 대로 되라'는 생각이 조금씩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쟤들 조심해야 돼." 앞자리에 앉은 진영이 수근 대는 아이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앉아 있는 애가 교육 | 한지윤 | 2013-10-08 10:28 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24 > 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24 > "우당탕" 가스통을 내려놓는 것과 동시에 아가씨 쪽으로 발을 옮기려던 왕순이 귀청을 찢는 듯한 소리에 소스라칠 듯 놀라 밑을 보았다. 가스통에 깔려 간장독이 사정없이 바스러져 가루가 되어 있었다. 간장독에서 쏟아진 간장 냄새가 사방에 진동했다. "무슨 소리야!" 놀란 아주머니가 부엌에서 험상궂은 표정으로 뛰쳐나왔다. 울상이 된 왕순은 안절부절하며 건너편 창을 올려 다 보았다. 깔깔대던 아가씨는 혀를 쏙 내밀어 보이고는 창문을 닫아버렸다. 점심시간. 현우의 몇 칸 앞자리에 서너 명이 모여 있었다. 무스라도 발랐는지 바짝 치켜 올려 깎은 머리가 번쩍이는 덩치 좋은 아이가 앉은 곁으로 껄렁껄렁해 보이는 두 아이가 책상에 걸터앉아 현우의 빈자리를 바라보며 수군대고 있었다. "버릇없는 놈 같은데 한번 손 좀 봐야겠어 교육 | 한지윤 | 2013-10-07 09:07 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23 > 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23 > "오늘은 앞으로 남은 학기 동안 우리와 함께 공부할 새 친구를 소개하도록 하겠다. 이름은 오 현우. 앞으로 서로 잘 지내고 도와주도록." 교탁 위에 출석부를 세워 두 손으로 잡은 채 강선생이 말했다. "자. 친구들에게 인사하고 저기 빈자리로 가서 앉아라." 강선생이 진영의 뒷자리를 가리키며 현우에게 말했다. 그러나 현우는 아무 말 없이 강선생이 가리킨 자리로 들어가 앉았다. 처음 전학 온 학생에게서 수줍음 섞인 인사를 기대하던 아이들이 침묵을 깨고 수군대기 시작했다. "건방진 녀석인데.." "괴짜 하나 들어왔군." 조용하던 교실이 수군대는 아이들의 소리로 시끌벅적해졌다. "아. 조용. 조용히. 자, 조회를 시작하자." 강선생이 출석부를 두드리며 주의를 주었다. 먼저 학교에서 사고치고 쫓겨난 놈이라 골치깨나 교육 | 한지윤 | 2013-09-13 16:20 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22 > 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22 > 자기들의 판단이 옳았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그들의 모습을 떠올리자 참을 수 없이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안 돼. 내가 그런 식으로 매도당하는 건 참을 수 없어.' 현우는 주먹을 불끈 쥐며 이를 악물었다. 물끄러미 하늘만 바라보고 있던 경우는 무심코 고개를 돌리다가 현우의 얼굴을 보고는 불안해졌다. 무언가 심경의 변화가 생긴 것 같은데 몹시 화난 표정이었다. 경우는 슬며시 고개를 돌리고는 묵묵히 현우가 말을 꺼내기를 기다렸다. '그래. 들어가자. 들어가서 부딪치는 거다. 내가 원래 글러먹은 사람이 아니라는 걸 증명해야 한다.' 결심을 굳힌 듯 현우가 경우의 어깨를 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가자. 나쁠 거야 없겠지." 경우는 통증 때문에 일그러진 웃음을 지으며 서둘러 일어섰다. 아버지는 엄한 표정을 잃지 교육 | 한지윤 | 2013-09-13 10:53 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21 > 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21 > 그러나 요즘 들어 경우는 형에 대한 따뜻한 감정이 싹트는 걸 느끼기 시작했다. 그건 경우에게 아버지의 참모습이 관찰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형이 아버지에게 실망을 주고 나서 아버지는 경우에게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말씀과 칭찬이 늘어갔다. 그러나 바로 그런 아버지의 행동이 경우로 하여금 아버지와의 거리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아버지의 따뜻한 칭찬 한 마디가 건네져 올 때마다 그는 마치 아버지가 팔에 잔뜩 주어 자신의 어깨를 짓누르는 듯한 기분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아버지가 형 대신 자기를 선택했고 형에 대한 실망과 자신에 대한 기대가 정비례 관계를 갖고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경우는 참을 수 없는 압박감을 느끼게 된 것이다. 비로소 형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버지는 자식들을 한 인간 교육 | 한지윤 | 2013-08-26 15:59 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20 > 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20 > "형이 없으니까 집안이 텅 빈 것 같아." "내가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어." 현우가 몇 걸음 앞으로 나서 애꿎은 나뭇가지를 홱 잡아 꺾었다. "집안 분위기가 폭풍전야 같아. 아버지는 매일 늦게 들어오시고. 나도 학교 끝나면 발걸음이 천근만근이 된단 말야." 경우의 호소 섞인 말에도 현우는 꺾어든 나뭇가지만 툭툭 잘게 자르고 있을 뿐 말이 없었다. 굳이 경우의 언급이 아니더라도 아버지의 얼굴이 만들어내는 집안 분위기는 충분히 상상이 되고도 남았다. "둘이 아는 사이냐?" 아까부터 물끄러미 둘을 지켜보고 서 있던 왕순이 어느새 다가와서 현우의 어깨를 툭 치며 말하다가 어색한 분위기를 느끼고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어! 왜 이렇게 분위기가 소금 탄 커피 맛이냐." 쾌활한 왕순의 성격이 이런 순간에 진가를 발휘한 교육 | 한지윤 | 2013-08-26 14:51 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19 > 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19 > "이거 무슨 개뼉다귀 춤이야!" 그들은 가소롭다는 듯 물끄러미 왕순의 하는 짓을 쳐다 볼뿐 대항할 생각조차 않았다. "야! 맛 좀 봐라" 왕순은 힘껏 소리를 지르며 가운데 서있는 땅딸한 녀석의 배를 향해 주먹을 쥐고 돌진했다. 그러나 녀석이 잽싸게 몸을 피하는 바람에 왕순은 제풀에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야! 정정당당하게 대결하자. 왜 피하냐?" 아직도 사태의 심각함을 깨닫지 못하고 비틀거리며 일어서던 왕순에게 피했던 녀석이 주먹을 날렸다. 턱이 빠지는 듯한 통증과 함께 왕순은 다시 벌렁 자빠졌다. "우리, 말로 하자." 주춤주춤 일어서며 잔뜩 겁먹은 얼굴로 왕순이 말했다. "뭐, 이딴 새끼가 다 있어." 그때까지 빈정거리던 녀석들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불량배들은 돌아가며 한 대씩 주먹을 교육 | 한지윤 | 2013-08-16 12:37 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18 > 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18 > 자신같이 정신없이 바쁜 놈도 쉴 수 있게 해주고, 또 낮에는 흉한 모습을 드러내보이던 것들도 어둠이 푸근하게 가려주니까. 이 공터도 그랬다. 낮게 보면 지저분한 산동네 끝자락에 매달려 쓰레기, 깡통 나부랭이나 끼고 앉아 있는 볼품없는 곳이지만 밤이 되면 멀리 보이는 야경을 낀 고요한 안식처가 되지 않는가! '그러고 보니 어느새 이 동네도 정이 들었군.' 오갈 데 없는 처지로 이 동네에 발을 들여놓은지도 어느덧 5년이 넘었다. 그동안 이 동네에도, 자신의 모습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지금 서있는 공터에서 내려다보이는 빽빽한 주택가도 예전엔 아이들이 뛰어놀던 공터였는데, 어느 샌가 하나둘 집들이 들어서더니 좁던 골목길도 차들이 드나드는 길로 넓혀지고 자가용 승용차도 자주 눈에 띄는 동네가 되었다. 변하지 않은 교육 | 한지윤 | 2013-08-13 09:37 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17 > 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17 > "일 시켜 줄 거야, 안 시켜 줄 거야? 형이 안 받아주면 할 수 없지. 다른 데로 가보는 수밖에." 현우가 당장에라도 나갈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앉아, 이 녀석아. 그렇게 순 억지를 쓰니까 밤낮 어른들 속이나 썩이지." 왕순이 일어서려는 현우의 어깨를 눌러 앉히며 말했다. 도대체 무엇이 녀석의 반항심을 불러일으키는지 왕순은 알 수가 없었다. 부모님이 안 계신 것도 아니요. 먹고 살 걱정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이번엔 무슨 말썽을 부린 거야? 말해 봐." 그러나 현우는 대답이 없었다. 침울한 표정으로 때에 절어 검은색이 다 된 벽만 뚫어지게 바라볼 뿐이었다. "그래. 네가 언제 속 드러내고 다니는 놈이었냐. 싫으면 관둬. 내 코가 석자나 빠졌는데 남 생각 하게 됐냐. 이왕 왔으니 땡땡이치지 말고 교육 | 한지윤 | 2013-08-01 15:24 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16 > 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16 > 현우가 고개를 돌려 아버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대들었다. "건방진 자식! 내 눈 앞에서 사라져. 꼴도 보기 싫어!" 오국장은 화가 나서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 얼굴을 붉히며 안방으로 들어갔다. 비틀거리며 침대에 주저앉은 그는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거울 속에 불게 상기된 자신의 얼굴이 있었다. 이마 양 끝에 숨길 수 없는 흰머리가 삐죽 나와 있는 오십이 다된 중년 남자의 근심이 얼굴 가득 박혀 있었다. '나쁜 자식! 저를 키우기 위해 한평생 고생해온 것도 모르고…' 견딜 수 없는 심정으로 그는 담배연기만 자꾸 뿜어냈다. 현우의 얼굴에서 피식 웃음이 스쳐갔다. 차라리 잘 됐다는 심정이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뜻이 통하지 않는 아버지와는 서로 일찌감치 포기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육 | 한지윤 | 2013-07-18 18:26 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15 > 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15 > 교장은 말을 마치자마자 짧은 눈인사를 하고는 자리에 앉았다. "철썩" 오국장은 집으로 들어서기가 무섭게 현우의 뺨을 휘갈겼다 불꽃이 튀었다. "아니, 왜 이래요. 말로 해도 되잖아요." 갑작스런 남편의 행동에 놀란 어머니가 사이를 막아섰다. "도대체 언제까지 네놈 때문에 내가 이런 망신을 당해야 하는 거냐. 응? 이 녀석아." 혈압이 오르는 듯 뒷목덜미를 잡고 오국장이 소리쳤다. "그러니까 저한테 신경을 끊으시면 되잖아요." 손자국이 난 뺨을 어루만지며 현우가 내뱉었다. "뭐라고? 이런 나쁜 자식!" 현우의 건방진 태도에 아버지의 손이 다시 올라갔다. 그러나 매달리는 어머니에 의해 곧 제지되었다. 치켜 올린 아버지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제발 이러지 마세요. 진정 하시라구요." 어머니는 고개를 돌 교육 | 한지윤 | 2013-07-12 11:07 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14 > 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14 > "예, 제가 먼저 연락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나서 담배 한 대를 꺼내 물었다. 죽기보다 싫은 이 짓을 벌써 몇 번째 했던가. 얼마 전, 그렇게 아들 녀석에게 호통을 쳤는데도 두 달을 못 넘기고 또 사고를 치다니. 참으려고 해도 자꾸 얼굴이 불그락푸르락 달아올랐다. 그는 자세를 바로 고쳐 앉으며 책상 서랍을 열어 우황청심환 한 알을 입에 털어 넣으며 저고리를 껴입었다. "학교는 어느 한 개인을 위해 존재하는 곳이 아닙니다. 한 학생 때문에 다른 순진한 학생들이 나쁜 쪽으로 물들게 해서는 곤란합니다." 교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한 걸음 다가가 밖을 내다보았다. 하늘색 체육복을 입고 4열종대로 늘어서 있는 학생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교사의 호각소리에 맞추어 체조를 하고 있었 교육 | 한지윤 | 2013-07-11 11:01 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13 > 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13 > 갑작스러운 말소리에 고개를 돌린 왕순의 눈이 둥그래졌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다섯 배쯤 되어 보이는 여자가 밥상만한 얼굴에 눈웃음을 흘리며. 코끼리 넓적다리만한 팔을 들어 왕순의 어깨를 쳤던 것이다. 왕순은 몸의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헤헤, 뭘요. 하긴 다들 저 보구 얼굴밖에 없다고 하더군요." 가까스로 중심을 잡은 왕순이 한발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 "그래요." 왕순의 잘생긴 얼굴을 보고 첫눈에 반한 미애는 넋 나간 표정으로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붉으죽죽한 비곗살에 파묻혀 눈 코 입의 존재가 불분명한 얼굴이 역겨운 애교를 쥐어짜고 있었다. 그 눈빛을 피해 얼굴을 돌리는 왕순의 팔에 닭살이 돋았다. "이리 따라 오세요." 눈웃음을 치며 미애가 앞장서서 옥상으로 올라갔다. 가스를 새것으로 바꾸는 왕 교육 | 한지윤 | 2013-07-04 10:57 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12 > 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12 > '그나저나 어떻게 하나. 빨리 갖다 달라고 했는데 문 잠궈 놓고 다녀올까? 한 통 더 주문 받아서 나갈까? 에이! 안되지. 사업의 생명은 신용인데, 몇 푼 더 벌자고 단골을 놓칠 수야 없지. 빨리 갔다 와야지.' 그는 하루 종일 그랬던 것처럼 칠판에 128-2라고 적고는 가스통을 들어 오토바이 뒤에 싣고 밧줄로 잡아맸다. 바로 옆 슈퍼를 힐끗 보니 아저씨 혼자 졸고 있었다. 왕순은 하는 수 없다는 듯 문을 잠그고 오토바이에 매달아 놓은 카세트를 틀었다. "빨간 모자를 눌러 쓴 난 항상 웃음 간직한 삐에로~" 경쾌한 음악이 쾅쾅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왕순은 흥얼흥얼 노래를 따라 부르면서 기어를 넣고 액셀레터를 힘차게 제켰다. 1인2역을 하느라 꽁지가 빠지는 처지를 잊은 듯 왕순은 가볍게 어깨를 흔들며 거리를 교육 | 한지윤 | 2013-06-24 14:51 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11 > 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11 > 체육대회 때 농구나 배구를 하는 걸 보면 다람쥐같이 날렵한 사람이었다. 대학 때 태권도 선수를 하다가 부상으로 길을 바꾸었다고 했다. 운동할 때와는 달리 걸을 땐 뒤뚱거린다고 해서 별명이 도날드인 그는 미간에 내천(川)자를 그리면서 못마땅한 듯 현우를 노려보고 있었다. "너 반항하는 거야?" 갑자기 볼에서 불꽃이 튀었다. 불시에 당한 일격이라 이빨까지 얼얼했다. 끄떡하면 따귀 때리고 툭하면 빠따치는 사람들이 폭력은 절대 안 된다니. 현우는 어이가 없었다. 하는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이 자식. 정신 차리려면 아직 멀었어. 지난번에도 너희 아버지가 하도 사정 하길래 봐주었더니 아주 개차반이군. 이번엔 절대 용서 못해. 선생님들이 무슨 허수아빈 줄 알어? 내일 아버님께 학교에 나오시 교육 | 한지윤 | 2013-06-17 10:48 처음처음이전이전이전11121314151617다음다음끝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