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꾼 유태헌·한관우 기자의 금북정맥 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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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꾼 유태헌·한관우 기자의 금북정맥 탐사
  • 홍주일보
  • 승인 2013.09.26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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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지역 역사·문화·풍속 이야기 ⑮

궁예·임꺽정·어사 박문수 일화가 전해지는 칠장산

 

▲ 칠장산 서남쪽 산줄기를 굽어 보듯 자리 잡은 칠장사 전경.


혜소국사 악인 교화해 현인으로
칠장사 1000년전 무료급식 실시
금북정맥 각종 개발로 훼손 심해

혜소국사 악인 교화해 현인으로 칠장사 1000년전 무료급식 실시 금북정맥 각종 개발로 훼손 심해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칠장리와 삼죽면 미작리, 금광면 삼흥리 경계에 솟아 있는 칠장산은 금북정맥의 들머리다. 이곳에서 북쪽으로는 한남정맥이 이어지고, 남으로는 금북정맥, 동쪽으로는 한남, 금북정맥으로 이어진다. 칠장산에는 신라 선덕여왕 5년(636)에 자장율사가 창건했다는 칠장사가 서남쪽 산줄기를 굽어보듯 자리하고 있다. 10세기경 혜소(慧炤)국사가 머물면서 일곱 명의 악인(惡人)을 교화해 현인(賢人)으로 만들었다는 설화가 전해지며, 임꺽정의 스승인 갖바치가 머문 곳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이 절에는 궁예와 임꺽정의 일화가 밀접히 맞물려 있다. 궁예가 10살까지 칠장사에 숨어 지냈다는 등 역사 속 인물들이 간접적으로 연결되고 있다. 칠장사는 조계종 제2교구본사 용주사의 말사로 경기도문화재자료 25호로 지정돼 있다. 조선시대 왜구의 침입으로 전소됐다가 중건되는 등 수난의 역사도 간직하고 있다. 칠장사가 자리한 칠현산은 본래 아미산이었는데, 산 아래 토굴에서 수행하던 혜소국사(972~1054)에 의해 이름이 바뀌었다고 전한다. 하루는 마음이 선량하지 못한 사람 일곱 명이 찾아와 뵙기를 청하여 국사와 마주했다. 이들은 국사의 신묘한 도력에 이끌려 설법을 청했고, 국사는 이들을 교화하여 일곱 현인으로 만들었다는 연유로 산 이름을 칠현산(七賢山)으로 고쳐 부르고, 칠장사(漆長寺)를 칠장사(七長寺)라 개칭하게 됐다고 한다.
또한 혜소국사비 기록에 따르면 칠장사는 그 당시 이미 무료급식소를 차려 서울을 오가는 사람들에게 무료급식을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1000여 년 전의 일이다. 이처럼 칠장사는 오가는 인연을 중시하는 유서 깊은 사찰이다. 1000여 년이 흐른 지금의 칠장사도 그 전통을 계승해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것. 2007년 3월 지강(志剛)스님이 주지로 부임하면서 지역사회와의 소통이 어느 때보다도 활발하다고 전한다.

주지 소임을 맡자마자 사찰과 지역의 인연을 생각하며 할 일을 모색했다는 것이다. 시골이다 보니 어려운 아이들이 먼저 눈에 들어와 필요한 것을 챙기기 시작했다. 우선 학교 두 군데를 선정해 장학금을 전달하고,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교복을 못해 입는 아이들의 얘기를 듣고 해결해 줬다. 어느 해에는 7~8명에서 10명에 이를 때도 있었다고 한다. 집안형편 때문에 학원이나 과외는 꿈도 못 꾸는 고교생들이 야간학습조차 받기 어렵다는 얘기를 듣고는 그 학교에 매년 500만원씩 지원하고 있으며, 중학교에도 매년 500만원씩 챙겼다. 이것이 계기가 돼 신도들에게는 신심을 고양하고 나눔의 동기와 정신을 실천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 칠장사 대웅전 앞에서 문화해설사 윤민용 씨가 칠장사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한편 칠장사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문화해설사 윤민용(76)씨였다. 그는 자신의 문화재 설명에 집중하는 관람객들이 많은 것에 대해 "문화와 종교에서 서로의 공유감이 행복을 길어내는 샘터"라고 설명한다. 그는 "문화재에 관한한 새로운 정보란 없다"면서 역사와 지리, 설화, 족보 등이 한데 어우러진 종합정보로 스토리텔링의 창작기법이라고 말한다. '새 정보가 오랜 문화재 스토리텔링에 왜 중요한가?'라는 질문에는 어사 박문수의 스토리텔링을 창작해 칠장사를 유명하게 만든 그 동안의 이력으로 답을 대신한다. 조선시대 어사 박문수가 3년의 과거 낙방을 털어내고 장원급제하기 직전에 하루를 묵으며 기도하고 갔다는 칠장사 나한전은 스토리텔링에 의해 입시기도의 유명세가 시작됐다는 것이다.

윤민용 해설사에 따르면 유생(儒生)이 활개 치던 시절에 과거시험과 직결된 안성의 칠장사에서 여러 가지 스토리텔링을 발굴해 냈다. 일단 어사 박문수의 스토리텔링은 입시기도와 연결되면서 기도처로서 '나한전'의 확실한 가치를 찾아냈다. 나한전은 박문수의 일화를 그대로 간직하면서 동시에 중창자인 혜소국사가 산적 일곱 명을 교화했던 일화까지 겹쳐져 우리 역사의 산실로서 충분한 소재를 제공하고 있다. 비각에 보존된 혜소국사비는 보물 제488호로 1060년(고려 문종14년)에 건립돼 험난한 과정을 거치며 보존돼 그 역사를 밝히고 있다. 또렷한 글씨가 1000여 년 그대로 현존해 생동감이 강하다. 글은 김현이 짓고 민상재가 썼으며, 1964년 유교의 세도가들에 의해 두 동강이 났다가 1976년 지금의 형태로 복원됐다. 극락전의 보물1627호 인목왕후어필칠언시도 살아있는 스토리텔링이다. 이렇듯 칠장사에는 변화된 흔적이 많아 이를 역추적하면 풍부한 역사스토리가 나오고 이를 정밀하게 꿰어 맞추면 스토리텔링이 된다는 것. 칠장사가 당초 '漆仗寺'에서 일곱 산적스토리가 섞이며 '七長寺'로 바뀌고, 뒷산도 '아미산'에서 '칠현산'으로 바뀌는 변화가 조건이라고 설명했다.

금북정맥 탐사 막바지에 찾은 충북 진천의 배티(梨峙)성지는 신유박해(1801년)로부터 병인박해(1866년)까지 이어지는 천주교 박해시대 때 천주교인들이 박해를 피해 숨어들었던 골짜기다. 1830년을 전후로 교우촌(비밀신앙공동체)이 형성되기 시작해 1866년쯤에는 교우촌이 15곳에 이르렀다고 한다. 또 조선교구 최초의 신학교가 있던 곳이고, 한국천주교회의 첫 번째 신학생이자 두 번째 사제였던 최양업(토마스 1821~1861) 신부의 사목 중심지로 교리서인 '천주가사'가 탄생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배티 주변으로는 27여기에 이르는 순교자들의 무덤이 산재해 있다. 지난 1976년 천주교성지로 개발된 배티성지에는 1996년 6월 완공된 성당(최양업 신부 탄생 175주년 기념성당)과 성당에서 야외제대까지 연결된 청동으로 만든 십자가의 길, 야외제대와 성모상, 최초의 조선교구 신학교와 최양업 신부의 성당과 사제관으로 사용되던 초가집을 재현한 건물, 양업영성관 및 수련관, 무명순교자 6인의 묘역 과 14인의 묘역, 최양업 신부 동상 등 주변이 잘 조성돼 있다.
배티순교성지 담임신부님에 의하면 "김대건 신부와 함께 조선 최초의 신학교 유학생이었던 최 신부는 박해시대에 배티성지에 최초의 신학교를 만들고 가톨릭신자들의 비밀교우촌이 산재해 있던 배티 인근을 거점으로 전국적인 사목활동을 했다. 최양업 신부는 당시 1년에 7000리(2749㎞)를, 과로로 선종할 때까지 평생 8만리(3만 1418㎞) 이상을 걸으며 초기 한국가톨릭의 전국화에 결정적 헌신을 했다"고 전한다. 또 배티를 거점으로 하는 최양업 신부 현양운동을 통해 국내는 물론 세계적 순례성지로 거듭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금북정맥 탐사를 통한 내포지역 역사·문화·풍속이야기 취재는 이제 시작이다. 숨겨진 역사문화적 자산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이번 탐사취재과정에서의 산행은 소중한 인간의 활동이라는 느낌이다. 대자연 가운데 특히 산은 우리에게 맑은 공기와 울창한 숲과 깨끗한 물을 공급해 주는 생명원이다. 사람은 자연에 가까워질 때 병에서 멀어지고 자연과 멀어지면 병에 가까워진다고 한다. 금북정맥을 17차례에 나누어 탐사취재를 했다. 이번 금북정맥 탐사를 통해 금북정맥이 너무 많이 훼손됐고 파괴된다는 점이다. 도로에, 철도, 고속도로, 골프장에 쓰레기장까지 널브러져 있었다. 또 군부대 등 각종 시설물과 개발로 인해 통과하지 못하는 곳도 많았다. 정맥이 낮은 곳은 아예 포장도로로 바뀌었고, 산등성을 가로 지르는 송전철탑은 왜 그리 많은지 참으로 개탄스럽기까지 했다. 갈기갈기 찢겨진 능선으로, 산에서 산으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금북정맥 생태계의 보존은 우리 삶의 현실과제다. 우리가 자연을 가까이하고 아끼려는 마음은 우리들의 안식처이며, 후손들의 생명이 자라날 터전을 보호하는 뜻 깊은 일이다. 민족정기가 도도하게 흐르는 금북정맥은 지금 이 순간에도 훼손되고 있다. 더 이상의 훼손과 파괴를 막아야 한다는 절박함을 호소하며 우리의 삶의 터전인 금북정맥이 영원히 원형으로 보존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끝>  <이 기획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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