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1,409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삶과 기억의 편린 역사기록 1950~1953 삶과 기억의 편린 <9> 미군과 한국의 어린이들 한국전쟁이 한창일 당시 미군들이 구호지원등을 위해 지금의 한 초등학교를 방문해 촬영한 것으로 추정된다. 좌 우의 미군들 사이로 뒤로 보이는 두명은 한국인 교사로 보이며 가운데 줄 중앙의 학생은 초등학생으로 보이나 앞의 세 어린이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기에는 어린나이로 추정돼 당시 학교에서 어린이들을 보살폈던 것으로 보이는 사진이다.∙구재회 박사의 FADING AWAY에서 기획특집 | 홍주일보 | 2018-11-09 09:01 “다 얻어먹고 다니다시피 하고 살았지” 당신의 삶이 역사다-당신의 자소서<18> “다 얻어먹고 다니다시피 하고 살았지” 나 태어난디는 청양서 태어났지. 어머니 아버지가 나 열 살 먹어서 다 한꺼번에 돌아가셨어. 그래서 거기서두 넘의 불 때주고 밥 얻어먹고 그러구 컸어. 어머니는 음력 9월에 돌아가시구 아버지는 음력 10월에 돌아가셨지. 아버지가 어머니 돌아가시고 나서 이것들을 으떻게 델고 사느냐구 그렇게 우시더니만 담달에 돌아가시더라구. 큰 언니는 시집을 갔었고 오남매가 나무 해다 주고 그렇게 살았지. 여동생이 다섯 살이었는데 말도 못하게 고생했어. 부산인가 어디루 보냈는디 애들 봐 주고 밥 준다고 해서 그 때 일곱 살에 부산 갔어. 그랬는디 거기서 밥도 안 주고 때리고 그러드랴. 연탄 땔 때인데 냉방에서 담요 하나 주고 자라 하더래. 밤에 몰래 나와서 부뚜막에 엎드려 잤대. 그러다 그 집 세 사는 이가 너 차 태워주면 갈 기획특집 | 취재=김옥선/사진=김경미 기자 | 2018-11-06 09:15 두 아이 엄마가 된 네팔아가씨, 우니사 다함께 홍성 사람, 다문화 가족 만세 <18> 구항면 마온리 타망 우니사 두 아이 엄마가 된 네팔아가씨, 우니사 네팔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하얀 눈으로 뒤덮인 히말라야다. 네팔은 히말라야 산맥 남서면에 위치한 나라로 중국의 시짱자치구와 국경선을 접하고 있으며 동·서·남으로 인도에 둘러싸여 있다. 대히말라야산맥은 티베트와 경계를 이루는데 정작 네팔 사람들이 눈을 만져보는 기회는 별로 없다고 한다. 그저 멀리 눈이 쌓인 산맥을 바라볼 뿐이다.네팔에서 한국으로 시집을 온 타망 우니사는 지난 2013년에 남편을 따라 홍성에 왔다. 현재 홍성에 거주하는 네팔 다문화 가족은 모두 3가구지만 이주노동자들은 많다.“네팔은 라면 공장, 담배공장, 술 공장 밖에 없다. 공장이 다양하게 없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돈을 벌러 외국으로 나간다. 20살이 되면 말레이시아나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곳으로도 많이 나간다. 벼를 많이 기획특집 | 취재=김옥선/사진=김경미 기자 | 2018-11-05 09:00 충만한 행복함과 편안한 시골살이 도시청년들, 귀농·귀촌의 꿈을 실현하다<29> 홍동면 구정리 류승아 충만한 행복함과 편안한 시골살이 집과 밭이 조금 떨어져 있다. 남들은 조금 불편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다 생각하기 나름이다. 자전거를 타고 10분이면 도착하는 밭으로 가는 길은 충만한 행복함과 편안함 그 자체다.이른 새벽, 해가 떠오르는 것을 보며 자전거를 밟는다. 살갗으로 부딪히는 상쾌함에 온 몸이 살며시 떨린다. 농로 가운데 쌓여 있는 자갈길을 밟다보면 자전거 바퀴에서는 짜르르~소리가 경쾌하게 들려온다. 그 소리 또한 기분 좋은 행복감이다. 내 온 몸을 다해 충분히 밭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 그 길에는 다시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며 노동의 고단함을 생각하기보다 노동의 풍성함과 수고에 격려를 보내주는 것 같다. 하늘의 변화를 보는 것만으로도 그저 행복할 뿐이다.지난해 홍동면으로 귀농한 류승아 씨는 밭으로 가는 그 모든 기획특집 | 취재=김옥선/사진=김경미 기자 | 2018-11-04 09:13 빈집은 반값 임대주택·주차장, 목욕탕은 미술관으로 농촌의 빈집에서 도시재생의 길을 찾다 <7> 빈집은 반값 임대주택·주차장, 목욕탕은 미술관으로 흉물로 방치된 빈집 정비로 도시미관 개선·쾌적한 도시환경 제공빈집을 리모델링 주변시세 반값의 임대주택 제공, 농어촌에 활력빈집 건축주 동의로 공영주차장·시민쉼터로 5년간 무상제공 조건원도심 빈집·빈점포 활용, 창업가 위한 사무실·창업지원 공간으로최근 ‘빈집’이 전국적으로 늘어나면서 새로운 사회문제로 나타나고 있다. 빈집은 일반적으로 거주자가 다른 지역으로 이주해 사람이 살지 않거나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건축물을 말한다. 보통 빈집은 서구의 도시쇠퇴에서 흔히 나타났지만, 우리나라에서도 도시 쇠퇴의 양상 중 하나로 나타나고 있다. 빈집은 지역 활력 저하, 부동산 가격 하락 등의 과정을 통해 심각한 도시쇠퇴를 야기할 수 있다. 단순히 소유주의 부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주택이 오랜 기간 동 기획특집 | 취재=한기원/김경미 기자 | 2018-11-02 09:23 삶과 기억의 편린 역사기록 1950~1953 삶과 기억의 편린 <8> 한국전쟁 당시 국민학생들한국전쟁 당시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 학생들의 모습. 조회를 하거나 강연에 집중하고 있는 학생들의 빡빡머리 모습과 물려받아 입은 것으로 보이는 복장에서 당시의 시대상을 엿볼 수 있다. 가을로 추정되는 계절에 전면을 응시하면서도 사진을 찍는 카메라를 쳐다보고 있기도 하다. 대부분이 흰고무신과 검정고무신을 신고 있는 가운데 끈이 없는 운동화를 신은 학생이 뒷줄에 보인다. 좌우에는 교사로 추정되는 어른들이 보이는데, 특히 구두를 신고 양복바지를 입은 안경 낀 어른의 모습이 이채롭다∙구재회 박사의 FADING AWAY에서 기획특집 | 홍주일보 | 2018-11-02 09:03 셋방 하나 얻을 돈 없어 얼매나 서운헌지··· 당신의 삶이 역사다-당신의 자소서<17> 셋방 하나 얻을 돈 없어 얼매나 서운헌지··· 홍동면 수란이 고향이여. 왕지가 한 부락이었는데 다른 부락이 됐지. 스물한 살에 일루 왔어. 아버지가 엄해서 연애를 할 수도 읎어 중매해서 왔지. 시아버지, 시어머니, 시동생, 시누는 결혼했구. 우리 아버지가 식구들 간편하다구 가라고 해서 왔지. 오남매 뒀지. 넷이 아들, 막내가 딸. 내가 안 뵈아서 애들 가르치느라 너무 힘들었어. 땅도 팔구 일도 무쟈게 했어. 우리 집 양반도 배운 거 읎은께 서울 가서 노동 일 했지. 그 어려운 벽돌 같은 거 빼고 나두 거기 가서 더러 일하고. 시골서 길쌈 삼베 700자까지 짰어. 1자가 1미터도 안 돼. 애들 등록금 허느라구 밤낮없이 삼은거여. 이빨로 삼아가지고 지금 이빨이 다 삭았잖아. 지금은 한 자에 만 원, 옛날에는 삼천 원했어. 700자 팔러 예산에 갔어. 엄청나 기획특집 | 취재=김옥선/사진=김경미 기자 | 2018-10-30 09:09 “한국에서 살아 기쁩니다” 다함께 홍성 사람, 다문화 가족 만세 <17> 홍북읍 신경리 이 예브니아·이 알렉산도 “한국에서 살아 기쁩니다” 러시아를 비롯한 독립국가연합에 살고 있는 한국인 교포를 통틀어 고려인이라 일컫는다. 러시아어로는 ‘카레예츠’라고 하며, 현지의 한인 교포들은 스스로를 고려사람(Koryo-saram)이라고 부른다. 한국인들이 러시아로 이주하기 시작한 것은 1863년 농민 13세대가 한겨울 밤에 얼어붙은 두만강을 건너서 우수리강(江) 유역에 정착했고, 이어 1865년에 60가구, 그 다음해에 100여 가구 등 점차 늘어나 1869년에는 4500여 명에 달하는 한인이 이주했다.이후 이민은 계속됐는데, 거의가 농업 이민이었으나 항일 독립운동가들의 망명 이민도 있었다. 그러나 스탈린의 이른바 대숙청 당시 연해지방의 한인들은 유대인과 체첸인 등 소수민족들과 함께 가혹한 분리·차별정책에 휘말려 1937년 9월 9일부터 10월 말 기획특집 | 취재=김옥선/사진=김경미 기자 | 2018-10-29 09:01 하고 싶은 일하며 자유롭게 살자! 도시청년들, 귀농·귀촌의 꿈을 실현하다<28> 홍동면 금평리 이동호 하고 싶은 일하며 자유롭게 살자! 기계를 공부했던 한 청년은 졸업 후 직업군인의 길을 걸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퇴역을 앞둔 혹은 선임 군인을 보며 자신의 미래를 그려보게 됐다. 똑같이 맴도는 일상을 되풀이하다가 아직도 일을 할 수 있는 나이에 퇴직 후 어떤 일을 할지를 고민하다가 경비직 등의 일을 찾아 다닌다. 그 모습이 잘못 되었다거나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그 모습이 머잖은 미래에 자신에게도 다가올 모습이라 생각하니 직업군인이 재미없어졌다. 별다른 망설임 없이 하던 일을 그만 뒀다. 그 때가 스물일곱 살이었다. 홍동면 금평리에 거주하는 이동호 씨는 직업 군인을 그만 둔 뒤로 배낭 하나를 들고 세계 여행길에 나섰다. 20개 나라를 9개월 동안 다녔다. 각 나라의 유명한 도시를 돌아다니면서 우리네 사는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기획특집 | 취재=김옥선/사진=김경미 기자 | 2018-10-28 09:19 일본 구마모토지진 2년, 현장에서는 아직도 복구 중 충청권 지진 안전지대 아니다!<7> 일본 구마모토지진 2년, 현장에서는 아직도 복구 중 무너진 구마모토 성 돌 일일이 번호를 매겨 복원할 위치에 쌓일 예정일본인들 ‘지진으로 성이 무너진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는 교훈구마모토성 복원작업 대중에게 공개 꾸준히 지진에 대한 경각심 유지성 주변 ‘구마모토 대지진 잊지 말자’ 캠페인 포스터 쉽게 볼 수 있어지난 2016년은 일본 구마모토에 비극의 해였다. 규모 6.5의 전진과 7.0의 본진이 구마모토를 강타했기 때문이다. 지진은 여진이 더 무서운 법이다. 2016년 4월 14일 발생한 구마모토 지진이 일어난 지 2년 6개월이 지난 시점에 지진피해가 심했던 구마모토성의 현장을 취재하던 중인 지난 9월 30일 오후 5시 54분께 일본 홋카이도에 규모 5로 추정되는 지진이 발생했다고 일본 기상청이 밝혀 묘한 현상이 중첩되고 있었다. 지 기획특집 | 취재=한기원/사진·자료=김경미 기자 | 2018-10-26 09:11 삶과 기억의 편린 역사기록 1950~1953 삶과 기억의 편린 <7> 한국전쟁이 한창인데도…한국전쟁이 발발한 상황에서도 시골의 한적한 마을에는 평화로운 분위기다. 길가는 아낙들의 모습과 미소 짓는 모습, 교복을 입고 가방을 든 채 손잡고 가는 여학생들이 정겹다. 노들목과 모비루라는 한글 간판과 修理(수리)라고 쓴 한자 간판이 이채로운 가운데 기와집과 특히 2층의 양옥집, 기와를 올린 일본식 집이 눈에 띤다. 우마차와 개천, 어른과 아이들의 모습과 복장이 시대상을 말해주는 듯하다.∙구재회 박사의 FADING AWAY에서 기획특집 | 홍주일보 | 2018-10-26 09:00 “여보 사랑해 그 말 들으니 오늘 죽어도 내 원이 없어” 당신의 삶이 역사다-당신의 자소서<16> “여보 사랑해 그 말 들으니 오늘 죽어도 내 원이 없어” 스물세 살에 왔어. 여기가 고향이여. 여기서 금곡리로 갔다가 아배 직업 따라 도루 나왔지. 저 위 양조장 위에서 살다가 집 지어서 일루 온 지 2~3년밖에 안됐어. 나는 나이는 비록 먹었어두 사는 게 복잡혀. 나는 친정에서 9남매고 시집은 10남매여. 난 9남매서 둘째. 아배는 10남매서 둘째더라구. 고향은 은하 대천리여. 3살 먹어서 일루 이사 왔대. 우리 아버지가 육촌 형님이 방앗간 하는디 우리 아버지 열아홉 살 먹어서 데려왔어. 걸음 아장아장 걸을 때 와서 여기 와서 늙어서 지금까지 살어.동기간이 9남매 하나 안 죽고 사는디 작년에 일곱째가 뭐가 비관해서 목 매달아 죽고 우리 여덟이 고냥이야. 어머니 아버지만 돌아가시고. 제일식품 거기가 내 바로 밑이여. 저기가 셋째. 요 바로 밑이 큰 오빠, 기획특집 | 취재=김옥선/사진=김경미 기자 | 2018-10-23 09:16 하늘이 내게 보내준 천사 다함께 홍성 사람, 다문화 가족 만세 <16> 홍북읍 신경리 조경철, 조은하 하늘이 내게 보내준 천사 한국의 사진작가 김영갑은 루게릭병을 앓으면서도 사진 작업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리고 돌 하나하나 자신의 마음을 담아 두모악 갤러리를 만들었다. 이제 갤러리는 많은 사람들이 방문해 사진작가의 애잔하고 가슴 벅찬 사진을 관람한다, 루게릭병은 근위축성측색경화증으로 뇌와 척수에 있는 운동신경이 손상되는 희귀 질환이다. 루게릭병을 앓고 있는 조경철 씨의 옆에는 필리핀에서 온 조은하 씨가 있다.조은하 씨는 필리핀에서 대학을 다니던 중 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지면서 가세가 기울었고 학업을 그만두고 이후 아버지 병시중을 거들었다. 그러나 결국 아버지는 3년을 넘기지 못하고 55세 나이에 하늘나라로 떠났다. “한국으로 시집 간 친척언니가 지금의 남편을 소개했다. 남편이 장애인이었지만 3년 동안 아버지를 기획특집 | 취재=김옥선/사진=김경미 기자 | 2018-10-22 09:17 귀농은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도시청년들, 귀농·귀촌의 꿈을 실현하다<27> 장곡면 옥계리 양현모 귀농은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어떤 일을 하는데 있어 준비과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목표를 정하고, 그에 필요한 소요되는 예산을 계획하고, 필요한 항목들을 체크하는 등 그 과정은 섬세하고 꼼꼼함을 필요로 한다. 아무리 자신이 있는 일이라도 꼭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그렇지 않으면 무리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귀농을 하기 위해 연남학교 귀농 교육과 충남대 마이스터 과정 등을 수료하는 등 철저하게 준비해 귀농을 한 양현모 씨는 표고버섯 재배로 장곡면에 정착했다. “자격증 등을 취득할 수 있는 여건이 되면 무조건 하라고 권하고 싶다. 또 여기저기 귀농과 관련한 교육도 많이 하는데 이를 십분 활용해라. 그러나 절대 무언가를 해달라고 하지 말고 정보를 공유해라. 또 다양한 정책자금도 받을 수 있지만 공모사업도 해볼 만한 일이다.” 기획특집 | 취재=김옥선/사진=김경미 기자 | 2018-10-21 09:15 삶과 기억의 편린 역사기록 1950~1953 삶과 기억의 편린 <6> 한창 전쟁 중인데도…6·25 한국전쟁이 한창 진행 중인 시기인데도 미군들 사이에 서있는 한국인 노부부의 모습은 밝기만 하다. 한옥 기와지붕과 초가집이 대조를 이루는 가운데 한복을 입은 채 보따리를 이고 웃는 부인의 모습과 망건을 쓰고 한복을 입은 남자의 모습이 대조적이다. 미군의 손에 들린 카메라와 초가집 앞 전봇대를 잡고 바라보는 소년의 모습도 이채롭다.∙구재회 박사의 FADING AWAY에서 기획특집 | 홍주일보 | 2018-10-19 09:08 경주지진 2년… 한옥 전통기와 짝퉁 함석기와로 바뀌고 충청권 지진 안전지대 아니다!<6> 경주지진 2년… 한옥 전통기와 짝퉁 함석기와로 바뀌고 경주지진 23명다치고 재산피해 5368건에 110억 원에 이르러행정안전부·기상청 이원화된 긴급재난문자 기상청으로 일원화한옥마을 상당수 지붕 전통 한옥골기와 대신 함석기와로 수리관광객 발길 뚝, 자타가 공인하는 수학여행1번지 명성 사라져2016년 9월 12일 오후 7시 44분 경주시 남남서쪽 8.2㎞ 지역에서 규모 5.1 지진이 발생해 경주시민들을 불안과 공포로 몰아넣었다. 그러나 이는 결과적으로 얼마 뒤 들이닥친 본진의 예고편에 불과했다. 경주시민들이 마음을 추스를 새도 없이 불과 48분 뒤인 오후 8시 32분 전진 진앙과 500m 떨어진 지역에서 규모 5.8의 본진이 지축을 뒤흔들었기 때문이다. 1978년 기상청이 계기 지진을 관측한 이래 역대 최대 규모였다. 두 차례의 강력한 지진으로 기획특집 | 취재=한기원/사진·자료=김경미 기자 | 2018-10-19 09:03 “신랑이 애기 같더라니까. 난 다 컸지,열아홉이니” 당신의 삶이 역사다-당신의 자소서<15> “신랑이 애기 같더라니까. 난 다 컸지,열아홉이니” 와리 목과동. 나 시집 올 때 여기는 모과가 얼매나 많아 목과동이라 그럴가 했는디 모과도 읎대? 열아홉 살에 가마 타고 시집 왔지. 우리 신랑은 열여덟 먹었어. 가마 타고 시집 오는데 신랑은 앞에 오잖어. 뒤에 오는 가마가 뭐라 하냐면 ‘방방이 돌뫼서 돌리면 방방이 돌려라 쉬이 신랑 젖 먹고 싶다 한다’ 그랬어. 어려서 장가 가니 신랑 젖 먹고 싶단 소리여. 가마 속에서 들었단께. 신랑도 못 보고 시집 왔어. 초례 치르느라고 저 짝에 있는 신랑 요리 봤지. 신랑 각시허구 만나보도 안 혀. 그냥 어른들이 초례 지낼때만 보지. 왔다갔다나 했깐. 말허면 그냥 와서 사는겨. 애기 같더라니께. 나는 그 때 다 컸지. 열아홉이니. 신랑은 어려빠져. 핵교도 안 다녔어. 그 때 핵교 다니면 춤 춘다고 안 보냈어. 한글은 기획특집 | 취재=김옥선/사진=김경미 기자 | 2018-10-16 09:14 서로가 잘 도와주는 우리는 필리핀 가족 다함께 홍성 사람, 다문화 가족 만세 <15> 장곡면 산성리 김점대, 김에델라 서로가 잘 도와주는 우리는 필리핀 가족 낯선 나라에 이주해 오랜 시간 정착해 살아도 그 나라 사람이 될 수는 없다. 그 나라 말을 잘 하고, 음식을 잘 먹고, 사람들과 잘 어울려 지낸다고 해도 말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내 가족이 있고 모국의 사람들이 가까이 있어 외롭지 않게 서로를 의지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다. 필리핀에서 이주해온 다문화 가정들이다.장곡면에 거주하는 김점대, 김에델라 씨는 지난 2014년에 결혼했다. 김에델라 씨가 한국에 온 것은 지난 2004년이었다. 결혼과 함께 한국에 왔지만 결혼에서는 쓴 고배를 마셨다. 이후 김점대 씨를 만나 아이를 낳고 시아버지를 모시며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다. 주변에서는 한국 여자들도 쉽지 않은 시골살이를 더구나 몸이 불편한 시아버지를 모시며 말끔하고 정갈하게 생활하고 있음에 그 칭찬이 자 기획특집 | 취재=김옥선/사진=김경미 기자 | 2018-10-15 09:13 하고 싶은 일하며 사는 시골생활 도시청년들, 귀농·귀촌의 꿈을 실현하다<26> 서부면 어사리 박용백, 임선주 하고 싶은 일하며 사는 시골생활 예전에는 평생 먹고 살 걱정 안하는 공무원이나 교사 등을 최고의 직장으로 알았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공무원이나 교사를 할 수는 없다. 또 평균 수명이 늘어난 만큼 설혹 공무원이나 교사가 됐더라도 언젠가는 너무 이른 나이에 퇴직을 한다. 퇴직을 하고도 불행인지 다행인지 한참을 더 살아야 한다. 이제는 평생직장이 아니라 평생 직업 시대로 변화됐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평생 직업으로 농부를 선택한다. 정년도 없고 누군가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다.지난 2016년 서부면 어사리로 귀촌한 박용백, 임선주 부부는 서울에서 백화점 일을 했다. 백화점 일은 서비스 직종이라 늘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직업이었다. 아들 하나를 둔 부부는 서로가 시간을 쪼개어가며 아이를 유치원에서 데리고 오고 돌봐주며 직장 생활을 기획특집 | 취재=김옥선/사진=김경미 기자 | 2018-10-14 09:20 포항 흥해실내체육관, 이재민 텐트 아직도… 충청권 지진 안전지대 아니다!<5> 포항 흥해실내체육관, 이재민 텐트 아직도… 포항 2017년 11월 15일 규모 5.4 지진 1800여명의 이재민 발생지진 직후 800여명 지금도 11개월째 200여명 임시구호소에 남아흥해초 본관 철거, 경림뉴소망아파트 등 지진피해로 폐쇄돼 썰렁주민들, 정부의 철저한 진상조사·유발지진 피해대책 마련을 요구경북 포항시의 흥해실내체육관은 지난해 11월 15일 포항에서 발생한 규모 5.4 지진이 난 뒤 11개월째 이재민 임시구호소로 이용되고 있다. 포항지진으로 1800명이 넘는 이재민이 발생했다. 이중에서 집이 크게 파손돼 ‘이주판정’을 받은 가구는 763가구다. 지금까지 752가구는 정부와 포항시가 준비한 새로운 집이나 임시거주시설로 이주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외벽 곳곳이 갈라지거나 부서졌지만 정밀점검 결과 이주 수준의 ‘위험 등급’을 기획특집 | 취재=한기원/사진·자료=김경미 기자 | 2018-10-13 09:09 처음처음이전이전이전21222324252627282930다음다음다음끝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