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1,220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지속가능한 친환경축산, 축산환경 개선이 답이다 지속가능한 친환경축산, 축산환경 개선이 답이다 농촌의 고령화에 따른 노동력 부족, 축사악취·가축분뇨로 인한 민원 증가 등에 따라 축산분야에도 사육기술의 현대화가 꾸준히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축산악취에 대한 저감대책이 필수적으로 대두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보통신기술(ICT) 기반의 스마트팜, 최신 시설 도입 등 축사시설 현대화가 미래축산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해마다 축산 악취로 인한 민원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행정당국이 강력한 단속에 나서지만 일시적 대책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전국 제일의 축산군이라는 홍성군의 중심산업인 축산업이 동시에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제시돼야 할 시점이다. 축산 악취는 초지나 농경지에 액비를 살포하려면 4개월 이상 숙성을 시켜 냄새를 최대한 제거해야 하지만 일부 축산농가와 축산 가축분뇨, 축산악취, 해결방법은 없을까? | 취재=한관우·한기원 기자, 사진=김경미 기자 | 2017-04-27 14:11 한국의 발전과 홍성, 충청남도청이전 행정 중추도시 한국의 발전과 홍성, 충청남도청이전 행정 중추도시 홍성발전의 기폭제가 된 것은 단연 충청남도청의 이전이다. 충남도청 이전지역이 홍성군 홍북면과 예산군 삽교읍 일원으로 최종 확정된 것은 대전과 분리되기 전해인 1988년 10월 ‘충남서해안권종합개발계획’을 시작으로 18년만인 2006년 2월의 일이다. 충청남도청이전추진위원회(위원장 김유혁)는 2006년 2월 12일 오후 4시 대전광역시 소재 한국토지공사 연수원에서 ‘최종예정지 평가단’의 평가결과 홍성군 홍북면과 예산군 삽교읍 일원이 최고 점수를 얻어 충남도청이전 최종 예정지로 평가돼 발표됐다. 시·군 추천 인사 15명, 도의회 추천 인사 13명, 학회 추천 전문가 38명 등 66명으로 구성된 충남도청이전 ‘최종예정지 평가단’은 이곳에서 외부와의 연락을 차단하고 최종 예정지 선정 작업을 벌였다.충남도청이 천년홍주, 지역사를 다시 읽다 | 한관우 발행인 | 2017-04-27 13:52 홍성의 시민사회단체, 홍성사회 역동적으로 변모 홍성의 시민사회단체, 홍성사회 역동적으로 변모 1946년 5월 곽영순, 이한세, 김연수, 김현경 등이 주축으로 ‘대한부인회 홍성군지회’를 결성 한 것이 홍성에서 최초의 여성단체의 조직이었다. 창립 회원은 50여명이었으며 초대 위원장에 곽영순을 선출하고 대한독립촉성국민회와 손을 잡고 경찰의 활동을 돕고 5·10선거에 관여하는 등 친 정부 또는 극우 단체로 활동했다. 이후 여러 여성단체가 결성되면서 1981년에는 ‘홍성군여성단체협의회’가 구성됐으나 홍성의 여성단체들은 목적한 만큼 시민사회적인 활동이 미흡하다는 평이다. 우리나라 군사권위주의 시대에는 민간단체들이 관변단체와 재야단체로 양분돼 있었다. 권위주의시대통치체제는 국민을 통제하고 알 권리를 차단했으며 재정을 통제했다. 관변단체에게는 큰 혜택을 제공하고 재야단체에게는 압박을 가 천년홍주, 지역사를 다시 읽다 | 한관우 발행인 | 2017-04-20 14:56 김용환 전 재무부장관 숙환 별세 김용환 전 재무부장관 숙환 별세 김용환(金龍煥·85) 전 재무부장관이 지난 7일 숙환으로 별세하면서 ‘과거의 사진 한 장’과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직언’이 새삼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김 전 장관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제 브레인’으로 산업화를 이끌었고, 1985년 정계 입문 뒤에는 4선 국회의원을 지내며 ‘내각제주의자’란 평가를 받았다. 1932년 충남 보령에서 출생한 김 전 장관은 공주고·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1956년 제7회 고시행정과에 합격, 재무부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1965년 9월 청와대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주재한 금리인상을 위한 회의에서 당시 33세의 재무부 이재과장으로 말석에 앉아 있던 그가 “실패하면 제가 책임지겠다”고 말해 박 전 대통령 눈에 들었다고 한다. 이후 재무부 이재국장, 세정차관보 등 정치일반 | 한관우 발행인 | 2017-04-14 08:01 홍성, 1952년 4월 초대 읍·면의회의원 선거 142명 선출 홍성, 1952년 4월 초대 읍·면의회의원 선거 142명 선출 혼란 속에서도 총선준비가 진행돼 4월 16일 등록을 마감한 결과 의석수 220석에 총 993명(무소속 400, 대한독립촉성국민회의 221, 이외 한민당과 청년단체 등)이 입후보 했다. 홍성에서도 5·10선거는 치러졌고, 대한민국 정부수립은 현실화 됐다.홍성에서는 선거가 다가오자 혼란스러운 분위기가 계속됐다. 한독당의 주요 인물들은 선거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대한독립촉성국민회의 참여자는 대부분 선거참여를 주장했지만, 일부에서는 반대하기도 했다. 대한독립촉성국민회의 위원장인 손재학은 선거참여 쪽이기는 했지만 여전히 망설이고 있었다. 대한독립촉성국민회의는 대동청년단·애국부인회·서북청년단과 연석회의를 열고 선거참여에 대한 찬반논의를 해 손재학을 후보로 내세우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결국 손재학은 대한 천년홍주, 지역사를 다시 읽다 | 한관우 발행인 | 2017-04-13 11:40 대한민국, 남과 북의 분단정부 수립과 홍성지역 상황 대한민국, 남과 북의 분단정부 수립과 홍성지역 상황 1947년 3월 미국은 트루먼 정부에 들어 처음으로 세계전략이 발표됐다. 소련과의 협조체제를 통해 전 세계를 단일의 정치·경제권으로 묶기보다는 사회주의권의 확장을 최대한 억제하고 나머지 지역에서는 확고하게 자유무역에 의한 자본주의 시장 권을 확립시킨다는 것이 구상의 골격이었다. 그것은 ‘트루먼독트린’, 또는 ‘마셜플랜’ 등으로 선포했다. 미국은 소련에 맞서 봉쇄정책을 취함으로써 미소간의 냉전적 대결이 깊어져 갔다. 그러한 대립의 최전방에 한반도가 있었다.1947년 4월 미국은 소련에 미소공동위원회의 재개를 요청했다. 소련은 이를 받아 들여 5월 21일 2차 미소공동위원회가 열렸다. 그러나 1차 미소공동위원회와 마찬가지로 협의 단체의 문제를 두고 의견이 합치되지 않았다. 소련 측은 비정치적 조직, 비사 천년홍주, 지역사를 다시 읽다 | 한관우 발행인 | 2017-04-06 11:49 반탁운동과 홍성지역 우익세력, 그리고 정부수립 반탁운동과 홍성지역 우익세력, 그리고 정부수립 미군정과 경찰의 인민위원회와 농민조합에 대한 본격적인 탄압은 1945년 12월경부터 시작됐는데, 미군정은 구항면농민조합장 이차흥과 5명의 농민조합 간부들이 일제 말 미곡공출과정에서 부담을 주민들에게 전가하고 공출에서 빼돌린 구항면 이장 김호면의 쌀을 해방 직후 압수하여 주민들에게 분배했다는 이유로 폭력행위로 구속했다. 또 1946년 2월에는 인민위원회 보안부장 전명재는 해방 직후 환전상을 불법 감금했다는 이유로 구속돼 8개월 간 복역했다. 1946년 3월에는 인민위원장 한보국도 1945년 10월 광천의 일본인 금광업자가 금괴를 몰래 처분해 도망가려는 것을 적발해 압수한 일을 이유로, 조직부장 이태현, 보안대원 박태원 등과 함께 구속돼 10개월 형을 언도받았다.한편 홍성군인민위원회 사무실이 홍성읍사무소 천년홍주, 지역사를 다시 읽다 | 한관우 발행인 | 2017-03-31 09:10 8·15광복, 홍성의 좌파세력과 인민위원회 8·15광복, 홍성의 좌파세력과 인민위원회 치안유지 위해 발족했던 자치위·건준위 한 달여 만에 해체좌파 인민위원회 10월 1일 결성식, 홍성읍사무소에 사무실만해의 아들 한보국 독서회사건 치안유지법 구속 3년 옥고홍성군인민위원회, 농민조합을 기반으로 이강세 등 참여해한편 광복을 맞은 홍성의 경우도 친일인사들의 움직임이 시작됐다. 홍성에 자치위원회가 조직된 지 사흘째 되던 날 김병원, 유진익, 이병우 등 홍성의 유력 지주들이 출자해 만든 대금업을 하는 ‘동우조합’ 상무로 있던 윤상용이 자치위원회 사무실에 찾아와 자신들도 위원으로 참여하게 해 줄 것을 요구했으나, 자치위원회 측에 천년홍주, 지역사를 다시 읽다 | 한관우 발행인 | 2017-03-24 13:07 1945년 8월 15일 조국의 광복소식과 홍성 1945년 8월 15일 조국의 광복소식과 홍성 손재학, 홍성에서 일본 패방과 민족의 광복소식 가장 먼저 접해8월 15일 손재학은 유승준과 일본 천황 항복소식 라디오로 들어8월 18일 홍성국민학교에서 홍성군민민중대회, 해방축하식 거행홍성군자치위원회, 일본인 군수 요청 옛 동헌인 안회당에 사무실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자 충남지역의 중심인 대전에서 발행되던 ‘중선일보’가 마침내 민족의 해방과 일본의 항복에 대해 자세히 보도했다. 특히 이날 중선일보의 기사는 전부 한글로 인쇄됐는데, 충남도민들은 오랜만에 ‘한글신문’을 보고 다시 한 번 감격했다. 당시 충남도청에서 한국인 직원의 정신적인 리더로 신망을 얻고 있던 충남도 광공부장 현석호는 해방이 된지 이틀 만에 전 직원을 도청광장에 집합시킨 후 ‘대한독립만세’를 불렀다.이와 더불 천년홍주, 지역사를 다시 읽다 | 한관우 발행인 | 2017-03-18 10:26 용봉산과 용봉사, 마애석불을 지키고 있는 마을 용봉산과 용봉사, 마애석불을 지키고 있는 마을 용봉산, 차령산맥 지맥 산세 용의 모습에 봉황의 머리 닮아홍성 8경의 하나, 충남도청 내포신도시 품에 안고 있는 진산용봉사, 백제 말에 창건 추정 고려시대 승려 수만 1000여명799년 작 용봉사미륵불, 마애여래입상·영산회괘불탱화 유물 충남도청내포신도시 조성으로 편입된 홍북면 신경리의 자경동·신리·주촌마을 중에서 비교적 원형이 가장 많이 남은 마을이라면 신리마을이다. 용봉산의 품에 안긴 마을로 지역과 마을을 대표하는 용봉산과 용봉사, 신경리 마애석불이 그대로 보존돼 옛 정취를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광천의 오서산과 함께 지역을 대표하는 산으로, 제2의 금강산으로 불리는 용봉산은 홍성에서 덕산으로 이어지는 지방도 609호선을 따라 서쪽으로 길게 누에모양을 한 바위산이다.과거에는 마을신문 | 한관우 발행인 | 2017-03-10 11:15 3·1절 98돌, 그때 홍성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3·1절 98돌, 그때 홍성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3·1운동, 일제 식민통치에 민족의 거족적인 저항 행동으로 옮겨홍성장터에서 3월 7일 ‘대한독립만세’ 부르며 시위 시작 촉발돼광천에서 3~5월 사이 10여 차례 3000여명이 만세운동에 참여해장곡면민 500여명 참여 홍성서 가장 치열한 만세운동사건 기록1910년 일제가 우리나라의 국권을 강탈한 후 식민지 경영의 통치 기구로 조선총독부를 설치했고, 폭압적인 무단통치를 실시했다. 한민족은 무단통치하에서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등 근대적 기본권을 박탈당했다. 또한 회사령의 실시로 민족 자본가의 발전을 가로막고, 1910년부터 1918년 사이에 진행된 토지조사사업으로 불법적인 일본인들의 토지 소유가 인정됐고, 지주의 권리가 강화되면서 농민들이 소작농으로 전락하면서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불만과 천년홍주, 지역사를 다시 읽다 | 한관우 발행인 | 2017-03-02 15:38 충남도청 내포신도시 조성으로 마을이 사라졌다 충남도청 내포신도시 조성으로 마을이 사라졌다 신경리 자경동·신리·주촌마을 내포신도시 조성 사라져자경동마을, 김녕김씨·광산김씨 450~500여년 전 입향국사편찬위, 김녕김씨 충의공 김문기를 사육신에 현창홍북면 신경리 자경굴(자경동)마을은 홍북면사무소에서 서쪽에 위치한 마을로 북동쪽으로는 신경리 주촌마을, 북서쪽으로는 신리마을이 있었다. 지금은 충남도청 내포신도시가 조성되면서 신경리의 자경동·신리·주촌마을의 원형 등 마을전체가 사라졌으며, 신도시라는 새로운 모습으로 건설되고 있다.신경리 자경동마을의 가장 대표적인 성씨는 김녕김씨와 광산김씨다. 두 집안 모두 450~500여 년 전 입향한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자경동마을에는 2001년 10월에 건립된 김녕김씨 재실인 성은재(誠隱齋)가 있었다. 성은재에는 입향조인 충의공의 손자인 촌은공 마을신문 | 한관우 발행인 | 2017-02-23 15:11 홍성군 독자적 ‘시’승격 추진 “홍주시 승격 가능할까?” 홍성군 독자적 ‘시’승격 추진 “홍주시 승격 가능할까?” 홍성군, 현행기준 ‘시’가 될 수 있는 요건 갖추지 못해충남도청 내포신도시 ‘도청이전 특별법’에 묶여 한계성지방자치법 개정, ‘도사무소 소재지를 시로 한다’ 규정홍성군 ‘시’ 승격 필수조건은 예산과의 통합 최대 과제현재 충남에는 8개의 시가 있다. 이 중에서 천안 등 5개시는 1995년에 종전의 시와 군을 통합하여 ‘도·농(都·農)복합형태의 시’가 되었다. 논산시는 1996년 논산군이 ‘논산시’로 되었으며, 2003년 9월에는 ‘충청남도계룡출장소’가 소재한 논산시 두마면이 ‘계룡시’가 되었다. 또한 지난 2012년에는 당진군이 ‘당진시’가 되었다. ‘시(市)’는 여러 가지 형태로 ‘설치’되는데 그 기준은 지방자치법에 규정되어 있으며, 국회에서 법률로 정하도록 돼 있다.‘시(市)’의 기획특집 | 한관우 발행인 | 2017-02-18 11:55 “내포신도시, ‘市’로 가는 게 도청이전특별법 최종 결론”? “내포신도시, ‘市’로 가는 게 도청이전특별법 최종 결론”? 홍성군이 충남도청내포신도시의 인구 증가 등에 따른 ‘시 승격’에 대한 기대가 부풀고 있는 가운데, 최근 예산지역에서는 바른정당의 홍문표 국회의원의 발언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홍 의원은 지난 3일 예산군청 제1회의실에서 열린 ‘지역원로 초청간담회’에서 “예산·홍성은 하나로 가고 내포신도시가 시로 가는 게 도청이전특별법의 최종 결론”이라는 발언에 대해 비판이 일고 있다는 것이다.홍 의원은 이날 “제가 만든 도청이전특별법의 최종 결론은 내포신도시는 시로 가야하고, 예산 홍성은 하나로 가는 것”이라며 “그렇게 해 시장이 1명이 있고, 국회의원이 2명이 만들어지는 시대가 바로 충남도청 내포신도시의 목적”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도청이전특별법 그 어디에서도 예산·홍성 통 충남내포혁신도시 | 한관우 발행인 | 2017-02-16 10:10 2000년 전 사람이 살던 나라 잃은 슬픔이 서린 곳 2000년 전 사람이 살던 나라 잃은 슬픔이 서린 곳 석교마을 입향, 한산이씨, 경주최씨 11대째 밀양박씨 등 거주택리마을 입향, 경주김씨, 청주한씨, 나주임씨, 김해김씨 등 순동학농민군 활약 김상현·김상림, 홍주성으로 끌려가 죽임 당해 홍북 석택리는 석교(돌다리)와 택리(직절)마을이라는 지명이 근원을 이루는 곳이다. 석택리의 으뜸인 ‘석교(돌다리)마을’은 큰말이나 작은말에서 서낭댕이로 갈 때 건너던 돌다리가 있었다고해서 ‘돌다리마을’로 불리는 것으로 전해진다. 돌다리에 세거하는 대표적 성씨로는 ‘한산이씨’가 있다. 입향조로 알려진 이덕영(李德塋)이 1600년대 천안에서 이곳으로 왔다고 한다. 석교마을의 한산이씨는 인제공파(麟薺公派)의 지파인 광목공파(光牧公派)의 자손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덕영은 이담(李潭)의 아들로 밀양박씨와 혼인하였고 관 마을신문 | 한관우 발행인 | 2017-02-09 10:29 석택리 일대 마한 ‘감해비리국’의 수도였다 석택리 일대 마한 ‘감해비리국’의 수도였다 석택리 환호취락, 목지국·감해비리국의 수도현재 내포신도시 행정타운 조성, 충남의 수도덕산과 홍주를 오가는 길목, 부보상들의 쉼터현재 충남도청내포신도시가 조성되고 있는 홍북면의 석택리는 천년홍주(千年洪州) 역사의 시발점이 되는 곳이다. 삼한시대(三韓時代) 월산에 ‘월지국(목지국)’이 있었다면 마한의 ‘감해비리국(監奚卑離國)’의 수도는 석택리 일원이었다는 추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석택리는 석교(돌다리)와 택리(직절)로 나누는데, 이 일대는 낮은 야산지대로 마을 앞에 삽교천이 흐르며 주변에는 넓은 농경지가 형성되어 있다. 홍북면의 북동쪽 끝에 있는 마을로 예산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예로부터 예산에서 홍성으로 이어지는 큰 길목에 위치해 있다. 삽교천이 완공되기 전까지는 홍수피해가 잦았던 곳으로 마을신문 | 한관우 발행인 | 2017-02-02 10:55 “모두가 큰 꿈과 희망을 한껏 펼치는 해” “모두가 큰 꿈과 희망을 한껏 펼치는 해” 2017년 정유년(丁酉年) 붉은 닭의 해, 새해 아침이 밝았습니다. 밝아온 새해 군민 여러분과 애독자 여러분의 가정에 늘 건강과 행운이 가득하시고, 즐거움과 기쁨이 넘쳐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지난 시간 홍주일보 홍주신문에 보내주신 여러분의 각별한 관심과 성원, 따뜻한 애정에 진심으로 감사와 고마운 인사를 드립니다. 홍주일보 홍주신문은 늘 사회의 어두운 곳을 비추는 등불로, 권력과 비리의 감시자로 대안을 제시하는 메신저로의 소임을 다하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지역발전을 견인하며 지역사회 소통의 창구로,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언론 본연의 역할에 매진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새해에는 더욱 생동감과 지혜 넘치는 해가 되시기를 충심으로 기원하며, 새해 인사를 올립니다.새해에는 우리 모두가 큰 꿈과 희망을 한껏 홍주일보 | 한관우 발행인 | 2017-01-05 10:18 홍문표 의원, 새누리 탈당 ‘신당행’ 새누리당 비박(비박근혜)계 의원 35명이 오는 27일 집단으로 탈당하겠다고 선언했다. 비박계 의원 31명은 지난 21일 국회의원회관에서 회동해 이같이 결의하고 즉석에서 탈당계를 작성했다고 발표했다. 이날 회동에 참석하지 못한 현역의원 4명(심재철·박순자·홍일표·여상규 의원)까지 포함해 모두 35명의 의원이 함께 움직이기로 했다고 참석자들은 밝혔다. 이로써 헌정 사상 처음으로 보수 성향 정당의 분당(分黨)이 현실화됐다.지난 1995년 민주자유당에서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측근 의원 9명을 데리고 탈당해 만든 자유민주연합, 1997년 신한국당을 탈당한 이인제 전 의원이 창당한 국민신당 등이 있었지만, 집단 탈당을 통해 이탈한 의원들이 원내교섭단체(20명)를 만드는 진정한 의미의 분당은 새누리당과 그 전신의 정치일반 | 한관우 발행인 | 2016-12-22 13:39 한용운 집터 ‘시비공원’ 조성 여론 한용운 집터 ‘시비공원’ 조성 여론 충청도 홍주(洪州) 땅은 그 어느 곳보다 충신과 열사 등의 의인이 많이 배출된 곳이다. 많은 인물들 중에서 만해 한용운은 근대사를 지조 있게 살다간 대표적 인물로 꼽힌다. 최근 홍주성 복원사업에 따라 성곽주변에 대한 정비가 이뤄지는 가운데 홍성읍 오관리 212번지 주변이 ‘만해 한용운의 생가 터’로 확인되고 있어 관심이 쏠린다. 따라서 이곳에 만해의 생가 터임을 알리는 표지석이나 안내판 등을 비롯해 시비(詩碑)공원’ 등의 조성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곳 일대는 현재 홍주성 복원계획에 따라 철거를 위해 보상이 진행 중에 있다.홍성읍 오관리 212번지 주변은 충훈부도사를 지낸 한용운의 아버지 한응준이 결성의 박철동으로 들어가 은둔하던 중 한유천(용운)을 낳았고, 한응준이 유천의 교육을 위해 자치행정 | 한관우 발행인 | 2016-12-15 16:39 한국천주교의 시작이자 순교의 땅, 홍주순교성지 한국천주교의 시작이자 순교의 땅, 홍주순교성지 1000여명 순교자 배출한 홍주 땅에 2008년 ‘순교비’ 세워져홍주성지, 한국에서 두 번째로 많은 천주교순교자 배출한 곳천주교홍주순교성지 순교자 생매장터 십자가의 길 14처 축복홍주순교성지 순례객들을 위한 홍주성지의 성당 마련 시급해충청도 내포지역의 중심지인 홍주는 감영 터를 비롯한 순교성지가 많다. 천주교 관련 유적지가 집중돼 있는 연유는 이곳이 ‘한국 천주교회사의 못자리’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천주교는 처음에 서울과 경기도로 전파되다가, 이존창에 의해 현재의 충남지역으로 전파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이 지역은 초기 천주교 신앙의 중심지이면서 동시에 가장 가혹한 박해의 피해지가 되기도 했다. 1839년 기해박해에서 1866년 최대, 최후의 병인박해까지 베르뇌, 페레올, 다블뤼, 오메 홍주천주교순교성지, 부활을 꿈꾸다 | 글=한관우/사진·자료=김경미 기자 | 2016-12-15 14:31 처음처음이전이전12345678910다음다음다음끝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