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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기획취재
손규성의 홍주골 톺아보기
한관우의 홍성비전 희망수첩
2010년 기획취재
홍주골 2050 희망 리더
홍주골 골목 기행
우리동네 행복마을
6.25전쟁 60주년 특집연재
유태헌의 백두대간 종주기
산꾼 유태헌의 전국 100대 명산 산행기
지역농업 특화사업으로 농업 경쟁력 키운다
2011년 기획취재
홍성의 도시브랜드, '문화·예술이 답이다'
경관농업, 홍성군의 새로운 농촌 소득창출 대안이다
항일독립운동의 현장을 가다
2012년 기획취재
FTA파고 넘는 농축산 블루오션, 친환경이 답이다
함께 살아가는 세상, 사회적기업이 해법이다
삼성-허베이스피리트호 기름유출사고 5년,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말하다
척박한 지방문화현장에서 이응노 기념관의 활로 찾기
폐교, 지역 구심점으로 거듭나다
농어촌체험관광, 프로만이 살아남는다
바람직한 홍성·예산 통합 방안을 찾다
빗물활용, 녹색성장도시로 가는 출발선이다
전통과 현대의 어울림, 한옥마을 도시브랜드화 전략
지역사회복지, 사회적경제로 실현하자
농촌경제, 희망을 찾아서
2013년 기획취재
마을을 먹여살리는 마을기업
지역경제 선순환 활성화가 해답이다
'홍주' 지명역사 1000년, 기념사업 추진하자
폐기물도 자원이다
산꾼 유태헌·한관우 기자의 금북정맥 탐사
친환경농축산 앞당기는 가축분뇨 공동자원화
문화예술로 바라본 공유경제
가축분뇨 자원화로 친환경축산 앞당긴다★
사회적경제로 해법찾는 도시재생
한관우 본지 발행인, 유럽의 지역신문을 가다
2014년 기획취재
도시재생사업, 지역의 경쟁력이다
친환경 녹색도시의 시작 자연형 하천복원
환경파괴가 부른 재앙 충청해안의 토사퇴적
만해 한용운의 발자취를 찾아서
홍성농업, 농민과 친환경이 답이다
홍성이 낳은 세계적 화가 고암 이응노
장희구 박사의 만해 한용운의 시 읽기
천주교 홍주순교성지 성역화·관광자원화가 ‘답’
2015년 기획취재
충청 독립운동가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위기의 독거노인, 그룹홈이 대안일까?
바다영토경계분쟁 해결의 실마리를 찾자
지역신문의 콘텐츠와 매체다각화
말산업과 지역경제
뭉쳐야산다, 사회적협동조합
홍성을 세계적인 오카리나 메카로 만들자
지명역사 1000년 ‘홍주’ 고유지명 되찾자
광천젓갈의 생존전략 공생이 답이다
홍성의 골목상권 경쟁력 테마로 승부한다
농촌의 소규모 학교가 살아야 지역도 살아난다
옛골목길, 스토리와 디자인을 입혀야 뜬다
사라지는 전통가업, 대를 잇는 사람에게 길을 묻다
홍성, 폐기물 재활용·생태환경 예술의 메카로 만들자
홍성에서 출발하는 내포지역 천주교 공소 탐험
홍성을 작은 박물관도시로 만들자
홍성의 옛 고유지명‘홍주’를 함께 찾아요
2016년 기획취재
물부족 가뭄극복, 빗물활용 물관리가 경쟁력이다
청년의 창의적인 생각이 창조농업이끈다
고령사회 홍성, 노인고용에 눈을 돌리자
역사문화도시 홍성, 지역문화재단 통해 현실화 되나
작은 동네책방의 희망과 전략, 공동체문화예술 소통공간을 꿈꾸다
용봉산평화인권공원(가칭) 어떻게 조성해야 할까?
<사람이 희망이다>홍성의 인맥-홍성출향인을 찾아서
자유학기제, 농촌학교와 마을을 잇는다
홍주지역 중고제와 한성준의 맥, 그 소리와 가락의 복원
홍성 문화예술마을조성,무엇을 담아야 하나
홍주천주교순교성지, 부활을 꿈꾸다
고택의 재발견-선비정신과 공간의 미학, 문화관광자원화 방안의 지혜를 읽다
새로 쓰는 홍주의병사, 치열했던 구국항쟁의 진원지 탐사
폐교에 홍성군립미술관 건립 가능할까?
자원봉사로 행복한 삶과 희망을 함께 나눠요
홍성의 친환경 축산의 미래, 유기축산에서 답을 찾다
2017년 기획취재
가축분뇨, 축산악취, 해결방법은 없을까?
위기의 작은학교 특성화로 되살리자
자유학기제 시행 1년, 아이들이 행복한 진로교육
건강한 마을공동체 만들기, 왜 어린이도서관인가?
가업을 잇는 청년, 청년CEO, ‘농촌에서 삶의 가치를 찾다’
일제시대 아시아 최대 석면광산 충남, 안전지대일까?
지명역사 1000년 자치단체, 무엇을 기념할 것인가?
용도 폐기된 공공건축물의 재활용 방안
전통발효식품, 농업농촌 신혁신 모델 되다
천년홍주, 지역사를 다시 읽다
2018년 기획취재
농촌의 빈집에서 도시재생의 길을 찾다
폐교위기 농어촌 작은학교에서 희망을 찾다
충청권 지진 안전지대 아니다!
도시청년들, 귀농·귀촌의 꿈을 실현하다
당신의 자소서
다 함께 홍성사람-다문화가족 만세
로컬뉴스 활용을 통한 독자마케팅 활성화
역사자료로 살펴보는 수룡동 마을
삶과 기억의 편린
순간포착 미디어속으로
2019년 기획취재
천년 역사문화유산 홍주성의 부활
충남의 문화재 재발견
만해 한용운의 정신과 흔적 따라 5000리 길을 가다
헌책방에서 책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길을 묻다
마을의 역사문화·공동체의 삶을 읽다
충남의 자연유산 마을 숲, 미세먼지시대 공동체의 삶과 생명의 공간이다
이주노동자 '그들'이 아닌 '우리'다
미디어를 통한 마을 공동체 회복을 꿈꾸다
2020년 기획취재
'우리가 자란 땅' 천년홍주100경
천년역사도시, 홍성도심재생 젊은 문화도시가 답이다
풀뿌리미디어 마을신문, 동네를 바꾼다
홍성군 청사이전, 균형발전 기회인가? 위기인가?
농어촌 빈집·폐건물, 공유경제 가치를 담다
천년의 역사를 담은 땅, 지역의 정체성과 미래를 묻다
화가 전만성의 길따라 마음따라
2021년 기획취재
도심속 자연하천, 생명과 문화가 흐른다
지역문학관 활성화 방안을 찾다
충남혁신도시, 테마·스토리 입혀야 사람이 몰린다
전통시장 활성화, 그곳엔 삶과 문화가 흐른다
도심 생태하천 복원, 주민들의 행복공간 복원이다
혁신도시, 현장에서 미래의 길을 묻다
2022년 기획취재
전통에서 새로운 가치를 찾다, 100년 가업을 잇는 사람들
폐건물·폐산업시설, 문화재생 가치를 담다
생태경관 농업유산, 다랑이논을 보존하자
사라지는 원도심 근대문화유산, 어떻게 보존·관리할까
농촌지역 폐교의 재발견, 문화예술이 꽃피다
국가숲길에서 내포문화숲길의 역사와 문화를 묻다
국가숲길, 내포문화숲길의 역사·문화유산
희망마을공동체 스토리
충청·홍주의병 발상지 홍주
2023년 기획취재
고치고, 바꾸고, 새롭게 캠페인
홍성 원도심 활성화, 특화거리에서 답을 찾다
충남의병기념관, 충남의 항일·의병정신 어떻게 담을까
국내 최대 석면피해지역 충남, ‘석면피해기록관’을 세우자
충남도청신도시 주변마을 문화유산
고향사랑기부제, 일본은 어떻게 성공했나?
100년 정미소·양조장에 문화예술이 꽃피다
2024년 기획취재
1894~2024 동학 130년, 충남동학혁명 현장을 가다
충청의 재발견, 100년 술도가 전통의 향기를 빚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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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군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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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단체
강소농·강소기업
홍성농업의 미래를 말하다
농촌의 힘, 홍성의 발전을 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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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6·1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2022 3·9 제20대 대통령선거
2020 4·15 제21대 국회의원선거
2019 3·13 제2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
2018 6·13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2017 5·9 제19대 대통령선거
2016 4·13 제20대 국회의원선거
2015 3·11 제1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
2014 6·4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2012 4·11 제19대 국회의원선거
2012 12·19 제18대 대통령선거
2010 6·2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2008 4·9 제18대 국회의원선거
2007 12·19 제17대 대통령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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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5-15 12:15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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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의 진실 해마다 12월이 되면 전세계는 크리스마스 축제 열기에 들뜨게됩니다 광적으로 번져가는 크리스마스 열기는 정말 예수의 탄생과 관련이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매클린톡과 스트롱의 「백과사전」은 이렇게 말합니다. “크리스마스 기념은 하느님이 명령하신 것도 아니며, 신약에서 기원한 것도 아니다. 그리스도의 탄생일은 신약이나 여타 자료에서도 확인할 수 없다.” (뉴욕, 1871년판), 2권, 276면. “상인들과 보도 기관은 마음 내켜하지 않고 혐오감을 느끼는 국민에게 크리스마스를 강요한다”고 조오지 버어나드 쇼오는 기술하였습니다. 남 아프리카, 요하네스버어그의 「스타아」지는 크리스마스 소식을 전하면서 이처럼 개탄하였습니다. “라디오, 텔레비젼, 슈우퍼마아킷, 신문 및 잡지에서 돈을 쓰도록 야단스럽게 부추기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은 사랑의 교훈을 까마득히 잊고서 물건을 사는 데 열을 낸다.” 전세계 기독교 단체에서는 해마다 12 월 25일인 크리스마스에 아기예수 탄생을 찬양하고 축하해야 한다고 열을 올리며 선전하고 있고 매스컴은 경쟁하다싶이 크리스마스에 대하여 보도하고 있습니다 퍼거슨 교수는 그의 저서인 「로마 제국의 종교들」 (The Religions of the Roman Empire)에서 이와 같이 말합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의 탄생일을 축하하지 않았다. 또한 그러한 기록도 없다.” 성서는 예수의 정확한 탄생 일자를 알려 주지 않습니다. 더우기, 성서는 예수께서 춥고 비가 많이 오는 12월이나 1월이 아니라, 좀더 따뜻한 계절에 탄생하셨음을 시사합니다. 어떻게 그렇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예수께서 탄생하실 때쯤, 로마 황제인 가이사 아구스도는 백성에게 출생지로 가서 호적하라는 영을 내렸습니다. 성서 기록은 이러합니다.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갔더라.]” (누가 2:1-7) 요셉은 만삭이된 마리아와 함께 나사렛에서 베들레헴까지 도보로 110킬로미터를 걸어서 혹은 나귀를 타고 가야 하였습니다 그러한 일이 춥고 비가 많은 12월 중에 실제로 가능하였겠습니까? 누가 2:8-11에서는 예수께서 탄생하실 때 목자들이 밤에 들에 있었음을 알려 준다. 「예수 당시의 일상 생활」(Daily Life in the Time of Jesus) 이라는 책은 이와 같이 지적합니다. “양은 겨울에는 우리 안에 넣는다. 이 사실 하나만 보더라도 겨울에 있는 전통적 크리스마스 날짜가 맞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복음서에서는 그때 목자들이 들에 있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12월에 해당되는, 이스라엘에서 비가 많이 오는 달에는 부합되지 않습니다. 그때는 베들레헴 지방에서 기온이 뚝 떨어질 수 있는 때입니다. ( 참조 성구: 에스라 10 : 9, 13; 예레미야 36 : 22. ) 중요한 점이 또 있습니다. 만일 예수께서 그분의 추종자들이 자기의 출생을 기념하기를 원하셨다면, 그렇게 하도록 지시하시지 않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수께서는 자신 태어난 생일이 아니라 자신이 죽은날에 대하여 이렇게 명하셨습니다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누가 22:19) 예수께서는 자신의 죽음에 대하여는 일년에 한번 기념하기를 원하셨지만, 출생에 관해서는 그처럼 지시하시지 않았습니다. “크리스마스”란 말은 성서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의 초기 제자들 가운데서는 그러한 축하 행사가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R. S. 콘웨이 박사는 이처럼 설명합니다. “삼세기 초의 대 신학자 오리겐은 선배 한 사람에게서 그가 들었다고 하는 말을 여러 번 반복합니다. 즉 의인이나 그리스도인 성도는 아무도 자기나 다른 사람의 생일을 전혀 지킨 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크리스마스는 경건하지 않으며 거룩하지도 않습니다 도리혀 대부분의 도시들은 호화 찬란하고 탐욕스럽고 부도덕 합니다 종교를 이용한 사람들의 이기심과 탐욕과 부도덕을 조장하고 있음을 볼수 있습니다 밤샘을 하면서 먹고 마시고 축제 분위기입니다 실제로는 탐닉과 방탕의 시기인데도 그것에 종교적인 덮개를 씌웁니다. 크리스마스 파아티에서의 방종과 부도덕이 만연하고, 크리스마스 베이비가 탄생하는 보도는 공공연한 현실입니다 그일로 원치않는 임신과 어쩔수 없는 조기 결혼 및 미혼모가 증가하고 있고, 결혼 문제의 원인이 된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영국 국립 결혼 지도 심의회’에 따르면, 크리스마스 철이 지나고 상담하러 온 부부의 수가 평상 주보다 두배나 많았다고 합니다. 우리 자녀들에게는 크리스마스로 어떠한 것을 배우고 자랄수 있습니까? 존재하지도 않는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가져온다고 가르침으로 허황된 기대를 갖게하며 거짓말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마치 성서에서 하느님께서 그렇게 가르치는 것처럼 아이들은 생각할 수 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 사회계층 및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꿈을 심어준다는 이유로 거짓말을 믿게하고 있습니다 거짓말 못하시는 하느님의 관점에 볼 때 그러한 방법으로 자녀들에게 꿈을 심어주기를 바라는 부모나 교직자가 있다면 그들은 진정으로 하느님의 은총을 잃게하는 행동을 어려서부터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거짓 가르침을 조장하고 전세계의 선량한 사람들을 현혹하여 잘못된 믿음 갖게하여 순진한 사람들을 타락시킨 책임있는 종교와 그 지도자들의 종말이 다가옴을 성서는 예언합니다 요한 계시록 17장 18장에 예언은 큰 바빌론인(거짓종교 세계제국) 이 하느님으로부터 심판받게될 시기가 매우 가까왔음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틀림없이, 이교 관습 및 축일들과 함께 큰 바빌론인 거짓 종교 세계 제국은 멀지 않아 영원히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루속히 아직 시간이 있는 동안 거짓종교인 큰 바빌론의 유혹적인 활동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분리시켜야 합니다 진실로 의를 사모하고 진리를 갈망하는 사람들은 참진리가 무엇인지 발견하게 될것이고 여호와께서는 그러한 사람들에게 분별력을 주시고 마음의 문을 열어 참다운 희망을 발견하게 하실것입니다 머지않아 참다운 믿음을 가지고 경건하게 생활하는 참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일년에 한번 먹고 마시고 즐기는 방탕한 축하 행사가 아니라 매일 매일 행복한 가운데 진정한 평화를 누리면서 즐기는 영원한 축하 행사에 참여하게 될것입니다 이사야 65 : 17 - 25 이 글을 읽는 참진리를 사모하는 모든 분들이 이러한 축복의 미래를 맞이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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