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식이법’ 통과됐어도 또 다른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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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식이법’ 통과됐어도 또 다른 논란
  • 황동환 기자
  • 승인 2019.12.2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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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뀐 어린이보호구역 규정, 오해와 진실
처벌이 과하다? 외국사례 보면 어불성설

지난 9월 충남 아산의 한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서 9살 난 아이가 횡단보도를 건너던 중 차량에 치어 목숨을 잃은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다. 이전부터 어린이보호구역 관련 규정에 구멍이 숭숭 뚫려있다는 지적이 많았고, 이미 해외에서는 우리보다 훨씬 강력하게 규제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손을 놓고 있었던 국회에 비난이 가해졌다.

그리고 마침내 고 김민식 군이 학교 앞 도로에서 사고를 당한 지 석 달 만에 아이 이름을 딴 ‘민식이 법’이 20대 정기국회 마지막 본회의를 통과했다. 고 김민식 군의 부모는 본회의장에서 눈물을 흘리며 법안 처리 과정을 지켜봤다. 

그런데 다시 논란이 일고 있다. “처벌이 너무 과하다”, “형평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민식이법이 통과가 되면서 무엇이 달라지는지, 그리고 실제로 그것이 과한 처벌인지, 외국에서는 어린이보호구역 관련 규정이 어떻게 되는지 살펴봐야 한다.

민식이법은 특정범죄가중처벌법(특가법)을 개정하자는 내용이다. 여기에는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내용도 있고, 통과를 방해했던 자유한국당 소속의 의원이 발의한 내용도 있다. 이를 보면 민식이법 자체에 대해선 여야에 이견이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민식이법은 스쿨존이라고 부르는 어린이보호구역에 신호등과 과속단속카메라를 의무 설치하도록 하고, 어린이보호구역 내 교통사고로 사망자가 나오면 가해자 처벌을 강화한다는 내용이다.

■ 처벌이 과할까? 논란거리 될 수 없는 논란
민식이법이 국회를 통과하고도 잡음이 일고 있다.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신호등과 과속단속카메라 설치 의무 쪽이 아니라 교통사고 가해자 처벌에 관한 조항이다. 민식이법에 따르면 어린이보호구역을 지나가는 운전자가 시속 30km/h 이상의 속도를 내거나, 안전 운전 의무를 위반한 상태로 13세 미만의 어린이를 사망케 하거나 상해에 이르게 했을 때 가중처벌을 하겠다는 것이다. 13세 미만의 어린이가 사망을 하면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의 처벌을 받게 되고, 상해를 입게 되면 ‘1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상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이라는 처벌을 받게 된다.

13세 미만의 어린이는 안전에 대한 인식이 미약할 수밖에 없다. 미성년자에 대한 보호 의무가 성인에게 있듯이 도로 위에서의 안전수칙도 운전자인 성인이 지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규정된 30km/h 이상으로 운전을 하거나 안전운전이 아닌 난폭운전을 했다면 처벌을 받는 것에 대한 이견은 없다.

다만 ‘아이가 갑자기 튀어나오면 어쩌나?’ 하는 문제다. 그럴 때에 무기징역까지 처벌을 받는 것은 과하지 않냐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민식이법은 그런 상황까지 처벌하자는 법이 아니다. 설사 어린이보호구역을 지나면서 사고가 나서 만 13세 미만의 어린이가 사망했다고 하더라도 운전자가 30km/h 이하의 속도로 안전하게 운전하고 있었다고 하면 가중처벌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민식이법은 오로지 속도제한 규정을 어기지 않고 난폭운전을 하는 운전자에게만 적용된다.

형량이 과하다는 주장도 있다. 다른 법률에 비해 처벌이 과하다는 것이다. 우선 일반 교통사고에서 사망 사고가 일어나면 ‘5년 이하 금고형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해당하는 처벌을 받는다. 그리고 음주운전으로 사망사고가 발생하면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이다. 강도죄, 강간죄도 ‘3년 이상의 유기 징역’이다. 이같은 처벌조항과 비교하면서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이라고 규정한 난폭운전으로 인한 어린이 사망사고 처벌이 과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고의가 아니라도 교통사고를 일으켰고, 피해자가 사망을 했는데 노역이 없는 금고형을 최고 5년 밖에 받지 않는 것이 진짜 문제라는 지적이 있다. 벌금도 최고 2천만 원에 불과하다. 음주운전을 해서 사람이 사망을 했는데도 3년 이상의 징역이다. 강간을 했는데도 ‘3년 이상’일 뿐이다. 이미 음주운전과 강간 같은 경우는 처벌이 너무 약하다고 몇 번이나 청원대상이 된 바가 있다. 특히 음주운전 처벌 강화는 올해 최대의 이슈였고, 음주운전 규제도 더 강화됐다. 실상은 민식이법의 처벌이 과한 것이 아니라 다른 법률의 처벌이 부족한 것이다.

■ 다른 나라들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
우리의 교통 관련 법률은 피해자보다 운전자에게 관대하다고 여러 차례 지적됐다. 해외에는 더 강력한 규제가 이뤄지고 있다. 이제는 피해자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 자동차는 그 자체로 흉기가 될 수 있다. 1.5톤에서 2톤을 넘어가는 큰 기계가 수십km/h의 속도로 사람을 친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특히 그 피해자가 어린 아이라면 우리는 이보다 더 과도한 처벌을 마련해서라도 아이들을 보호해야 한다. 다른 나라들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

스웨덴은 스쿨존이 아닌 ‘홈(Home)존’을 도입했다. 학교 앞 도로만 규제를 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활동하는 구역 전체에 차량의 진입을 금지하고, 외부에 마련된 주차장에 차를 세운 뒤 홈 존안으로 걸어 들어와야 한다. 학교 주변 도로는 20cm 방지턱이 차량의 진입을 막고 있고, 차선의 폭을 줄여 감속을 하도록 유도한다. 스웨덴은 연간 어린이 사망자가 10만 명당 2.5명으로 세계에서 가장 낮은 나라 중 하나다.

미국은 스쿨존의 제한 속도가 30km/h 내외다. 그리고 자동차 운행보다 어린이의 보행 안전이 우선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으며, 스쿨존에서 교통법규를 위반하면 벌금 및 벌칙이 2배가 되고, 통학버스가 정차했을 때는 추월을 할 수 없고, 반대 차로의 차량도 정지하거나 감속해야 한다. 스쿨존 도로에서는 제한속도를 초과하면 점멸신호가 들어와 경고를 한다. 미국은 주마다 법률이 다르기 때문에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이 정도는 기본으로 지키고 있다.

캐나다 또한 스쿨존 내에서 속도를 위반하는 것만으로 40만 원이 넘는 범칙금을 물고, 벌점을 부과한다. 학교 근처에는 주정차 공간이 전혀 없고, 스쿨버스를 확대하고 있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에서도 30km/h의 속도 제한 규정을 두고 있으며, 횡단보도의 통행 신호도 통상보다 더 길다. 금속제 과속방지턱을 이중으로 설치하고 도로 폭을 줄여서 감속을 유도하기도 하고, 학교 주변 주차 제한 등의 조치도 병행하고 있다. 일본은 1972년부터 스쿨존을 도입해 제한속도 20km/h 이하로 엄격하게 제안하고 있으며, 교통안전시설을 배치할 수 있는 것은 모조리 배치하고 자동차의 통행규제도 상황에 따라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다.

다른 나라들도 각각 대응 정도와 수준에서 차이가 있지만 중요한 것은 ‘어린이의 보행안전’이 ‘차량 통행의 자유’에 우선한다는 원칙이 분명하다는 점이다.

30km/h 이상을 달리면서, 안전에 유의하지 않은 상황에서 빚어진 13세 미만 어린이의 사망에 대한 책임을 어느 정도로 물어야 할 것인가? 민식이법은 바로 이것을 지적한 법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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