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각(三·一閣)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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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각(三·一閣) 앞에서
  • 구재기 시인
  • 승인 2013.07.12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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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재기 시인과 함께하는 시로 찾는 ‘너른 고을 홍성’ <5>

 

 

 

 

 

 

*초롱산 초롱불빛을 맞으며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솔숲이 자꾸만 흔들리는 밤
물안개처럼 몽글몽글
사라져가는 저 어둠의 꼬리는

빛을 맞을 줄 아는 자는
몸과 마음 한가로운
편안한 휴식을 꿈꾸지 않는다
갈라지고 무너져 내리는
역사를 억지로 새로 쓰지 않는다

오르막으로 되어 있는
길 위에서 어둠을 지워내며
천년을 침묵으로 살아온 빛인데
서러움처럼 쉴 사이도 없이
어찌하여 저리도 끓어오르는 것일까

지금부터라도
네 앞에서는 잃어버린
젊음이라도 준비해야겠다
못 박힌 발부리 같은 그 날
그 아픔이라도 다시 만나야겠다 
* 충남 예산군 광시면과 홍성군 홍동면 사이에 자리한 339.4m 높이의 산으로, 고려 공양양의 어두운 밤길을 주민들이 호롱불을 밝혀주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1919년 3월 1일 민족 대표 33인은 일제 통치 10년에 나라 잃은 국민으로서의 참회와 굴욕과 실망에서 신음하는 겨레에게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독립만세를 높이 불러 광명과 희망과 용기를 주었으니 이것이 바로 기미독립 투쟁이다. 이 독립투쟁은 우리 삼천리 방방곡곡에 퍼져 나갔다. 그 당시 4월에 홍성군 홍동면내에 거주하는 이희도(李羲圖), 황윤성(黃允性) 외 수십 명이 주동되어 각 부락별로 만경산(萬頃山), 청광산(淸光山), 성산(城山) 등 산상에서 주민들과 함께 봉화를 올리고 독립만세를 드높이 부르며 독립을 요구하였다. 이에 일제 헌병과 경찰의 현장 습격으로 인하여 총살 또는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과 옥고로 목숨을 잃거나 고문의 후유증으로 후에 사망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이러한 뼈아픈 역사적 사실을 잊혀감에 이를 안타깝게 생각하던 중 구정리 이병익(李秉翊), 팔괘리 이창우(李昌雨) 등의 발의로 선열의 애국충절을 추모하고 이를 후손의 민족정신 을 고취하기 위하여 기념비를 건립하고자 하였다. 이 뜻에 따라 홍동노인회는 1973년 1월 5일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노인회 자체 자금과 면주민들의 성금, 그리고 재경 홍동향우회의 후원으로 홍동면 운월리에 기미독립운동 기념비를 세움으로써 비각은 물론 현판을 달고는 해마다 추모제를 올리며 오늘날에 이르거니와 이는 후손들에게 나라사랑의 귀감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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