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바람을 맞으며 - 약천 남구만(藥泉 南九萬) 초옥(草屋)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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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바람을 맞으며 - 약천 남구만(藥泉 南九萬) 초옥(草屋)에서
  • 구재기 시인
  • 승인 2013.07.18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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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재기 시인과 함께하는 시로 찾는 ‘너른 고을 홍성’ <6>

 


모양이 없으면
없는 그대로
그렇다고 사라지지도 않는
샛바람 꽃향기로 거슬러 불어오듯
가시 없고 모가 없는 목소리
― 동창이 밝았느냐
신화처럼 얼굴을 마주하고
지혜의 눈을 뜨다 보면
산다는 것은
내일이나 어제의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시각
우러르는 하늘 아래의 것
재 너머 사래 긴 밭을
거북처럼 따르다 보면, 한 생도
한낱 숨결에 지나지 않는다
*보개산 그늘을 펼쳐놓으며
오늘 하루도
샛바람을 고이 맞으며
터전이나 보배로이 가꾸기로 한다 

 

모양이 없으면 없는 그대로 그렇다고 사라지지도 않는 샛바람 꽃향기로 거슬러 불어오듯 가시 없고 모가 없는 목소리 ― 동창이 밝았느냐 신화처럼 얼굴을 마주하고 지혜의 눈을 뜨다 보면 산다는 것은 내일이나 어제의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시각 우러르는 하늘 아래의 것 재 너머 사래 긴 밭을 거북처럼 따르다 보면, 한 생도 한낱 숨결에 지나지 않는다 *보개산 그늘을 펼쳐놓으며 오늘 하루도 샛바람을 고이 맞으며 터전이나 보배로이 가꾸기로 한다 * 충남 홍성군 구항면에 위치한 보개산(寶蓋山)은 아홉 가지의 보물을 덮고 있다는 높이 274m의 산이다. 이 산 아래에는 500년 된 느티나무와 담양 전씨 3은(야은, 뇌은, 경은)을 모신 사당인 구산사, 그리고 전통가옥의 향기를 간직하고 있는 거북이마을이 있다. 거북이의 목처럼 생겼다하여 구항, 구산, 귀목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거북모양의 바위가 머리를 안쪽으로 향하고 있어 '내현(內峴)'이라 부른다고 한다. 


남구만(南九萬, 1629년~1711년)은 조선의 문신이자 정치가이다. 숙종 때의 소론의 거두로 자는 운로(雲路), 호는 약천(藥泉), 본관은 의령이다. 개국공신 남재의 후손으로 오달제의 처조카이며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충청남도 홍성의 결성(結城)에 살다가 서울로 올라와 김익희, 이경여, 송준길 등의 문하에서 글을 배웠다. 작자는 말년에 관직해서 물러나 전원생활의 풍류를 즐기며 유일한 작품 '동창(東窓)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소치는 아이는 상기 아니 일었느냐/재 너머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 하나니'라는 유일한 시 한 수가 청구영언(靑丘永言)에 전한다. 이 작품에서 그는 시골의 아침이 밝아오고 벌써 하늘높이 날며 지저귀고 있는 종달새는 평화로운 시골 풍경을 펼쳐놓으면서 선비다운 부드러운 물음으로 아침 일찍 일어나 부지런히 농사를 지어야 하지 않겠냐고 가르치고 있다. 일종의 권농가(勸農歌) 중의 하나이다. 농촌의 아침 정경을 여유 있게 표현해 운치의 멋을 살려낸 작품으로 평가된다.

그는 효종 때에 문과에 급제하여 1657년 정언이 되면서부터 관직에 머물며 복직과 파직, 유배 끝에 도승지로 복귀하여 대제학, 병조판서,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까지 지냈으나 갑술환국에 노론과 유생들의 공격으로 파직되었다. 이후 고향에서 조용히 일생을 보내다 83세에 죽었으며, 숙종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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