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의 얼과 멋을 엮어내는 댕댕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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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의 얼과 멋을 엮어내는 댕댕이장
  • 조원 기자
  • 승인 2015.01.26 18: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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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광천읍 백길자 씨

 

▲ 자신이 직접 댕댕이로 만든 바구니를 들어 보이고 있는 백길자 씨와 댕댕이로 만든 모자를 써 보이고 있는 김성환 씨.


충남 무형문화재 31호로 지정 
“문화재담당자는 옛날 방식 그대로 계승해서 만들라고 하고, 경제담당자는 돈이 되도록 용도에 신경 써 달라고 하고, 관광담당자는 관광 상품이 되도록 최대한 예쁘게 꾸며 달라고 합니다” 2000년 충남도 무형문화재 31호로 지정된 백길자(68·광천읍) 씨의 댕댕이 공예품을 두고 하는 농반 진반의 이야기다.

‘댕댕이장’은 다소 생소한 이름이다. 댕댕이장이란 댕댕이라는 덩굴의 줄기를 이용해 다양한 생활용품을 만드는 기능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댕댕이 줄기는 일반 짚과는 달리 탄력이 좋고 잘 구부러져 사용성이 좋은데다 통풍도 뛰어나 오래 전부터 수납용품으로 만들어 사용해 왔다.

댕댕이 덩굴로 만든 공예품은 1960년대 초반까지 농촌에서 생활도구로 널리 쓰였으나 기계제품이 발달함에 따라 점차 사라지고 그 기능도 단절되기에 이르렀다. 현재 ‘댕댕이 공예’는 홍성과 제주도에서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남편 도움으로 장인으로 성장 
제주도를 제외하면 유일한 댕댕이장인 백길자 씨는 충남 당진에서 7남매 중 맏딸로 태어났다. 12살 무렵부터 매일 같이 댕댕이를 엮어가는 부모님을 보며 옆에서 거든 것이 자신의 유일한 취미가 되어 버렸다. 백 씨는 “친구들이 밖에서 뛰어놀 때도 방안에서 혼자 댕댕이를 가지고 놀았다”며 “댕댕이를 한 번 엮기 시작하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른다”고 말했다.

백길자 씨는 비교적 늦은 나이인 서른 살에 우체국 집배원이었던 김성환(68) 씨를 만나 홍성으로 시집왔다. 당시 살던 장곡면 주변에는 댕댕이 덩굴이 많아 백 씨는 넉넉지 않은 시댁 살림에 보탬이 되고자 댕댕이 덩굴을 끊어다가 생활도구로 만들어 왔다.

“댕댕이 공예는 짚공예와도 비슷해 보이지만 짚공예와는 다르게 매우 정교하고 오랜 손길이 필요합니다. 세 말이 들어가는 바구니 같은 경우는 만드는 데만 3개월이 소요될 정도거든요. 덩굴 줄기만 해도 3km는 족히 듭니다”

1999년 마을 탐방 TV프로그램에 백 씨의 댕댕이 공예품이 알려지면서 문화재의 길이 열렸다는 백 씨. 방송이 나간 다음 날 문화재연구소 직원 4명이 댕댕이 공예품을 보려고 그녀의 집으로 찾아왔다. 그러나 백 씨의 물건을 본 직원들은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문화재로 삼기에는 많이 모자라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유일한 댕댕이 기술을 가진 그녀에게 희망을 주고자 “하나를 만들더라도 작품답고 섬세하게 만들라, 작고 예쁜 작품도 만들라”고 조언했다.

사라져가는 옛 문화 계승되길
백 씨는 이후 공예품을 만들 때마다 이 말을 떠올리며 한 줄 한 줄 엮어 나갔다. 평소보다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제품은 보다 세련되고 정교해져 갔다. 이듬해 문화재연구소 직원들이 백 씨의 집을 다시 찾았을 때는 모두들 작품을 보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문화재 심사위원 전원으로부터 합격점을 받아 2000년 9월 무형문화재로 선정될 정도로 성장한 것이다.

“여전히 마을 어르신들은 힘들고 돈도 안 되는 일을 뭐하러 하냐고 핀잔입니다. 그 때마다 저는 이게 저의 유일한 낙이라고 말해요. 댕댕이장을 하지 않았다면 그저 평범한 삶을 살았을테니까요” 백길자 씨는 자신이 문화재인으로 거듭나기까지는 든든한 후원자인 남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이런 남편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기 위해 지난 2005년 남편의 우체국 집배원 퇴임식 날 120명의 동료들에게 댕댕이 반짓고리를 선물했다. 이 날을 위해 2년을 준비했다.

이제는 댕댕이장 이수자가 나타나길 고대하고 있다는 백 씨는 “이곳저곳에서 댕댕이 공예를 배우러 많이들 오고 있지만 대부분 취미에 머무는 수준”이라며 “댕댕이장 이수자가 하루 빨리 나타나 다음 세대에도 댕댕이 공예가 전승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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