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메달 과녁을 향해 활시위를 당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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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메달 과녁을 향해 활시위를 당겨라!
  • 조원 기자
  • 승인 2015.02.16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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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홍성군청 양궁팀 이성진 선수
올해부터 군청 양궁팀에서 선수 겸 코치로 활약할 이성진 선수가 활을 손에 쥐고 있다.
올해부터 군청 양궁팀에서 선수 겸 코치로 활약할 이성진 선수가 활을 손에 쥐고 있다.

홍주초 김동선 감독 발탁으로 양궁 입문
윤미진·박성현 선수가 내 인생의 롤모델
선수 겸 코치로서 고향 위해 맹활약 기대

양궁하면 대한민국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올림픽 효자종목인 양궁은 금메달 따는 것보다 올림픽 국가대표로 선발되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이 체육계의 정설이다. 이처럼 한 번도 서기 어려운 올림픽 무대에 두 번이나 오른 이성진(31) 선수는 지난 1월 홍성군청 양궁팀으로 이적하며 군민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지난 2012년 런던올림픽 단체전 결승에서 중국을 210vs209, 1점차로 꺾으며 국민을 환호케 했던 양궁 금메달리스트 이성진 선수를 만났다.

초등학교 4학년에 첫 양궁을 시작한 이 선수는 당시 홍주초등학교 김동선 감독에게 발탁되면서 양궁 선수로 입문했다. 그녀가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홍성여고로 진학하면서부터다. 그녀는 시드니의 영웅 윤미진 선수를 보며 국가대표의 꿈을 키웠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2000년 시드니올림픽 개인전과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윤미진 선수를 보면서 강한 동기부여를 받았어요. 윤 선수처럼 되고 싶어서 이를 악물고 매일 천발씩 쏘는 훈련을 거듭했습니다. 그런 훈련 과정이 오늘의 저를 만든 것 같아요” 하루에 천발을 쏘려면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활을 붙들고 있어야 가능했다. 피와 땀으로 얼룩진 활시위와 한 몸이 된 그녀는 마침내 2003년 아시아선수권대회 단체전에서 우승의 주역으로 거듭났다.
 

지난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이성진 선수.
지난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이성진 선수.

그녀는 당시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아버지의 권유로 전북도청으로 소속을 옮겨 새로운 둥지를 틀었다. 그러나 고향을 떠나면서 남모르는 아픔을 겪었고 슬럼프도 겪었다. 그것도 잠시, 당시 전북도청 선수였던 박성현 감독을 만나면서 새로운 전성기를 맞는다. 박성현 선수는 전국체전에서 144발을 쏘며 합계 1400점이라는 세계신기록 보유자였다. 박 선수를 만나면서 그동안 자신이 취약했던 부분들을 재정비한 그녀는 그해 아테네 올림픽 국가대표로 첫 출전한다. 이 대회에서 단체전 금메달과 개인전 은메달을 목에 걸며 세계적인 선수로 도약했다.

이 선수는 “박성현 선수를 만난 것은 저에게 큰 행운이었어요. 세계인이 부러워하는 기량을 가진 그에게 도움을 받은 덕분에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동료로서 감독으로서 지난 10년간 동고동락한 박성현 선수가 지금도 변함없는 최대의 롤모델이라고 말했다.

이성진 선수는 자신이 꼭 특별한 재능이 있었기 때문에 국가대표로 발탁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양궁선수로서 국가대표가 된 것은 매우 자랑스러운 일이지만 사실은 남보다 조금 더 운이 좋았을 뿐이에요. 양궁도 상위권으로 갈수록 선수층이 매우 두터운 종목 중 하나라서 그날의 몸 상태나 날씨 등에 따라 경기 결과가 달라지는 경우가 많아요. 제가 국가대표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사실 이러한 소소한 영향이 미쳤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이 선수는 두 번의 올림픽 무대를 서보았지만 우승의 감격을 제대로 누린 것은 런던올림픽 때라고 한다. 그녀는 “첫 올림픽 출전 때는 국가대표의 무게감도 잘 느끼지 못하고 무대에 올랐던 것 같아요. 그냥 평소처럼 언니들과 함께 게임을 즐기다 온 느낌이랄까요? 아마 그랬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결과에 대해 아무 부담감 없었기에 우승도 할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때로는 모르는 것이 더 약이 될 수 있다”고 말하며 웃음 지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8년이 지난 런던올림픽 때는 사뭇 달랐다. 주위의 부담스런 시선들을 한 몸에 안고 올림픽 무대에 섰기 때문이다.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된 경기는 결승전에 이르러서야 고비를 맞았다. 경기 당일 눈과 비가 번갈아 내리면서 컨디션 조절이 생각만큼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생각보다 뛰어난 기량을 자랑하는 중국 선수들은 더욱 큰 부담감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그녀의 흔들림도 잠시, 이내 침착하게 승부를 이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그 결정적 힘은 다름 아닌 곁에서 응원해준 많은 교민들 덕이었다.

“뒤에서 ‘걱정하지 말고 평소대로만 하라’는 응원의 목소리가 들리면서 큰 힘을 얻었어요. 피 말리는 접전 끝에 한 점차로 우승하고 나서야 비로소 이것이 올림픽이 주는 기쁨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됐어요. 그동안 노력했던 모든 것을 보상받는 느낌이랄까요. 승리의 기쁨은 경기 내내 곁에서 응원해 주신 교민들에게 돌리고 싶었어요. 그 때 경기는 선수만 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들과 함께 하는 것임을 피부로 실감했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 이후 전북도청 대표로 경기장에 나선 그녀는 대회에서 고향 선수들과 경쟁을 벌일 때마다 마음 한 구석이 무거웠다. 그런 마음의 짐을 10년 째 안고 살아온 그녀는 올해부터는 고향을 위해 뛸 수 있어서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고 한다. 고향의 여전사로 다시 돌아온 그녀는 올해 큰 목표를 품었다. 바로 대통령기와 전국체전에서 군청 양궁팀이 모두 메달권에 들 수 있도록 선수 겸 코치로서 노력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지난달 17일부터 25일까지 7일간의 극기 훈련을 떠나며 몸과 마음을 새롭게 다졌다.

“변함없이 따뜻하게 맞이해주신 홍성군민께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군민들의 기대와 성원에 부응할 수 있도록 저 자신은 물론 팀원들이 좋은 성적을 올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우리 양궁팀에게 아낌없는 사랑과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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