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손으로 가는 인생, 행복하고 평등하게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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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손으로 가는 인생, 행복하고 평등하게 삽시다”
  • 장윤수 기자
  • 승인 2015.04.28 12: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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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광천장의사 최헌구 씨

 

▲ 수의를 만드는 삼베를 들어 보이는 최헌구 장의사.


달라진 장례문화로 역할 감소… 광천 유일 장의사
힘들고 어렵지만 꼭 필요하다는 사명감 갖고 일해


“요즘은 장례문화가 달라져서 할 일이 많이 없어졌죠. 그래도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봉사정신을 갖고 임하고 있습니다” 30년 넘게 광천에서 장의사로 일하고 있는 최헌구(69) 씨의 말이다.

지난 10여 년 동안 장례식장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서면서 장례문화가 크게 달라졌다. 최근에는 매장이 줄고 대부분이 화장을 해 납골당에 모시거나 수목장을 하는 추세여서 장의사의 역할도 점차 줄어들고 있다. 예전에는 광천에도 세 네 명의 장의사가 있었지만 지금은 최 씨가 유일하게 남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옛날에는 환자가 병원에서 숨을 거두려 하면 집에 모시고 와 임종을 맞게 하고 3일장을 치렀습니다. 그러면 장의사가 물품을 가져가 염을 하고 발인부터 매장까지 전 과정을 도왔죠. 꽃상여도 가져오고 요량(방울)을 흔들 사람이 없으면 대신 흔들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반대로 임종이 가까워오면 병원으로 모셔가 장례식장에서 장례를 치른다. 또 상조업체가 장례 과정의 대부분을 도맡기 때문에 지금 장의사가 주로 하는 일은 혹간 매장을 할 때 터를 닦고 산소 주변을 정리하는 정도다. 결성이 고향이라는 최 씨는 지난 1971년 광천의 한 사료공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이후 건축 일을 배워 사우디아라비아에 2년 6개월간 근로자로 나가기도 했다. 이후 광천에 다시 돌아온 최 씨는 지금의 아내 이재순(66) 씨를 만났다. 아내는 당시 장의사를 도우며 상주가 입는 상포를 재단하는 일을 했다. 1982년 아내와 함께 일하던 장의사가 세상을 떠나고 최 씨가 일을 이어받게 된 것이 30여 년이 흘러 지금에 이르게 됐다.

“처음엔 염하는 법도 몰라 할 줄 아는 사람을 불러 함께 일을 했죠. 처음 시신을 대할 땐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최 씨는 이내 노하우를 터득했는데, 시신의 얼굴을 탈지면으로 먼저 가리고 몸부터 염을 한 후 수의를 입은 얼굴을 대하면 무서움이 덜했다고. 최 씨는 “그 때부터 오히려 일을 즐기게 돼 지금까지 장의사 일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최 씨가 어린 시절에는 동네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염을 하러 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가 꺼리는 직업이 돼 장의사는 오히려 고급 인력이 됐고, 여러 대학교에도 장례학과가 생겨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있다. 최 씨는 “남이 볼 때는 추한 직업일 수도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을 한다는 보람과 사명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시신을 대하다 보니 기쁘고 즐거웠던 일보다 힘들고 어려웠던 일이 많이 떠오른다는 최 씨는 특히 어렵고 만지기 어려웠던 시신들이 아직도 생생히 떠오른다고. 한여름에 산 속에서 목을 매거나 약을 먹고 자살한 시신이나 큰 사고를 당한 시신들은 처리하기가 더욱 어려웠다. 특히 상태가 좋지 못한 시신들은 자손들도 보기 꺼려했다고 한다.

“아직도 생생한 것은 물에 빠져 죽은 시신인데, 퉁퉁 불어 코끼리만 해져 장의차에도 싣지 못해 트럭으로 옮기고 제일 큰 관에도 들어가지 않아 애를 먹었습니다. 그런 시신은 냄새도 심해 한 번 코에 배면 3일씩 가기도 했죠” 최 씨는 당숙이나 당숙모가 돌아가셨을 때 직접 염을 하기도 했다. 이처럼 타인보다 죽음을 자주 대하는 최 씨의 자세는 항상 같았다. 빨리 죽고 늦게 죽고의 차이지, 누구나 한 번은 죽음을 맞이하는 만큼 다른 사람들에게 해 끼치지 말고 정직하게 살자는 것이다. 최 씨는 마을 일에도 솔선수범하며 신임을 얻어 15년째 원촌리 이장으로도 일하고 있다.

최 씨가 가장 안타까운 것은 돈을 악착같이 벌기만 하고 죽음을 맞는 사람들을 볼 때다. 죽으면 자손이 해 주는 수의 한 벌을 입고 떠나는데, 최근에는 화장을 하다 보니 수의마저 저렴한 중국산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최 씨는 마지막으로 죽음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가끔 돌아가신 분의 장롱에서 자식들이 사다 준 옷이 상표가 붙은 채로 나옵니다. 아껴서 입는다고 넣어두고 한 번 입어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분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죠. 이처럼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고 모두 빈손으로 떠나는 만큼 억척스럽게 살기보다 행복하고 평등하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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