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낮은 모습으로 가장 큰 희망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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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낮은 모습으로 가장 큰 희망 전합니다”
  • 장윤수 기자
  • 승인 2015.06.11 16: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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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실은각설이공연단 양재기 단장

우리네 삶 깊은 애환 속에 뿌리내린 ‘각설이’

▲ 사랑실은각설이공연단 양재기 단장.

“사람들이 보기엔 천하고 추한 직업일 수 있지만, 각설이들은 종합 예능인입니다” 만 25년째 각설이 공연을 펼치고 있는 양재기 단장의 말이다. 보령이 고향인 양 단장은 홍성과도 깊은 인연이 있다. 1983년 홍성 폴리텍 직업훈련소를 다니며 용접 자격증을 딴 양 단장은 수원에 있는 창호 회사에 취직을 했다. 그러나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하던 양 단장은 갑작스럽게 교통사고를 당해 왼쪽 다리를 크게 다치고 6급 장애인 판정까지 받게 됐다. “울적한 마음을 달래려고 고향에 있는 대천해수욕장에 나갔었죠. 그런데 우연찮게 품바 공연단의 모습을 보게 됐습니다. 재밌기도 하고 한 번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 시작한 것이 지금에 이르게 됐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일명 ‘재롱이’라 불릴 정도로 끼가 많았던 양 단장은 천생 각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고. 이후 재활치료를 하며 각설이 타령을 전수받은 양 단장은 전국을 돌며 공연을 시작했고, 특히 고향이 있는 충청도를 자주 찾으며 홍성도 자주 들르게 됐다. 유달리 홍성 사람들은 양 단장을 반가워했고 자주 부르며 챙겨줬는데, 그 마음이 고마워 양 단장은 홍성을 ‘제2의 고향’으로 여기게 됐다. “홍성에서는 기별체육대회는 물론이고 농업인, 새마을 행사 등에도 자주 불러주셔서 언제나 열정적으로 돕고 있습니다”

물론 양 단장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처음 공연을 하러 다닐 때 시골마을에선 분장한 양 단장을 보고 어르신들이 어디서 거지가 왔냐며 냉대를 하기도 했고, 어린아이들도 거지라며 양 단장을 놀리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인식이 많이 달라져 각설이를 하나의 공연이자 문화 예술의 영역으로 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각설이는 고려시대 때부터 존재했다고 합니다. 무언가 잘못을 한 도망자들이 숨어 지낼 수 없어 거지로 꾸미고 다녔던 것에 유래했다고 하죠. 이후 고 김시라 씨가 각설이를 가지고 ‘품바’라는 연극을 만든 것이 세상에 알려지는 계기가 됐습니다” 양 단장은 “배비장전처럼 유명한 마당놀이들은 지어낸 이야기지만 각설이들의 난장 공연은 우리네 삶 깊은 애환 속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양 단장은 각설이 공연을 문화재로 만들려는 계획을 구상 중이다. 양 단장은 전국에서 산발적으로 활동 중인 각설이 네 명을 모아 ‘괴짜 4인방’이라는 그룹을 만들고 각설이 타령과 민담, 코미디, 북·장구 등으로 구성된 공연을 시작했다. 이후 여러 각설이들이 양 단장의 공연을 따라했고, 이를 통해 많은 이들이 각설이 공연을 예술의 한 영역으로 생각하게 됐다. 양 단장은 현재 대한품바협회 사무총장을 맡고 있으며, 향후 사단법인 품바예술인협회를 발족해 각설이들이 예능인으로 자리 잡는데 도움을 줄 계획이다. “각설이들은 상업적인 활동을 하다 보니 문화재로 등재되긴 어려운 실정입니다. 앞으로는 공연 내용을 잘 구성해 전국 문화회관이나 체육관, 지역 등을 다니며 상업성이 없는 마당놀이를 펼치고 이를 통해 각설이를 문화재로 남기기 위해 많은 구상과 노력,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본인도 가진 장애의 아픔을 나누기 위해 양 단장은 현재 ‘사랑실은교통봉사대’로도 20년 넘게 활동하고 있다. 양 단장은 교통봉사대를 통해 심장병어린이 무료 수술지원과 무료 장례 등의 봉사를 펼치고 있다.
“저 혼자만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모든 각설이들이 인정받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삶의 애환을 그려내고 풍자와 해학이 있는 각설이 공연을 통해, 기쁘고 슬프고 절망할 때도 있겠지만 이왕이면 희망이 있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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