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도청 청사, 수암산 아래 종묘장 비닐하우스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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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도청 청사, 수암산 아래 종묘장 비닐하우스 자리”
  • 편집국
  • 승인 2008.06.18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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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 풍수지리연구회 정존 이상운 회장 에게 듣는 충남도청 이전지 풍수적 해설

▲ 내포풍수지리연구회 이상운 회장
축복 받은 땅 내포 지역 홍성군, 예산군 지역에 21세기, 최대의 경사가 났다. 잘 알다시피 충청남도(忠淸南道) 도청(道廳)이 이전해 오기 때문이다. 이것이야 말로 과거 홍주 지역의 영광을 재현하여 충청남도 행정 중심지가 되는 행운이 도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을 가지고 말도 많고 탈도 많은데 충남도청 도청사(道廳舍)가 위치할 곳을 가지고 설왕설래 하는 것이다.
필자는 예산군 덕산면 읍내리 가야 지구대 옆 내포풍수연구회(內浦風水硏究會)에서 십수년간 풍수지리(風水地理)를 연구하여 온 사람으로 우리 지역에 도청이 유치 된 것이 우리 모두의 영광으로 생각하며 도청 소재지가 될 곳을 풍수지리상으로 지역의 주민들께 지면을 통하여 말하고자 펜을 들었다.
우리 내포(內浦) 지역은 예로부터 풍수지리상 길지(吉地)가 많은 곳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이하응(李昰應)이 정만인 이라는 지사의 말을 믿고 이대천자지지(二代天子之地)에 아버지 이구(李球) 즉, 남연군(南延君)의 묘를 이장(移葬)한 것은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 내포(內浦)지역은 곤륜산에서 발원한 산맥이 중국 중원을 지나 우리 민족의 영산 백두산(白頭山)을 세워놓고 그곳을 시발점으로 1개의 백두대간(白頭大幹)과 1개의 장백정간(長白正幹))을 기준으로 13개 정맥(正脈)을 형성 하였는데 그 중에서 백두대간을 타고 내려오던 맥이 속리산에서 한남금북정맥(漢南錦北正脈)이 시작해 한남정맥과 금북정맥이 한줄기 맥으로 내려오다 한남정맥(漢南正脈)은 칠장산 492m에서 갈라져 서북쪽으로 안성의 백운산으로 돌아 들어간 맥이 용인의 보개산과 안양의 수리산, 인천의 소래산을 거쳐 김포의 북성산을 거쳐 문수산에 이르러 멈춘다.
또한 우리 내포 지역으로 들어온 금북정맥(錦北正脈)은 칠장산에서 갈라져 칠현산 516m를 지나 안성의 청룡산과 천안의 성거산 579m, 흑성산 519m, 공주의 쌍령, 온양의 광덕산 699m, 청양의 금자산, 홍성의 오서산 790m, 백월산394m, 덕산의 가야산, 태안의 안흥진에 이어지는 금강 북쪽의 산줄기로서 아산만과 천수만 사이에 아산, 당진, 예산, 홍성, 보령, 청양 일부지역으로 삽교호로 물이 흘러나가는 지역을 내포라 보면 옳을 것이며 그 형상이 국자 모양인 북두칠성(北斗七星) 모양으로 산을 형성하며 이러한 형상을 자미원국(紫微垣局)이라 한다.

▲ 지네 형상인 수암산 아래 농협중앙회 종묘장 비닐하우스 자리가 적지이다.

이중환의 택리지(擇里志)에는 가야산 앞뒤 열 고을을 내포라 하며 임진년(壬辰年)과 병자년(丙子年) 두 차례의 난리에도 적군(敵軍)이 들어오지 아니하였으며 땅이 기름지고 평평하며 생선과 소금이 매우 흔하며 부자가 대를 이어 살아가는 사대부(士大夫)가 많은 고을 이라고 하였다.
우리 내포 지역은 명산(名山)도 많고 명혈(名穴)도 많으며 그에 따라 백야 김좌진장군, 만해 한용운, 매헌 윤봉길의사 등 걸출한 인물들이 많이 배출 된 곳이다.
지금 충남 도청이 들어서려는 홍성과 예산의 경계 목리, 수촌리, 신경리 지역은 홍성 백월산(白月山) 394m에서 내려온 맥이 동막을 지나 한줄기는 서쪽으로 육괴정을 통하여 천년고찰(千年古刹) 수덕사(修德寺)가 있는 덕숭산 495m으로 들어가고, 한줄기는 동막에서 동쪽으로 호서의 금강산이라 불리는 용봉산(龍鳳山) 381m과 수암산(秀岩山)260m에 이르게 된다.
중간제목; 용봉산은 오행상(五行相) 화형(火形)에 산으로 살권(殺權)이 있고 수암산은 수토형(水土形)에 산으로 부드럽고 온화한 멋이 있다.
이곳에서 도청 소재지의 주산(主山)이 될 용봉산과 수암산을 물형(物形) 즉 산에 생긴 형상(形象)을 사물에 비유하여 먼저 이야기 한다면 용봉산은 한자로 용용자와 봉황봉자를 쓰는데 용과 봉황같이 생긴 산이라고 볼 수도  있으나 이것을 상세히 풀어 보면 교룡(交龍)에 일종으로 하늘을 공룡이 날은 다와 같아서 날개 달린 익룡(翼龍)의 형상을 하고 있다.
홍성의 동진아파트 쪽에서 용봉산을 바라보면 큰 익룡이 하늘을 날다가 편안한 휴식처를 찾아 날개를 펴 내려앉는 형국이다.
또 수암산과 같이 함께 놓고 보면 악어의 형상을 하고 있다.
그러기에 용봉산과 수암산은 기암괴석이 많은 곳으로 악어나 공룡의 몸처럼 딱딱하고 울퉁불퉁 하게 생긴 것이다.

▲ 동진 아파트 쪽에서 바라본 용봉산, 큰 익룡이 하늘을 날다가 날개를 펴 내려 앉는 형국.

용봉산과 수암산에 수줍은 여인네 맘 같은 연분홍 진달래가 만발 하면 수많은 등산객들이 찾아온다.
용봉산에 관해서는 여기서 이쯤 하고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더 자세히 설명하기로 하자.
이젠 수암산(秀岩山)에 대하여 이야기 해보면 수암산은 한자로 빼어날 수 바위암자를 쓰니 그 뜻을 풀어보면 특별히 아름답고 멋진 바위가 많은 산이란 뜻으로 실제로 수암산에는 범 바위, 오형제 바위 등 멋진 바위들이 많다.
용봉산이 오행상(五行相) 화형(火形)에 산이라면 수암산은 수토형(水土形)에 산이다. 용봉산과 같이 화형(火形)에 산은 살권(殺權)이 있다. 반면에 수암산 같이 수토형(水土形)에 산은 부드럽고 온화한 멋이 있다.
형상을 말 한다면 수암산은 오공(蜈蚣) 즉 지네의 형상이다 지네 한 마리가 조용히 엎드려 있는 형상으로 필자에게 많은 사람들이 도청이 유치됨에 있어 도청사(道廳舍) 건물을 어디에 자리하는 것이 좋겠느냐고 질문을 한다. 이럴 때 마다 나는 단숨에 거리낌 없이 말 한다.
“현재 농협중앙회 종묘장 비닐하우스 자리이다”라고. 이 자리는 충남도청에 도청사 건물이 자리 하기에 가장 적절한 장소이다.
이 혈(穴)은 풍수상 그 맥이 횡용(橫龍)으로 들어와 방토개대와(方土皆大窩)에 혈이 맺었는데 유혈(乳穴)도 아니요 돌혈(突穴)도 아닌 둥근 금반형(金盤形)의 인욕혈(茵褥穴)로 수암산을 병풍 삼고 덕숭산과 가야산을 후락(後樂)으로 삼아 ‘수촌 뜰과 삽교천을 외명당(外明堂)으로 삼아 대귀인(大貴人)을 모시기 위해 병풍치고 자리 펴 놓고 잔치상 거하게 차려 놓고  하늘이 수천년을 기다린 터 라고 의심이 가거나 관심이 있는 사람은 홍북 시내에서 수암산을 잘 관찰하여 바라보면 양택(陽宅) 대명당(大明堂)인욕혈(茵褥穴)을 볼 것이다’라고 자신 있게 말하곤 한다.
요즈음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도청 청사 건물이 홍성과 예산 경계 지점에 유치하여 서로 말썽을 일으키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는 안일한 생각이다. 도청이 들어와 새로운 도시가 형성 되는데 홍성 땅이면 어떻고 예산 땅 이면 어떠한가. 속 좁은 지역감정과 눈앞의 이익에 왈가왈부 할 것이 아니라 가장 좋은 길지(吉地)에 자리하여 21세기 환태평양 시대를 맞이하여 앞으로 우리 충청남도가 발전하고 나라와 민족이 중흥하길 기원하고 노력 해야지 눈앞의 이익에 필요 없는 소모전은 그만 해야 한다고 생각 한다,
앞에서 말했지만 용봉산은 화형산(火形山)으로 살권(殺權)이 있다. 살권(殺權)은 형벌(刑罰)을 의미한다. 반면 수암산은 부드럽고 순함이 있다. 도정을 펼치는 곳은 살을 써서는 아니 된다. 순리에 따라서 도정을 펼치듯이 부드럽고 순한 수암산 아래에 위치하여야 한다.
각물유주(各物有主)라 했던가 항상 이 세상 모든 것에는 짝과 임자가 있는 것처럼 청사가 자리 할 곳은 이미 하늘이 정하여 놓았거늘 그것을 우매한 인간이 바꾸려하는 것인가. 하늘이 하려는 대업을 우리가 그르치면 그에 상응 하는 대가는 우리 인간이 받게 되는 것이다.
풍수에서 다음 같은 말이 있다.
조지장식(鳥之將息)에도 필택기림(必擇其林) 이어든 인지거처(人之居處)에 기불택지(豈不擇地) 리요 조지택림(鳥之擇林)에 기지야안(其止也安)이요 인지복지(人之卜地)에 행복자지(幸福自至)라. 해석하여 보면, 한낮 미물인 새 한 마리도 쉬어가고 머물고 하는 곳을 반드시 가려서 머물고 쉬어 가거늘 하물며 만물의 영장 인간이 태어나고 먹고 자고 공부 하고 죽는 생노병사(生老病死))의 활동무대(活動舞臺)를 어찌 가리지 않으리요. 새가 숲을 가려서 머무는 것도 편안하기 때문이요 사람 또한 길지에 거처하면 행복해 지리라 하는 말이거늘 어찌 우리는 한사람 한 가족이 머무는 자리도 가려서 길지(吉地)에 머물려 하면서 200만 도민의 도정을 펴는 도청사(道廳舍)를 서로 이해득실(利害得失)만을 따져서 그 터를 정한단 말인가, 안타까운 일이다.
어찌 미물(微物)도 길지(吉地) 흉지(凶地)를 가려서 머물거늘 200만 도민의 도정(道政)을 펴는 곳을 길지흉지(吉地凶地)도 못 가려서 자리 한다면 후세(後世)에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역사의 평가를 받을 것이 자명한일 이라 생각 한다.
도민의 의견을 예의 주시 하여 부디 도청이전이라는 하늘이 주신 기회와 양택(陽宅) 대명당(大明堂)길지(吉地)를 버리지 말고 진짜 명품 도청사(道廳舍) 건립(建立)을 이 시대를 살아가는 200만 충청남도민과 함께 필자는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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