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 먼저, 아우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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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먼저, 아우 먼저
  • 이현조<문화in장꾼·시인·주민기자>
  • 승인 2016.08.26 11: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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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쯤은 들어본 이야기일 것이다. 한 때 이 이야기의 내용을 따서 모 라면광고의 카피로 사용되기도 했다. ‘형님 먼저 아우 먼저’에는 가난하지만 인간성을 잃지 않은 훈훈함이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형님 먼저 아우 먼저’가 아니라 ‘내가 먼저, 그래도 내가 먼저, 어쨌거나 내가 먼저’이다.

특히 운전을 하다보면 이런 상황은 빈번하게 마주치게 된다. 회전하는 차가 직진 차보다 먼저 가겠다고 위험천만 회전하는 일은 물론이요, 마을에서 국도로 진입하면서 평소에 차량 통행이 별로 없는 도로이니 당연히 차가 없을 거라 생각하고 불쑥 튀어나오는 차들을 보면 아찔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고속도로에서는 최고제한속도로 가는 차가 가장 느린 차이다. 안전거리는 무시된 체 불쑥 끼어들고, 전화통화를 하면서 차선을 넘나드는 사람도 있다. 야간에 마주 오는 차가 있어도 상향등을 내리지 않는 사람도 있다. 하향등으로 내려달라고 전조등을 깜빡거려도 무슨 이유인지 꿈쩍도 않는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런 행위를 하고서도 미안한 기색이 없는 것이다. 자신이 무엇을 잘 못 했는지, 무엇이 문제인지를 모르는 것이다.

운전할 때만 그런 것이 아니다. 공공장소에서의 질서가 사라진 지는 이미 오래 전이다. 요즘은 새치기하는 것이 당연시되고, 왜 새치기하냐고 따지는 사람도 없다. 그건 ‘불필요한 싸움’ 또는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그냥 둥굴둥굴 사는 게 좋죠’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생각으로 공공질서와 공공예절을 묵인하는 행위가 사태의 심각성을 배양하는 것이다. 뉴스나 신문을 보면 불법, 불법, 불법. 마치 불법을 빼고는 할 말이 없는 사회처럼 느껴진다. 일일이 예를 들자면 끝이 없다.

이러한 문제들은 ‘나’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나의 생각과 시선’의 문제이다. 나의 생각과 시선이란 무엇인가? 이는 가치판단의 기준, 즉 가치관이다. 여기서 ‘가치관’을 이야기할 때 주의할 것이 있다. 사람마다, 나라마다 가치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나라의 문제로 확대하면 더욱 그렇고, 동양과 서양의 문제로 확대되면 더더욱 그렇다. 우리가 옳다고 믿는 것이 다른 나라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바른 것, 옳은 것을 판단할 것인가? 논제의 핵심은 이렇게 귀결될 수밖에 없다. 그 기준이 없다면 당연히 우리는 가치의 혼란에 시달려야 한다. 그 가치의 기준은 역사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관(史觀)이다. 우리 역사를 바로 알면 우리의 모습이 보인다. 그것이 민족혼이다. 개개인이 지향해야할 가치기준이다. 지역의 역사를 바로 알 때 지역 속의 내가 보인다. 그것이 지역성(지역정체성)이다.

오늘날 우리가 이런 꼴이 된 것은 일본에 의해 왜곡된 역사를 배우고, 왜곡된 역사를 바탕으로 조상 탓이나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역사를 바로 알고, 민족혼을 바로 세워 후대에 전하는 것. 지금 우리가 할 일이다.


<이 보도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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