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천의 행정과 상업 주거 중심지역 용두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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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천의 행정과 상업 주거 중심지역 용두마을
  • 장윤수 기자
  • 승인 2016.12.29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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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일구는 색깔 있는 농촌마을사람들<42>
농촌마을의 위기 극복한 희망스토리를 만나다 - 광천읍 신진리 용두마을
▲ 용두마을 어르신들이 마을 회관에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다.

행정관서와 주택가, 상가가 함께 어우러진 마을
읍사무소 신축으로 20여 가구 철거해 주민 줄어
광천의 오랜 역사 자랑하는 덕명초등학교 자리해
노인회·청년회·부녀회 등 마을 이끄는 조직 활발

 

◇광천읍 행정의 중심지 용두마을
광천읍 신진리 용두마을은 마을 내 여러 관공서가 위치하고 있는 행정 중심의 마을이다. 용두마을은 광천읍 오거리에서 장고개로 넘어가는 도로 주변에 위치한 마을로 마을 동쪽에 산이 있는데, 산의 형상이 용의 머리형상이라고 해 용두(龍頭)마을이라 했다고 전해진다. 현재는, 동산의 형태만 남아있을 뿐, 산을 찾아보기 어렵다. 용두마을은 동쪽으로는 신랑 1동, 서쪽으로는 송우마을, 남쪽으로는 광천리, 북쪽으로는 장현마을과 인접해 있다.
 

▲ 용두마을 전경.

백제 때는 결기군에 속했고, 신라 때는 결성군에 속했다. 고려 때는 홍주에 속했으며, 조선시대에는 홍주군에 속했었다. 조선 말엽엔 홍주군 궁경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기 다진리, 용두리, 신촌 및 한정리 일부를 병합해 신촌과 다진의 이름을 따 신진리라 했고, 홍성군 광천면에 편입됐다가 1942년 10월 1일 광천면이 읍으로 승격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신진리는 신진1·2리, 용두, 장현, 송우, 다진, 신촌 등 7개 행정마을로 구분된다.

용두마을은 행정관서와 주택가가 어우러진 것이 특징이며, 도로를 따라 상가들도 자리해 있어 행정관서 및 주거와 상가지역이 어우러진 마을이다. 특히 광천읍의 주요 지방 행정기관들이 용두마을에 위치해있다. 광천읍사무소와 홍성경찰서 광천지구대, 보건소, 농협중앙회, 덕명초등학교 등이 자리해 있다. 교회로는 광천감리교회와 광천안식교회가 있다.

용두마을은 주로 관공서와 주택지역과 상가가 밀집해 있어 묘소를 설치하지 않았고, 마을에도 특별한 명당 터는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용두마을은 행정기관이 가까이에 자리하고 있으며 광천전통시장과도 거리가 멀지 않아 살기 좋은 동네로 널리 알려져 있다. 80가구 정도가 거주하고 있으며, 농사를 짓는 가구는 26가구, 그 외 50여 가구는 상업에 종사하고 있다. 광천읍내 번화가 중에서는 가장 중심지역으로, 마을 주민들은 함께 화합하며 돈독하게 살아가고 있다.

용두마을은 과거 130여 가구에 달할 만큼 큰 마을이었으나, 읍사무소 신축과 함께 20여 가구가 철거되면서 현재는 80여 가구밖에 남지 않은 마을이 됐다. 마을 주민들은 행정기관이 있어 편리한 점도 있지만, 일부 가구가 철거된 것에 대해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을 표하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신사 자리했던 용두마을
용두마을은 광천읍이 출발할 때부터 행정의 중심이었다. 광천읍은 일제강점기 1914년 행정개편 당시 홍성군과 결성군의 26면을 통합해 11면으로 개편하며 홍성군 광천면으로 개칭됐고, 1942년 10월 1일 광주광역시와 같은 시기 광천읍으로 승격했다.
 

▲ 용두마을에 위치한 광천읍사무소 전경.

현재 용두마을의 주요 기관으로는 광천읍사무소와 홍성경찰서 광천지구대, 보건소, 농협중앙회 등과 광천읍에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덕명초등학교가 자리하고 있다. 용두마을에는 일제강점기 신사가 이썼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도 용두마을은 행정의 중심이자 여러 관공서들이 자리했으며, 일제는 그들의 지배논리에 맞춰 용두마을 뒷산에 신사를 세우고 신사참배를 강요한 것으로 추정된다. 일제는 용머리에 해당하는 곳에 신사를 지었고 지금은 신사의 흔적은 사라졌다.

◇서승태 선생 설립한 덕명초 자리해
광천의 근대교육은 서승태(1854~1921) 선생이 세운 덕명학교를 효시로 볼 수 있다. 덕명학교는 1908년 광천읍 상정리 덕정마을에 사립 덕명학당으로 설립됐고, 제1차 조선교육령으로 1915년 11월 3일 광천공립보통학교로 승격됐다. 1938년 4월 1일 광천 신진 공립심상소학교, 1941년 4월 5일 광천 신진 공립초등학교, 1946년 9월 1일 광천 제1공립초등학교, 1949년 12월 24일 덕명초등학교, 1996년 3월 1일 덕명초등학교로 교명을 개칭했다.

학교를 설립한 서승태 선생은 1854년 8월 3일 광천읍 상정리에서 출생했다. 서승태 선생의 자는 성삼이고 호는 일농이다. 서승태 선생은 일찍이 독립운동에 투신했고, 1906년 민종식이 이끄는 의병을 위해 당시 지방부호의 창고를 열어 군량미를 제공한 바 있다. 또 1908년 광천읍 상정리 덕정마을에 사립 덕명학당을 설립해 후진교육에 전심 전력했다.

서승태 선생이 인재육성의 뜻을 품고 세운 덕명학교는 오늘날 덕명초등학교의 전신으로 광천지역의 수많은 인재를 배출했다. 덕명초등학교가 용두마을 광천읍사무소와 바로 옆에 설립되자 교정에 서승태 선생을 기리는 홍학기념비(1935년 건립)를 세우고 그의 독립정신을 학교 학생들은 물론 지역주민까지도 추모하고 있다.

◇활발한 마을 조직 중심 단합 잘 돼

▲ 용두마을 회관 전경.

용두마을 주민들은 상업을 위주로 경제활동을 하고 있으며, 상가뿐만 아니라 단독주택과 연립주택 등 주거지역과 각종 기관들이 어우러져 있다. 용두마을회관은 읍사무소 뒤쪽 경찰서 사택부지에 조립식 건물로 설치돼 있었으나, 2009년 봄 읍사무소 부지로 편입되며 헐리게 됐다. 보상금 2000만원과 홍성군 지원 등 4000여 만원의 경비로 부지를 매입하고, 군비 1억 5000만원을 지원 받아 다기능 경로당 신축공사를 진행, 2009년 10월 말에 완공했다.

용두마을의 마을 조직으로는 노인회, 부녀회, 청년회, 개발위원회, 용우회 등이 조직돼 마을 발전과 주민 화합을 위해 노력해나가고 있다. 노인 회원들은 마을을 이끄는 지주 역할을 하고 있으며, 마을일에 앞장서는 청년회는 회원 상호간 우애와 마을 경조사에 상부상조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부녀회는 마을의 경조사에 내 일처럼 참여해 마을은 물론 지역사회에도 귀감이 되고 있다. 청년회와 부녀회는 매년 어버이날을 전후해 마을 노인들을 모시고 경로잔치를 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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