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희망은 있다" 쪽방 할머니들의 힘겨운 겨울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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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희망은 있다" 쪽방 할머니들의 힘겨운 겨울나기
  • 이은주 기자
  • 승인 2011.01.07 11: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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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 아까워 매서운 칼바람에도 전기장판 한 장으로 버텨
시각ㆍ청각 잃어 집 밖 한번 못 나가 "죽지 못하고 사는게 웬수여"


연일 이어지는 혹독한 한파 속 문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칼바람과 함께 독거노인들에게도 신묘년 새해가 밝았다. 소한을 하루 앞둔 지난 5일, 빽빽이 들어서 가족 간의 온기가 전해지는 아파트 뒤편으로 위치한 독거노인들의 보금자리를 찾아 힘겨운 삶과 겨울나기를 들어봤다.

젊은시절 가족사진을 보며 눈물을 글썽이는 이순학 할머니
오전 10시경, 4평 남짓한 방안에서 이불을 턱 밑까지 끌어올린 채 앉아있는 이순학(86) 할머니. 홀로지내며 외로웠던 탓인지 기자의 손을 잡아 전기장판 위로 이끈다. 방안에 들어서자 난방비를 아끼기 위해서인지 차디찬 방바닥에 작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찬바람이 연신 옷깃을 여미게 한다.

"윗 풍이 너무 세서 코가 시릴 정도여! 낸들 따순 방에 안 살고 싶겄어? 기름값을 감당하기에 너무 벅차니께 별수 없제…."

이북이 고향인 이 할머니는 6.25때 월남해 경찰공무원이었던 남편과 결혼 후 자식을 못나 수양 아들과 딸을 뒀지만 1.4 후퇴 때 남편과 사별하고 지금은 자식들과 소식이 끊긴지 오래돼 기초생활수급자로 생활하고 있다. 정부미만 먹다 얼마 전 고마운 분 덕분으로 10년만에 일반미로 밥을 지어 먹으니 너무 맛있어 눈물이 났다며 눈시울을 붉히는 이 할머니.

중풍으로 인해 거동조차 불편해 하루 종일 어두컴컴한 방안에서 TV를 벗 삼아 지내고 있는 이 할머니의 새해소망은 장 구경 한번 가보는 것이라고 한다.

오랜만에 들른 손님이 반가운지 눈물까지 훔치며 살아온 인생이야기를 전하는 이 할머니를 두고 돌아나오는 기자의 발걸음이 한 없이 무겁기만 했다. 이 할머니의 집을 나와 모퉁이로 돌아서니 쪽문이 보였다. 쪽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니 가득 쌓여있는 연탄이 눈에 들어왔다. 역시나 반갑게 맞아주는 김보배(96) 할머니의 손에 이끌려 방안에 들어서니 이 할머니와는 다르게 방안 가득 훈근함이 가득하다. 아마도 기름보일러가 아닌 연탄이기에 큰 부담은 없는 듯 보인다. 하지만 창문 틈과 방문 앞의 칼바람은 어김없이 밀려들어와 혹독한 추위로 인해 어깨를 움츠러들게 한다. 방 옆으로 나있는 작은 주방문을 열어보니 주방 가득 연탄가스 냄새가 진동한다. 언제 사용했는지 모르게 싱크대 위에는 물기 하나 없이 메말라 있다. 끼니는 거르지 않고 챙겨드시냐는 기자의 질문에 김 할머니는 "그나마 청로회 등 고마운 분들이 반찬을 보내줘 끼니는 거르지 않어"라며 감사함을 전한다.

하루종일 방안에서 지내는 김보배 할머니는 어쩌다 찾아주는 이들이 너무도 고맙다
강원도 속초가 고향인 김보배 할머니는 기억이 가물거려 바람따라 세월따라 흘러 오다보니 홍성에 정착하게 됐다고 말한다. 6.25 때 가족과 헤어지고 생사조차 확인 안돼 고아나 다름없는 김보배 할머니에게 힘겨운 겨울나기에 대해 묻자"빨리 천당 가는게 소원이여. 죽지 못해 사는게 웬수같어…"라며 한숨짓는다.

새해소망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김 할머니는 "올 겨울이 빨리 지나갔음 좋겄어. 글구 다 같이 행복하게 살았으면 혀…"라고 소박하게 말한다.

쪽방 할머니들이 혹독한 추위와 싸우며 힘겨운 겨울나기를 하고 있는 사이에도 거리의 화려한 불빛은 여전히 형형색색을 내며 빛을 발하고 있다.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상황으로 인해 나눔의 손길이 점차 줄어들고 있지만 두어평의 좁은 공간에서 꾸는 할머니들의 소박한 꿈이 이뤄지길 바라며 적어도 외롭진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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