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재량사업비와 민원해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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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재량사업비와 민원해결사
  • 최선경 <홍성군의회 의원·칼럼위원>
  • 승인 2015.04.03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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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단체에 속한 지방의원들의 주요 업무 중 하나는 주민의 민원을 해결하는 것이다. 지방의원 중에서도 기초의원은 대부분의 일과가 주민 민원을 받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공무원과 소통하는 일이다. 주민 민원을 보면 때로는 법적·제도적 규제 때문에 생존 한계선을 넘나드는 서민 생활의 고달픈 사연들도 있지만 때론 막무가내 민원에 시달리는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기초의원에게 매달리는 민원이라면 1차 행정기관을 통해 해소될 수 없는 조건인 경우가 대부분이거나, 공무원에게 접근하기 어려운 취약 계층의 민원인 경우가 많다고 할 수 있다.

3월은 의회 회기가 없다 보니 1년 중 가장 여유가 있는 편이다. 그래서 지난 2월 임시회를 마치고 마을총회, 대보름행사 등 틈틈이 경로당을 돌아다녔다. 늘 어르신들은 반갑게 맞아 주시지만 마을에 가면 다양한 민원이 쏟아져 나오기 일쑤라 당황스러울 때가 적지 않다. 어떤 마을에서는 경로당 물품을 마치 의원들이 사주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우리 마을 노래방기기랑 냉장고는 A의원이 바꿔줬는데 최 의원은 뭐 해줄 거여?”라고 물으실 땐 참 난감하다. 필요한 물품이 있으면 주민복지과에 건의할 수 있으나 의원들이 해드리는 게 아니고, 결국은 어르신들이 내신 소중한 세금의 일부라고 해명해 보지만 그다지 설득력은 없다. 오히려 필요한 물품을 사주지 않으면 다음엔 안 뽑아준다며 으름장을 놓기도 하니 솔직히 선출직 의원으로서는 가슴이 서늘할 뿐이다.

얼마 전 홍성읍장을 통해 주민숙원 요구사업 명목으로 45개 마을에서 50억 원의 예산이 수반되는 180건의 민원을 보고 받았다. 이중에서 우선순위를 정해 순차적으로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집행부와 의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효율적인 예산 집행을 당부했다. 하지만 물품 지원과 관련해서는 개선해야 할 부분이 아직 많다. 물품 목록만 살펴본다면 식기세척기, 40인치 이상 LED TV, 노래방기기부터 안마의자와 발마사지기, 냉장고와 정수기, 압력밥솥 등 무척 다양하다. 반드시 필요한 물품도 있겠지만 다른 경로당과 비교해 우리 경로당에는 없으니 꼭 사달라는 경우도 있다. 경로당에 물품을 지원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물품을 지원할 때는 기본원칙을 정해야 함을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또 지원한 물품 내역을 한 부서에서 상세하고 일괄적으로 정리하고, 내구연한 등을 따져 이중으로 지원되는 일이 없도록 관리감독을 철저히 할 필요가 있다.

심지어 어떤 주민들은 즉각적인 예산 집행을 바라면서 옆구리를 찌르는 경우도 더러 있다. 의원들이 쓸 수 있는 ‘재량사업비’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주민들이 그렇다. 사실 모든 예산을 일일이 명목을 잡아두고 책정할 수 없어서 각 읍면에는 ‘주민숙원사업비’가 주어진다. 대개 긴급한 도로 보수 작업이나 배수로 정비 등으로 많이 쓰인다. 따라서 ‘의원재량사업비’라는 것은 본래 존재하지 않는다. 지방의원 ‘쌈짓돈’이라는 지적을 받아 상당수의 지방의원 재량사업비는 폐지되는 추세로 홍성군도 이미 폐지됐다. 지역구마다 주민들의 숙원 사업을 빠르게 해결하기 위해 의원들이 나서다 보니 의원의 재량사업비인 것처럼 통용되고 있을 뿐이다. 사실 군 행정이 돌아가는 이치를 잘 알고 있거나 의원과 자주 만나는 주민들은 이를 이용해서 자신의 민원을 관철시키는 경우도 허다하다.

요즘에는 인터넷이 활성화되어 의원을 통해 일을 해결하지 않고 곧바로 군 홈페이지에 요구사항을 올리는 주민들도 많아졌다. 그럼에도 의원을 통해 들어온 민원은 좀 더 큰 힘을 얻으니 해결이 빠를 것이라고 여기는 일부 주민들 덕분에 의원들의 민원해결사 역할은 앞으로도 의정활동의 중요한 한 축으로 자리잡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소소한 민원을 잘 해결해 주는 의원, 경로당에 풍족하게 물품을 지원해 주는 의원이 인정을 받는다는 건 아쉬운 부분이다. 지방자치와 지역사회 발전이라는 명분 앞에서 이제는 의원들이 개별적 민원이나 처리하면 된다는 소극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합리적 분권운동과 지방행정개혁의 핵심적 주체로서의 모습을 보여야 할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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