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평민, 그들만의 리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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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평민, 그들만의 리그인가
  • 정규준<한국수필문학진흥회이사·주민기자>
  • 승인 2016.10.09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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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하면서 기시감에 휩싸인 적이 있다. 풀무골이라고 하였던가. 홍동면 소재지 인근 야산에 수줍은 색시처럼 몸을 숨긴 작은 건물이 있었다. ‘위대한 평민’이라고 새겨진 돌비에 사로잡혀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민낯의 청소년들이 열띤 토론을 하며 수업에 임하고 있었다. 봉숭아 학당 같은 풋풋하면서도 진지한 열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 오산학교를 설립한 이승훈 선생의 종손 이찬갑 선생과 목회자였던 주옥로 선생이 함께 세운 학교다. ‘풀무’란 대장간에서 바람을 일으켜 불을 피우는 도구로, 참인간교육의 불씨가 되겠다는 설립자들의 의지가 담겨 있다. 사회를 정화하는 민주적이고도 독립적인 인격체를 만들고, 기존 가치에 속박되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으로 자라나게 한다. 수업은 정체성 확립을 위하여 토론식으로 진행하고, 친환경농법을 가르쳐 지역사회와 연계된 영농후계자로 키운다. 

25년 전 내가 처음 홍성에 왔을 때 홍동에는 이미 오리농법이 시작되고 있었다. 평화로이 가금류가 무리지어 다니는 들녘을 보면서 자연과 어우러져 사는 삶의 기대에 가슴 설렜던 생각이 난다. 오리농법의 시발점이 풀무학교였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환경호르몬에 시달리고 있는 현대인에게 유기농법은 먹거리의 가장 큰 대안으로 환영받고 있다. 인간과 자연과 생명을 잇는 풀무학교의 교육철학이 결실을 맺어가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풀무학교를 ‘그들만의 리그’라며 비평의 눈길로 보기도 한다. 세상과 조화하지 못하고 지역이라는 좁은 울타리 내에서 모여 산다는 것이다. 자녀들의 앞날을 걱정해 입교를 꺼리는 부모들도 있다. 그러나 그곳에 한번 가보라! 생활한복을 입고 머리를 질끈 동여맨 사람들의 행보가 홍길동전의 ‘율도국’을 옮겨다 놓은 것처럼 거침없고 어색함이 없다. 유수한 여대생들이 자원봉사를 와서 그곳 총각들과 결혼하여 도농교류의 문화를 이어가고 있다. 그들은 홍동의 각종 영농단체 등에서 활동하며 지역공동체의 중심에 서 있고, 국내외에서 매년 2만여 명이 벤치마킹을 다녀간다. 그곳에선 새롭게 세상을 바꾸고 삶을 바꾸는 방식들이 시험되고 있다. 이러한 기운은 풀뿌리민주주의 정신으로 이어져 홍성군정을 변화시켜가고, 문화는 민중으로부터 솟아나서 계승 발전된다는 말을 실감하게 한다.

별은 하늘에서 빛나고 스님은 산 속에 거하여야 한다는 말이 있다. 자기의 본분을 지키며 살 때 세상의 좌표가 될 수 있으리. 푯말처럼 살다 간 사람들이 있다. 윤동주가 그랬고 법정스님이 그랬다. 그들은 별처럼, 소나무처럼 살다갔지만, 맑은 정신은 후세의 가슴에 남아 사리처럼 빛나고 있다. 위대함이란 한 알의 밀알이 떨어져 수많은 밀알을 맺는 것 아닐까. 배후로 사라져가는 것들의 걸출함! 풀무정신은 주민의식으로 스며들어, 공동체 삶의 씨알이 되고, 세상을 정화시키는 바람으로 거듭나고 있다. 바람은 만국으로 뻗어가, 모든 이 속에서 생명으로 안착할 때 비로소 날개를 접으리. 위대한 평민의 세계이다. 기시감이란 이곳이 돌아갈 삶의 고향이라는 말이 아닐까. 

<이 보도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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