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날과 개장국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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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날과 개장국 (1)
  • 범상스님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11.07.28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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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가 끝나고 본격적인 삼복더위가 시작되었다. 뭐니 뭐니 해도 삼복에는 삼계탕과 개장국이 제격인 듯싶다. 그래서 우리들(한국사람)은 꼭 복날이 아니어도 삼복 중에는 무슨 탕이 되었던 뜨거운 음식을 한 그릇 해야 직성이 풀린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아예 복날에는 개장국과 삼계탕을 파는 음식점 이외의 다른 집들은 파리를 날릴 지경이라고 한다.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우리는 뜨거운 국물에 환장한 민족이다. 그래서 음식점 메뉴도 김치찌개, 된장찌개, 비지찌개 등(*반찬은 모두 같음) 국물을 우선하여 부른다. 무엇이든 오래 푹 끓여서 우려내면 탕이 되고, 물을 적게 해서 자글자글 끓이면 찌개, 많이 잡아서 넉넉하게 만들면 국이 된다. 심지어 찜에도 국물이 있어야 하고 ‘불고기백반(?)’은 양념소고기가 구워질 때 흘러내리는 국물을 받아서 밥을 말아 먹는다. 뿐만 아니라 더위를 피해 시원한 냉면을 먹으러 가더라도 먼저 뜨끈한 육수부터 나온다. 그래서 냉면집은 서비스로 나오는 육수가 맛있어야 인기가 있다.

이렇게 뜨거운 국물을 좋아하다 보니 먹는 방법도 다른 민족과 다르고, 담아내는 용기(用器) 역시 국물을 담을 수 있는 대접과 밥의 온도를 지켜주는 주발 등이 발달되었으며, 뜨거운 국물이 펄펄 끓으면서 나오는 뚝배기, 열이 오래가는 돌솥, 그것도 모자라서 아예 화덕을 식탁 위에 올려놓고 굽거나 끓여가면서 먹는다. 여기에 한 술 더 떠서 뜨거운 국물을 후후 불며 한 숟가락 떠 넣고 한다는 소리가 “어~시원하다”고 하니 뜨거운 국물을 사랑하는 정도가 너무 지나친 게 아닌가 싶다.

열은 열로서 다스린다는 ‘이열치열(以熱治熱)’이라는 말이 의학적인 근거가 있는지는 접어두고라도 왜 우리민족이 뜨거운 음식을 좋아하는지 자못 궁금하여 찾아보았더니, 세계 수많은 민족 중에서 가장 먼저 숟가락과 젓가락을 사용해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서양에서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한지는 불과 400년 정도 밖에 안 되었으며, 그 전까지는 음식을 손으로 먹다보니 국물은 고사하고 뜨거운 음식조차도 먹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서양음식은 조리를 해서 식혀 먹는 것이 대부분이며, 소스나 스프가 걸쭉한 것은 빵과 같은 음식으로 찍어서 먹었기 때문이다.

중국과 일본도 우리처럼 숟가락이 발달되지 않았고, 젓가락의 사용방식 또한 다르다. 우리는 젓가락으로 음식을 집어서 입으로 가져가지만 중국과 일본은 그릇을 입에 가져간 다음 젓가락으로 긁어 넣는다. 그리고 숟가락은 밥과 국을 함께 먹을 수 있는 형태가 아니라 컵의 변형으로 국물을 들어다가 마시게끔 만들어져 있다.

이처럼 서양은 양손으로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하고, 중국과 일본은 그릇과 젓가락을 사용하지만 우리는 한 손으로 수저 모두를 사용하기 때문에 다른 한 손으로는 쌈을 싸서 먹는다고 한다. 무엇이든 넣고 끓여서 국물을 내어 먹듯이, 넓적한 푸성귀 위에 이것저것 올려놓고 싸서 먹으면 쌈이 되고, 고추장을 넣고 벌겋게 비비면 비빔밥이 된다.

우리는 어떤 집의 음식 맛을 말할 때 “그 집 장맛이 좋다”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쌈이나 회처럼 날것을 그냥 먹든지, 끓이든지, 삶든지, 볶든지, 지지든지 하여튼 그 중심에는 장(간장·된장·고추장·김치 등) 즉, 푹 익은 삭힌 맛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리 프랑스와 중국의 요리가 발달했다 해도 기름에 튀기고 볶기 때문에 삭힌 맛이 내는 깔끔하고 담백한 맛에서는 한 수 아래 일 수밖에 없다. 푹 삭힌 맛은 어떤 음식과도 잘 어울리므로.

이번에는 한 가족이 똑같은 밥상에 앉아서 밥을 먹더라도 즐기는 방법이 모두 다르다. 할머니는 국에 말아서 먹고, 아버지는 비벼서 먹고, 어머니는 쌈을 싸서 먹고, 아이는 이쪽저쪽에서 한 입씩 얻어먹기도 하고, 비벼 먹다가도 쌈이 맛있어 보이면 비빈 밥을 다시 상추에 싸서 먹는다. 이러고도 성이 차지 않으면 조금 남은 국물에 이것저것 넣어서 볶아 먹는다. 아마도 우리처럼 이미 차려 내어온 음식을 식탁에서 자기 입맛대로 또다시 만들어 먹는 민족은 세계 어느 곳에도 없을 것이다.

이처럼 한국인들은 밥상에서도 특유의 개성과 자유분방한 ‘끼’와 즉흥성을 보인다. 그래서 우리민족은 얼핏 보면 단합과 단결이 안 된다고 할 만큼, 세계에서 가장 독특한 개성을 지녔고, 즉흥성이라는 신명을 통해서 모든 것이 하나가 되며, 의기투합되면 무엇과도 어울리는 회통의 합리성을 지녔다.

“먹고 산다”는 말로 삶을 표현하는 것은 먹을거리에 그 민족의 모든 것이 들어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런데 우리의 문화와 역사를 전혀 모르는 일부사람들이 “동물애호”라는 명분을 내세워 개장국(개고기)을 먹는 우리의 식문화를 무조건 비하하고 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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