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시단 최초로 철도노동자의 노동을 집중적으로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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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시단 최초로 철도노동자의 노동을 집중적으로 담다
  • 정세훈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3.09.14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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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관서 시인의 첫 시집 <철도원 일기>

지난 2000년 7월, 한국 시단 최초로 철도노동자의 노동을 집중적으로 담은 시집이 출간되어 문단은 물론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화제의 시집은 당시 철도노동자 박관서 시인이 자신이 직접 체험한 다양한 철도노동과 그 정서를 육화한 시편들을 담아 도서출판 <내일을여는책>에서 ‘내일을 여는 시’ 27번째로 펴낸 그의 첫 시집 <철도원 일기>다.

시집에 대하여 당시 조선대학교 초빙교수 김준태 시인은 ‘철로처럼 길게 반짝이는 체험 그리고 사랑’이란 제목의 발문에서 “박관서 시인! 언제나 그렇듯이 그대는 ‘단단한 네 무쇠덩이 어깻죽지에서/튼튼한 네 작업복 어깻죽지로 묻어 와/아무리 닦아내도 묻어 와 다시 번들거리는/모발유 자국처럼 끝내 버릴 수 없는/ 우리들의 노동’으로 오늘도 목포역을 떠나는 ‘새벽 기차’에게 그래도 실로 엄청난 희망을 걸고 있음을 이 글을 쓰는 나는 알았네” 라고 감탄했다.

뒤표지 글에서 문학평론가 김철은 “쓸데없이 힘을 주어 헛발질만 하거나 쇳된 목소리로 시 이전의 생목을 돋구거나 하는 것은 문학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박관서의 시들이 그런 것들로부터 멀리 떠나 있음은 새삼 말할 것도 없다. 더욱 반가운 것은 그의 작품에 보이는 다양성이다. 구체적 생활로부터 시적인 모티브를 길어내는 안목도 예사롭지 않고 그것을 형상화하는 기법도 상당한 주준이다”고 논했으며, 시인 오철수는 “‘별 것 아닌 것들’이 세상을 빛내고 ‘참 되게도 못난’ 삶이 더 우뚝한 법이다. 이러한 진리를 보는 자가 시인이다. 눈에 보이는 현상에만 도취되어 있는 풍토에서 박관서의 시가 의외의 감동을 주는 것은 세상을 보는 그의 형형한 눈빛이 현상 너머의 세계, 우리 삶의 육체에 가 닿아 있기 때문이다”고 평했다. 시인 유용주는 “박관서의 시에 등장하는 기차역은 오직 막노동에 가까운 교대 근무와 허다한 잡무와 박봉에 시달리면서도 일하는 사람들 특유의 서로 감싸고 어루만지고 다독거리는 나날의 고투가 달빛아래 자갈처럼 그득하게 빛을 발한다”고 평했다.

“두터운 면장갑 사이사이/치덕치덕 엉켜오는 서릿발 털어내며/출발신호기 긴 쇠사다리를 오른다/검푸른 얼굴로 위태로이 흔들리는 새벽./검게 타버린 알전구를 조심스레 뽑아내고/알토란 같은 새 전구를 꼽아/돌리고 돌리다 보면 꿈처럼 환한 불빛/반짝, 들어온다 좋아/하장내 출발신호기 ‘출발 진행’/손끝으로 튕겨내는 지적 환호, 이제/눈 비비며 밤내 달려온 야간열차는/이상 없이 통과하리라 잠시 후/더운 김 푹 푹 뱉아내며/김밥 속처럼 멀리서 온 사람들/긴 기다림 줄줄이 품어 안고서/정시운전 확보하며 달려가리라/깊이 잠든 세상의 머리맡을 돌아/낡은 자전거 폐달을 밟으며/사무실로 돌아오는 길, 뺨을 감싸며/초겨울 찬바람이 스쳐가고/누군가 애써 켜 둔 별빛 몇 개/깨끗한 눈망울로 앞서 가고 있다.”(시 ‘출발신호기’ 전문)

1962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난 시인은 1983년 철도고등학교 졸업 후 철도청 호남선 목포역 등에서 30여 년 동안 철도원 생활을 했다. 그 와중에 주경야독으로 방송통신대학 국문과와 조선대 대학원 국어교육학과를 수료했으며 목포대 교육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96년 ‘삶 사회 그리고 문학’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으로 <철도원 일기>와 <기차 아래 사랑법>, <광주의 푸가> 등이 있다. 현재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윤상원문학상과 도라지문학상을 수상했다.

정세훈 <시인, 노동문학관장, 칼럼·독자위원>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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