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의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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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의 시장
  • 김상구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3.11.02 08:3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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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의 시장(Vanity Fair)》은 19세기 영국 소설가 새커리(Thackeray 1811-1863)의 소설 제목이다. 새커리는 이 소설의 제목을 17세기 영국 소설가 존 버니언(John Bunyan, 1628~1688)의 소설 《천로역정(The Pilgrim’s Progress)》에서 가져왔다. 《천로역정》에는 17세기 영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진솔하게 묘사돼 있다. 기독교적으로 구원을 얻어 깨끗한 삶을 살아가려고 하는 사람들이 꼭 통과해야 하는 코스가 허영이라는 시장이다. 이곳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사기꾼, 협잡꾼의 모습을 하고 있고 이들은 자식, 쾌락에 빠진 아내, 명예, 지위, 토지, 주택 등 사고팔지 않는 것이 없다. 저 천상의 세계에 도달하려고 마음먹은 사람들에게 이들은 상놈과 다를 바 없다. 상놈들의 사는 모습에 현혹돼서는 안 된다는 의미에서 이곳을 통과하도록 버니언은 소설에 설정했는지 모른다.

서머셋 모옴(Smoerset Maugham, 1874~ 1965)과 같은 소설가는 새커리의 《허영의 시장》을 영국 최고의 소설로 꼽고 있지만, 새커리는 국내에 그리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허영의 시장》은 국내에도 몇 종류의 번역본이 출판돼 있다. 새커리는 19세기 영국 사람들의 속물적 근성을 풍자하는데 일가견이 있었다. 《허영의 시장》도 돈 많은 남자와 결혼해 신분 상승을 노리는 여자 레베카와 진정한 사랑을 원하는 여자 아멜리아의 삶을 병치, 대조시킨다. 레베카라는 여성이 돈 많은 남자와의 관계 속에서 물질적 만족을 얻으려는 모습은 《천로역정》에서 허영의 시장을 지나는 사람들의 모습과 흡사하다. 재물을 얻기 위해 무슨 짓을 해도 꺼릴 것 없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이 소설에는 이 두 사람뿐 아니라 유럽대륙, 희망봉을 돌아 인도까지 누비는 광대한 지역의 인간들이 등장한다. 새커리는 “인간은 어리석고 이기적이며 허영을 좇는다는 사실을 밝혀주기 위해” 이 소설을 썼노라고 밝힌 바 있다.

《허영의 시장》의 등장인물들은 19세기 영국 사람들의 허위의식과 속물적 근성을 풍자하기 위해 소설 속에 나타난 형상들이지만 그 시대뿐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웃의 모습과도 크게 동떨어져 있지 않다. 문학은 그럴 수 있는 개연성을 끝까지 밀고 나가 극한 상황에 있는 인물의 모습을 제시하고, 그 인물을 통해 그렇게 살지 말아야지, 또는 저렇게 살아야지 하는 느낌을 독자에게 제시한다. 현실에서 가끔은 소설 속의 인물보다 더 희한한 인물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런 인물이 많이 등장하는 사회일수록 독자들은 현실이 더 재미있으니 소설을 읽지 않아 ‘소설의 죽음’을 예고한 비평가도 있었고, 그의 예언대로 우리 사회에서 소설이 잘 팔리지 않고 있다.

요즘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남현희라는 전 펜싱선수, 전청조라는 인물도 이런 허영의 시장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그녀가 15살 아래의 남자와 재혼을 한다고 발표하자, 전청조라는 사람은 성 전환술을 한 사람, 사기꾼, 재벌 3세 등의 이미지로 언론에 등장했다. 소설 속의 인물보다 더 재미있어 보이는 캐릭터다. 남현희가 전청조로부터 3억 원에 달하는 벤틀리 자동차, 800만 원대의 핸드백을 선물로 받았다는 뉴스는 그녀도 이러한 사기행각의 자장(磁場) 안에 있지 않을까 싶어 누군가는 그녀를 고발도 했다. 그녀가 물질적 욕망이 강했기에 그러한 사기에 쉽게 휩싸여 들어갔을 것이고 결국은 끝없는 추락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물질에 대한 욕망의 완급을 잘 조절한다는 것이 도를 닦는 일 만큼이나 어려울 수 있다. 인간은 누구나 물질을 갈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질에 대한 갈망이 동시대 사람들이 긍정하는 방식이 아니면 자제를 하는 게 그 사람의 품격이다. 상식에 어긋나게 물질을 취하면 탈 나고 손가락질을 피하기 어렵다.

행복에 이르는 길을 물질적 욕망에서 크게 찾는다면 쉽게 만족에 이르기 어렵다. 그 만족이 채워지지 않을 때 지치고 피곤하며, 다시 일어서기 위해서 힐링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물질적 욕망을 채우기 위해 무한 경쟁을 벌이는 사회는 ‘피로사회’를 가져올 것이고, 누구나 ‘번 아웃(burnout)’될 확률도 높다. 이런 사회에서 행복감을 느끼기는 어려운 일이며, 자연히 인구의 감소도 진행될 것이다. 물질을 향한 무한경쟁이 벌어지고 승자 독식하는 사회는 그 사회를 몰락시킬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성경에도 물질적 욕망의 추구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쓰여 있지만, 많은 사람이 이 자리를 맴돌고 있는 것은 인간이 그 속성을 벗어나기 어려운 일임을 보여준다.

그렇지만 동시대의 공동체적 윤리의식을 깨트리는 유명인들의 마약, 부정한 방법의 재산 축적, 정치인의 각종 비리 등은 천상의 세계에 올라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동시대인들이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라도 비판받아 마땅하다. 비리를 저지르고 살아가는 개개인을 보고 새커리는 “‘허영의 시장’에 늘어서 있는 임시건물과 같다”고 말한 바 있다.
 

김상구 <전 청운대학교 교수, 칼럼·독자위원>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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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민정 2023-11-03 11:53:14
공감합니다
허영의 시장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지만
허영도 넘치니 설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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