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와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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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와 독서
  • 김상구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13.06.05 22:0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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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1469-1527)처럼 죽은 후에 다양한 평가를 받는 사람도 많지 않을 듯 싶다. 일반적으로 마키아벨리하면 권모술수의 대가, 독재자를 위한 지침서를 쓴 사악한 정치이론가 정도로 기억된다. 그의 책 ‘군주론’ 때문이다. 교황 바오로 4세도 이 책을 1559년에 ‘금서목록’으로 지정하여 읽지 못하도록 했고. 1569년 영국에서 발간된 영어사전에도 부정적 의미로 ‘Machiavellian'이라는 단어를 정의한 것으로 보아 유럽에서도 그를 ‘악당 원조’격으로 취급했다. 그러나 그의 실제적 삶은 ‘마키아벨리적’이지 않았다.
마키아벨리가 16세기라는 시대의 인물이었다면 그에 대한 평가는 각 시대의 산물이다. 마키아벨리가 국왕을 가르치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억압당하고 있는 국민들을 깨우치기 위하여 군주론을 썼다고 루소(1712~1778)는 그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헤겔(1770~1831)은 피렌체(작은 도시국가)라는 죽기 직전의 환자를 특별한 비책(秘策)으로 구하려는 그의 우국충정을 그 시대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마키아벨리를 두둔한다.
20세기에 맑시스트인 루이 알튀세(1918~1990)와 안토니오 그람시(1891~1937)는 그가 특권계급에 맞서서 일반백성의 권리를 지키려고 했던 민중주의자이거나 진보적 사상가라는 평가를 내린다.
마키아벨리에 대한 후세의 평가가 어떻든 그의 삶은 지독한 가난과 싸우며 이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그의 아버지 베르나르도는 세금 미납자라는 ‘스페치오’로 살아가고 있었고, 산탄드레아라는 작은 마을에서 고전읽기로 세월을 보낸다. 호기심과 냉철함으로 눈을 반짝이던 아들 니콜로 마키아벨리도 어깨너머로 아버지가 읽던 리비우스의 ‘로마사’를 읽고 또 읽어낸다. 철학자 마크로비우스,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수스, 자연과학자 플리니우스, 아리스토텔레스 등의 책은 마키아벨리가 고향에서 읽었던 책이었고, 이를 통해 그는 세상의 이치와 권력의 속성을 꿰뚫어 볼 자양분을 흡수하게 된다.
그가 읽은 책과 공직생활의 경험은 ‘군주론’ 곳곳에 등장한다. 이 책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많은 고전과 ‘로마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공직생활 중에도 그의 독서는 계속되었고, 어려울 때마다 선인들은 그의 멘토가 된다. 그가 피렌체 제2서기장(오늘날의 장·차관정도)이라는 공직에 올라 15년 동안 국방과 외교의 업무를 총괄하면서도 책읽기는 계속된다.
외교적 담판을 지으러 프랑스에 출장 갈 때도 카이사르의 ‘갈리아 원정기’를 읽었고, 체사레 보르자를 옆에서 관찰할 때도 플루타코스의 ‘영웅전’을, 막시밀리안 황제와 협상을 벌일 때 타키투스의‘역사’를, 게르만인들의 특성을 파악할 때 타키투스의 ‘게르마니아’를, 그리고 교황의 권력이 극적으로 이양되는 것을 보면서 리비우스의 ‘로마사’를 또 다시 읽는다.
정권이 바뀌어 ‘날개꺾기’라는 모진 고문을 당할 때도 ‘조국에 대한 나의 충성은 나의 가난이 증명하고도 남는다’라고 ‘소크라테스의 변명’의 한 구절을 멋지게 패러디하고, 키케로의 ‘의무론’을 뒤집어 읽어 ‘군주론에 ‘사자의 힘과 여우의 지혜’를 군주에게 제시하고 있다. 오랜 독서와 15년간의 정치경험이 ‘군주론’, ‘로마사 논고’, ‘전쟁술’을 쓰게 한다.
특히 ‘군주론’은 새로운 정권을 잡은 메디치 가문(家門)에게 자신을 다시 불러 달라는 일종의 취업 포트폴리오라 할 수 있다. 나를 불러주면 당신을 훌륭한 군주로 만들어 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메디치가문이 그를 불러주지 않자 그는 ‘만드라골라’, ‘클리지아’라는 코메디를 써서 메디치가에 저항하는 방법을 ‘웃음’에서 찾아내고 있다.
가난과 절망에 속에서도 마키아벨리는 웃음을 읽지 않으며 인생 말년에 쓴 ‘참회권유’라는 짧은 글에서 세상살이가 ‘한바탕 짧은 꿈’과 같다는 페트라르카의 시(詩)를 인용한다. 이것은 독서와 파란만장한 공직을 통해 삶을 달관한 고승(高僧)의 경지라 할만하다. 단순한 권모술수의 대가가 아니라 약자들의 대변인, 고전을 통해 삶의 지혜를 터득한 인문주의자로 그를 끌어 않는다면 그에 대한 지나친 애정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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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산 2013-07-15 04:51:23
마키아벨리는 정치철학자라고 평가될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정치학도들이 연구 대상으로 하는 듯합니다. 학자할 수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마 선생 정도에서 더 이상 진도를 나가기가 어려운 듯합니다. 더 나갈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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