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매배를 꿈꾸며
상태바
보라매배를 꿈꾸며
  • 구재기 시인
  • 승인 2014.02.06 14: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구재기 시인과 함께하는 시로 찾는 ‘너른 고을 홍성’ <31>

 

 

 

 

 

때로는
높은 봉우리에
날아오를 수 없을까
때로는 바다 깊이에까지
잠길 수 없을까

타성에서 벗어나서
늘 마주하는 것들이나
하루 몇 번씩 부딪치는 일
먼 데서나 밖에서 찾지 말고
안에서 찾을 수 없을까

바다 한가운데
비둘기 한 마리를 띄워
한 눈 팔지 않고 깨어 있으면
내 서 있는 곳
바로 찾을 수 있는 것

바람의 방향에 따라
발걸음을 하는 동안에
안에서는 밖을 보고
밖에서는 안을 볼 수 없는
내 두 눈을 밝게 할 수 없을까 
조선 후기의 무신인 자천 전운상(紫泉 田雲祥, 1694∼1760)은 홍주위 영장(營將) 전시원의 아들로 자는 용백(龍伯), 호는 자천(紫泉)이다. 숙종 갑술년 3월 23일에 출생하였는데 용모가 출중하고 문무를 겸한 인재로서 정유년에 무과에 급제하여 경자년에 선전관이 되었다. 얼마 후 판관에서 훈련어영천총부총관금위중군, 금위별장 등 여러 직을 역임하고 춘천, 남양, 회령, 평양, 전라좌수사, 경상좌도병사, 삼도풍어사 등 여러 곳에서 봉직하였다. 임지에서 봉직하고 있을 때 농사에 각별한 관심이 있어 뽕나무 심기를 권장하였으며, 흉년이 들자 비축미를 털어 구휼하여 조정에서 새서(璽書)를 내려 표창하였고 말을 하사하기도 하였으며, 춘천에서 있을 때는 보삼고(補參庫)란 제도에 의해서 매년 나라에 조공하던 인삼 때문에 백성이 곤란을 겪고 있자 이를 면해주기도 하였다. 춘천은 관동의 요새라 연무청을 설립하여 무사를 훈련시켰고, 좌수영에 있을 때는 ‘해골선’이란 병선을 창안하여 건조하였다. 이 해골선은 조선 해군의 돌격 전투함이었던 이순신의 거북선(龜船)보다도 150년 뒤에 만들어진, 1740년(영조 16 년)에 당시 전라 좌수사였던 전운상이 제작한 특수 군선이다. 임진왜란 때 많이 활용하였던 조선 기본 전투함인 판옥선(板屋船)은 몸체가 크고 둔하여 풍랑을 만나면 침몰하기 쉬운 결점이 있었는데, 이러한 결점을 보완하기 위한 전라좌수사 전 운상이 중국 당나라 병선인‘무경 절요(武經節要)’를 참조하여 이 해골선을 만들었던 것이다. 1995.10.07. 충청남도유형문화재 제147호로 지정된 전운상영정(田雲祥影幀)은 비단 바탕에 채색하여 그린 선생의 초상화는 감색 조복을 입고 의자에 앉아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전신좌상으로, 그 크기가 가로 88.0㎝, 세로 136.5㎝에 이른다. <칼럼위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