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통과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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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통과 인생
  • 정규준 <한국수필문학진흥회이사·주민기자>
  • 승인 2016.04.07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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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성 씨와 기백 씨는 나와 같이 노동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다. 일터의 주인들은 인부들이 말이나 노새처럼 보이는 모양이다. 하루 품값을 빼내려고 끊임없이 채찍질을 한다. 하루  동안 기운을 잘 나눠 써야 하는 인부들은 체력조절에 어려움을 겪는다. 

칠성 씨는 늘 페이스 조절에 실패한다. 오후 세시쯤 되면 몸을 가누기 힘들어지고 저녁이면 녹초가 되고 만다. 그는 생활도 불규칙하고 몸 관리도 엉망이다. 일당을 받으면 며칠간 술에 절어 살다가 돈이 떨어지면 다시 일터에 나온다. 결혼도 하지 못한 채 월세방에서 혼자 산다. 그런 그에게서는 인생에 대한 원망과 자책감에 막걸리와 땀 냄새까지 절어 심한 악취가 난다.  

반면에 기백 씨는 힘을 분배하여 하루를 보내는 방법을 안다. 채찍질에 면역이 된 말처럼, 서두르지 않고 페이스를 일정하게 유지한다. 그는 일하면서 콧노래를 부르고, 중간 중간 지르박을 추기도 한다. 힘들어지는 몸과 마음을 일으켜 세우려는 방편으로 보인다. 노래에 맞춰 흐느적거리는 모양새가 물결에 몸을 맡긴 수초와 같다.

기백 씨의 취미는 악기연주라 한다. 처음에 막노동이 너무 힘이 들어 저녁에 집에 가서 하모니카를 불면서 피곤을 풀었다. 그것이 취미가 되어 색소폰, 전자오르간 등을 연주하게 되었다.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다 보면 어느새 피곤은 사라지고 흥겨움에 몸을 맡기게 된다. 그 신명을 현장으로 옮겨와 노동의 에너지로 삼는다고. 어려운 시기도 있었지만 지금은 집도 마련하고 가족과 함께 전원생활을 즐기며 살고 있단다.

노동 현장 인부들의 근육을 보면 인생의 파노라마를 보는 것 같아 흥미롭다. 인부들의 근육의 발달 상태는 현장 적응도 및 마음의 자세와 대체적으로 무관치 않아 보인다. 기백 씨가 팔을 굽혀 알통을 보여준다. 달걀 하나 들어 있음직한 모양새다. 굵은 힘줄이 용트림하듯 알통을 가로지른다. 반면 칠성 씨는 알통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애기 무덤을 보는 듯 애잔하기만 하다. 간간이 일을 하기에 알통이 생길 듯 하다가 사라지고 만다. 늘 불만 섞인 표정으로 일하는 칠성 씨의 알통은 그의 마음과 더불어 성장을 멈추어 버린 것만 같다.

기백 씨의 알통은 하늘로 비상하려는 용처럼 의기충천해 보인다. 그러면서도 뭉근히 달여 온 삶의 인내와 극복의 투혼이 느껴진다. 노동의 강도와 육체의 적응력과 마음의 흐름을 리드미컬하게 래프팅 하여 얻어진 결과 아닐까. 아마도 역경을 이겨내고 절망에 단련을 받으며 무르던 근육이 바위처럼 단단해졌을 것이다. 반면에 칠성 씨의 무너진 근육은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삶의 바람에 어떻게 대처했느냐에 따라 인생의 모습이 달라지는 것 같다.  바람 앞에 쓰러져 형체도 없이 풀어진 근육이 될 것인가, 바람을 타고 올라가 든든하고 보암직한 알통이 될 것인가는 각자의 마음가짐에 달려있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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