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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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종주
  • 조남민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16.06.30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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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종주라 함은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의 능선길이 25.5km를 지나는 산행을 말한다.
구례 화엄사에서 진주 대원사까지 가는 이른바 ‘화대종주(46km)’, 산청 덕산에서 남원 인월에 이르는 ‘태극종주(90km)’도 이 코스를 통과하지만, 대부분의 종주는 성삼재에서 중산리에 이르는 구간으로 진행된다.
지리산은 3개 도(전남 전북 경남)와 5개 시·군(남원 구례 하동 산청 함양)에 걸쳐있는 거대한 산악군(群)으로, 1500m가 넘는 봉우리가 20여개에 이르는 크고도 넓은 산이다. 금강산, 한라산과 더불어 예로부터 삼신산의 하나로 여겨져 신령스런 기운을 갖고 있다고 믿어지는 곳이기에 적지 않은 도인 기인들이 오늘날에도 지리산 자락에 은거하고 있다.
지리산 종주산행은 대부분 노고단에서 시작한다. 노고단 초입에서 울창한 능선으로 들어가면 어쩐지 선경(仙境)에 드는 기분이 난다.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빼곡히 우거진 나무사이로 완만하게 이어지는 부드러운 길은 마치 어머니의 품속같이 포근한 느낌이 든다.
30도가 넘나드는 한여름의 폭염도 이곳에선 남의 나라 이야기다. 높은 산에서만 만날 수 있는 신선하고 상쾌한 바람이 온 몸을 휘감아 주기에, 바위에 올라 잠시 숨을 고르다 보면 흐르던 땀이 금세 마르곤 한다. 여느 고산 능선 길에는 없는 식수원이 풍부하여 산행 내내 목을 축일 수 있는 것도 지리산이 갖고 있는 커다란 매력중의 하나이다. 비가 엄청나게 쏟아지던 날에도 이 길을 걸어본 적이 있는데, 울창한 나무 덕분에 대피소에 이르는 동안 거의 젖지 않아 신기하기도 했다.
지리산 종주를 하루 만에 끝내는 사람들도 있지만, 1박2일 또는 2박3일로 준비하여야 무리가 없다. 지리산 종주 길에는 하룻밤을 묵어갈 수 있는 시설이 곳곳에 마련되어 있다. 예전에는 산장으로 불렸는데 지금은 ‘대피소’라고 하며 인터넷으로 미리 예약해야만 이용할 수 있다.
장터목 부근에서 텐트치고 자던 때를 기억한다면 많이 곤란하다. 야영 및 텐트이용은 무조건 금지되어 있다. 삼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천왕봉 일출은 일 년에 보름 남짓이긴 하지만 통계를 잘 살펴서 날짜를 잡으면 한 번에 성공할 수도 있다.
열 번 넘게 천왕봉에 다녔지만 일출구경은 겨우 두 번이고, 비 맞은 게 절반이나 되다보니 일출산행이 심드렁해진 나 같은 사람들도 제법 있을 것이다.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라는 정상 표지석을 뒤로하고 탁 트인 사방을 둘러보면, 지리산에 기대어 살아온 수많은 민초들의 삶이 떠오르고, 나라의 흥망과 세월의 부침속에 도피처가 되었던 가슴 아픈 역사의 골짜기도 눈에 들어온다.
설악산에서 볼 수 있는 남성적인 날카로움이나 호화로운 바위군상은 없어도 좋다.
백두대간의 시발점으로서 느껴지는 장엄한 분위기나 눈길 닿는 곳마다 펼쳐지는 호연지기의 파노라마는 왜 지리산이 국립공원 제1호가 됐는지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일상을 탈출하여 새로운 에너지를 얻어가려는 단순한 의도도 있지만, 천왕봉 정상에서만 부는 가슴시린 바람을 맞으러 가는 것이 지리산 종주를 떠나는 진짜 이유다.

<이 보도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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