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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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 기도
  • 전만성(화가, 갈산고등학교 교사)
  • 승인 2009.09.25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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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전만성의 길따라 마음따라]
▲ 개망초(유화 80X60)

얼마 전까지만 해도 버스나 택시를 타면 운전기사 머리 위에 '기도하는 소녀' 그림이 매달려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기도하는 소녀보다 풍경이나 가족 사진, 연인의 얼굴, 신앙을 상징하는 성물을 지니고 있는 것을 더 자주 보게 된다. 절대적 힘에 대한 간구보다 사랑하고 좋아하는 대상을 생각하는 것이 그들의 행복일 거라고 나름 짐작해 본다. 

기도하는 소녀 그림은 오랫동안 우리들 서민의 사랑을 받아 왔다. 금발의 어린 소녀가 빛이 들어오는 쪽을 향하여 무릎을 꿇고 앉아 기도하고 있는 그림이다. 나중에는 '오늘도 무사히' 라는 문구가 삽입된 것도 있었지만 상상을 제한하는 것 같아 그림만 있는 것보다 못하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기도하는 소녀 그림을 걸어 놓은 사람이 운전자의 아내이거나 딸일 거라고 믿고 있었다. 그들만큼 가장의 무사귀환을 간절히 바라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생각해 보라. 오로지 가장 한 사람의 어깨에 매달려 살아야 했던 지난날 우리들의 애틋했던 마음을. 버스가 커브를 돌 때 마구 흔들리던 '기도 상'을 보며 누군들 그 위험이 무사히 지나가 주기를 기도하지 않았던가. 그것은 그 시대를 산 우리들 모두의 따듯한 마음이기도 했다. 

얼마 전에 지인의 집에 갔다가 식탁 위에 걸려 있는 작은 액자 하나를 보게 되었다. 액자 속에는 머리가 하얀 노인이 빵 한 덩이를 앞에 놓고 기도를 올리고 있는 그림이 있었다. 깊고도 고요한 노인의 기도에 빨려들 듯 나는 그 그림을 탐냈다. 

"저 기도 하는 그림, 참 좋네요."
"이사 올 때 선물 받은 거예요." 

길을 가다가 '기도하는 노인'이 생각나 그런 것이 있을 만한 가게에 찾아들어 간 적이 있다. "아! 예, 빵 기도요!" 하더니 가게 주인이 냉큼 종이 한 장을 집어 주었다. 작은 엽서 한 장이었는데 그와 같은 그림들은 그 가게에 수도 없이 많았다. 평범한 엽서 한 장이 그 때에는 그렇게 깊은 감명을 주었던 것이다. 

여럿이 밥을 먹는 자리에서도 빠트리지 않고 성호를 긋고 기도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매 끼니마다 하는 몸에 밴 행동일 터인데도 볼 때마다 신선하고 경건해 보인다. 그들의 행복의 비밀이 그 기도 속에 있는 것 같아 나도 해보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 비밀은 아마도 빵 한 덩어리를 앞에 놓고 기도하는 노인처럼 검박한 생활과 감사, 그리고 평화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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