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 근대역사문화유산, 역사문화가 숨쉬는 시간여행
상태바
강경 근대역사문화유산, 역사문화가 숨쉬는 시간여행
  • 취재=한기원·백벼리 기자
  • 승인 2022.06.04 08: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라지는 원도심 근대문화유산 어떻게 보존·관리할까 〈6〉
강경역사관(옛 한일은행 강경지점) 전경.

논산 강경, 과거의 역사문화 흔적과 쉽게 만날 수 있는 곳
1870년대 강경시장 점포 900개, 평양·대구와 조선3대시장
1970년대 상주인구 3만명, 유동인구 하루 10만 명에 달해
옛 한일은행강경지점, 강경의 번성했던 근대역사문화 상징

 

충남 논산의 강경, 강경경제의 중심이었던 강경시장은 평양시장, 대구 서문시장과 함께 조선 시대 전국의 3대 시장으로 꼽히던 곳이다. 세월이 지나면서 강경은 옛 영화를 찾아보기 힘든 도시로 쇠락했지만, 강경시가지를 한두 시간 정도만 자박자박 걷다 보면 곳곳에서 과거의 역사문화 흔적과 쉽게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살았던 적산가옥이 곳곳에 남아 있어 금방이라도 100여 년 전의 세월 속으로 돌아간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강경은 이러한 골목과 거리를 근대역사문화의 거리로 지정해 건물들의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다. 현재의 필요성에 따른 개발도 병행하면서 과거의 번성했던 옛 상업 도시였던 강경의 모습을 재건하는 데도 힘쓰고 있다.

강경이 조선시대 3대 시장과 포구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던 배경에는 금강에 있었다. 금강이 휘감아 도는 강경은 강과 바다를 연결하는 수상 교통이 발달해 조선 시대에 평양, 대구와 함께 다양한 지역의 산물들이 거래되는 조선의 3대 시장이었다. 사람들의 왕래가 잦았던 만큼 돈이 많이 돌았고, 그런 풍요 속에서 근대문화가 꽃을 피울 수 있었다. 

강경은 현재 4200여 세대, 인구 8000여 명에 불과한 소읍이지만 조선 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서해의 수산물과 호남지역의 곡물, 포목거래와 중국 상선이 드나들던 충청서부지역의 대표적 무역항이었다. 1870년 무렵 강경시장의 점포 수는 900여 개에 달했고, 1970년대까지만 해도 상주인구 3만 명에 유동인구가 하루 10만 명에 달했다고 전해진다.

금강 하류 지역이지만 수심이 깊어 제법 큰 고깃배와 상선이 오갔으며, 충청내륙과 호남지방까지 넓은 시장을 배후에 뒀던 덕분에, 지역의 산물이 강경으로 몰렸던 까닭에 하루 100여 척의 선박이 강경을 오갔다고 한다. 

1871년 신미양요 이후 강경은 서해와 중국의 소금을 전국에 공급하면서 더욱 번성했으며, 수백 명의 직원을 데리고 소금을 공급하던 객주들은 대금업과 수산물 도매로 막대한 자본을 형성했다. 인근 군산항 개항으로 수입 화물의 80%가 강경시장을 통해 나가면서 수산물, 곡물, 공산품 등을 아우르는 국제중개항의 역할을 했던 항구다.
 

옛 강경 연수당 건재약방.

■ 근대역사문화유산, 옛 영화의 흔적 찾을 수 있어
강경의 근대문화유산을 볼 수 있는 근대역사문화의 거리, 유교문화의 길, 성지순례 길, 상업문화 길 등으로 잘 나눠 보존되고 또 개발되고 있다. 강경은 조선 시대부터 200여 년간 우리나라 무역의 중심지였다. 서해와 금강의 넉넉한 물길을 따라 강경포구에 이르러 활발한 장마당이 펼쳐지던 100년 전의 풍요한 시절이 있었다. 그 무렵 일본인들이 들어와 자리를 잡기 시작했고, 학교와 관공서, 은행, 교회 등이 들어서면서 강경은 도시 발전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됐다. 당시 도시의 중심 상권을 본정통이라 했던 거리에 남겨진 역사문화유산은 지금에 와서도 말 그대로 근대역사문화유산이 됐다. 옛 영화의 흔적은 강경읍에 남은 근대건축물에서 찾을 수 있다. 

옛 강경노동조합(등록문화재 323호), 옛 한일은행 강경지점(등록문화재 324호), 강경 옛 연수당 건재약방(등록문화재 10호), 강경 중앙초등학교 강당(등록문화재 60호) 등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문화재가 10곳이나 있다. 옛 강경노동조합은 강경 상권의 흥망성쇠를 엿볼 수 있는 상징적인 건물로 꼽힌다. 당시 2층 구조였으나 현재 1층만 남아 강경역사문화안내소로 사용되고 있다. 이 건물은 부두노동조합 사무실로 쓰이던 공간이다. 1925년 지어진 2층 건물로 지난 2009년 일부 무너진 곳을 복원했다는 설명이다. 옛 한일은행 강경지점은 강경역사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전엔 동양척식주식회사와 함께 수탈의 첨병 역할을 하던 조선식산은행 강경지점이 있던 곳이다. 1905년 지어진 서양식 벽돌 건축물은 3층 높이를 하고 있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단층 짜리 건물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강경 옛 연수당 건재약방은 1920년대 사진 속 풍경 중 유일하게 현존하는 건물이고, 1937년에 지은 강경 중앙초등학교 강당은 전형적인 근대 학교의 강당 건축의 실체를 보여 주고 있다. 강경의 근대문화유산코스의 출발점은 옛 강경노동조합에서 시작된다. 1920년대에는 영향력 있던 조직체였지만 지금은 강경역사문화안내소란 간판을 달고 강경의 역사문화유산을 안내하는 기능과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곳에서 골목과 도로를 따라 이어지는 강경의 근대역사문화유산은 강경상업고를 시작으로 1937년 준공된 중앙초등학교 강당과 스승의 날 발원지라고 하는 강경여자중·고등학교가 길 양쪽으로 마주 보고 있다. 골목과 거리 곳곳에는 옛 사진에서나 보았던 듯한 1930년대 정도의 모습으로, 퇴색된 근대문화의 흔적이 이어진다. 

강경읍 계백로에 위치한 붉은 건물의 한일은행 강경지점은 강경의 번성했던 근대문화를 상징한다. 지금은 강경역사관으로 이용되는데, 들어가 보면 복층처럼 낮은 위층까지 전시관으로 강경의 옛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해 놓았다. 특히 당시 사용됐던 묵직한 은행 금고도 볼 수 있다. 건물 뒤편으로 새롭게 조성된 일제강점기의 강경구락부는 마치 시대극의 드라마 세트장을 보는 듯하다. 

강경의 근대역사와 문화는 골목골목에도 켜켜이 묻어 있다. 골목길 끄트머리 어느 모퉁이에 반듯하고 정갈한 자태의 2층 주택이 눈에 들어온다. 강경 연수당 건재약방은 전통적인 한식 건축물이지만 1층과 2층 사이의 난간에 기와를 얹은 것이 전형적인 일본식이다. 오랜 세월을 안고 있는 약방 건물은 동네 골목의 오래된 주택이나 낡은 적산가옥들과 잘 어우러지는 모습이다. 길 초입의 강경공립상업고등학교 교장 관사는 뾰족한 기와지붕의 전형적인 일본식 건물인데, 이제는 폐가로 낡아서 아사코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한 케케묵은 옛 일본식 가옥이다.
 

옛 강경노동조합 건물.
옛 강경노동조합 건물.

■ 근대건축물에 강경의 역사 고스란히 남아
강경성당 주변으로 옛 한일은행 강경지점 등 근대문화유산들이 밀집돼 있다. 강경의 등록문화재는 대부분 읍의 중심부에서 반경 1㎞ 이내에 몰려 있다. 가장 널리 알려진 건물은 옛 한일은행 강경지점으로 빨간색 벽돌로 지어진 고풍스러운 건물이다. 일제강점기인 1905년 한호농공은행 강경지점으로 설립된 이후 조선식산은행 강경지점 등으로 쓰였다. 지금은 강경역사관으로 사용 중이다. 옛 금고 등 강경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강경의 근대역사문화 길은 강경천변의 상강경교, 강경공립상업고등학교 교장 관사, 스승의 날 발원지인 강경여자중고등학교, 강경중앙초등학교 강당, 옛 강경 연수당 건재약방, 대동전기상회, 옛 한일은행 강경지점(강경역사관), 강경구락부, 옛 강경노동조합(강경역사문화안내소), 강경갑문, 옛 식산은행 지점장 관사로 이어진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갑문인 강경갑문(등록문화재 601호), 아치 형태의 천장이 인상적인 강경성당(등록문화재 650호), 화교학교 교사와 사택(등록문화재 337호), 충남 최초의 수도시설이었던 강경정수장, 불 꺼진 황산포구의 옛 등대가 애처롭게 외롭다.

강경읍 주택가 외곽의 이면도로 한켠에 허물어진 두 개의 건물이 담쟁이 넝쿨에 휩싸여 있다. 오래전 미곡창고로 쓰였던 건물의 흔적이다. 창고 터의 직선 길이는 100m는 족히 넘어 보인다. 허물어진 벽 사이로 옛 건축기법이 그대로 보이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창고 건물이 옛터 위에 재생을 갈구하듯 외롭게 서 있다. 

번성했던 강경의 옛 모습, 날로 쇠락하고 있는 현재의 모습을 이보다 명확하게 대변하는 잔해는 또 없지 않을까. 해발 44m에 불과하지만 강경에서 가장 높다는 옥녀봉 아래로 금강이 곡선을 그리며 흐르고 있어 이곳이 강경포구였음을 일깨워 주며, 강경의 근대건축물이 존재하는 곡절의 이유를 알 수 있게 한다.
 

옛 미곡창고.
강경중앙초등학교.
강경중앙초등학교 강당.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