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의 문화재 재발견 기사 (10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대천 한내돌다리, 보령~남포 잇던 한양 길목 돌다리 옛 돌다리에서 역사문화적 가치를 찾다<1> 대천 한내돌다리, 보령~남포 잇던 한양 길목 돌다리 우리나라 최초의 교량은 413년 완성한 평양주대교, 위치는 미상현대의 교량, 인간 공동체 생명선의 의미를 갖게 돼 중요성 강조한내돌다리, 보령현에서 한양으로 통하는 교통요지 대천천 돌다리교량(橋梁)은 하천 계곡 또는 해협 등을 횡단하거나 도로를 연결할 때 그 통로를 위해 축조된 구조물이다. 그러나 교량은 물리적 축조물로서 연결통로지만 그 의미는 간단치가 않다. 작게 보아 교량은 지역 간 인적·물적 교류의 통로다. 여기에 우리 조상들은 또 다른 세계와 연결하는 이데아의 통로를 다리(교량)로 그려냈다. 교량에 대해 ‘경주(經註)’에서는 거마가 통행할 수 있는 다리를 교(橋)라하고, 사람이 많이 걸어 다닐 수 있는 다리를 량(粱)이라 했다. 인류 초기의 교량은 유랑인들이 이동하는 도중에 계곡 건너편 기획특집 | 취재=한기원 기자/사진·사료=김경미 기자 | 2019-06-23 09:06 강경미내다리, 조선시대 전라·충청도 잇는 중요 교통로 옛 돌다리에서 역사문화적 가치를 찾다<2> 강경미내다리, 조선시대 전라·충청도 잇는 중요 교통로 조선시대 충청도와 전라도를 연결하는 도로상에 놓였던 돌다리본래 평교(平橋)였던 것 3개의 홍예가 있는 돌다리로 다시 세워하천을 미하(渼河)라 부르면서 다리이름 미내다리(渼奈橋)라 불려“추석날 다리 일곱 번 왕래하면 행운이 온다” 인연·사랑의 가교강경미내다리는 논산시 채운면 삼거리 인근 강경천변에 설치돼 있다. 강경천 다리를 건너자마자 오른쪽 천변을 따라 1㎞쯤 올라가다 보면 뚝방 옆에 ‘미내다리’가 나온다. 이 미내다리는 조선시대 충청도와 전라도를 연결하는 도로상에 놓였던 돌다리이다. 미내다리는 길이 30m, 너비 2.8m, 높이 4.5m로 건설 당시 삼남 지역에서 제일 규모가 큰 다리였다고 전해진다. 3개의 홍예(虹霓)는 가운데가 크고 남북 쪽이 약간 작으며, 받침은 긴 장대석으로 쌓고 기획특집 | 취재=한기원 기자/사진·사료=김경미 기자 | 2019-07-08 09:06 면천 ‘군자정 돌다리’ 고려시대 축조 문화유산 가치 높다 옛 돌다리에서 역사문화적 가치를 찾다<3> 면천 ‘군자정 돌다리’ 고려시대 축조 문화유산 가치 높다 군자정돌다리 길이 7.4m, 폭 65cm 고려시대 축조, 문화유산 가치 높아1803년 축조된 원래 모습 그대로 유지, 문화유산 가치 있는 옛 돌다리1994년 1억 7000만 원을 투입해 팔각정으로 다시 지어 현재에 이르러“강희 기원후 기해년에 복지견의 후손 복지구가 다시 세웠다”중수 기록당진시 면천면에 있는 ‘군자정(君子亭)’은 당진시 향토유적 제1호다. 선비들이 머물러 풍류를 즐기고 시를 읊었던 곳이다. 면천면 성상리 성안에 있는 군자정은 지금은 폐교된 면천초등학교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지금의 정자는 1994년에 다시 지은 것으로 군자정이 있던 군자지(君子池)는 옛 면천초등학교 동편 은행나무 밑으로 추정되고 있지만 창건된 시기는 명확하지 않다.고려시대 지주사였던 곽충룡 군수가 객 기획특집 | 취재=한기원 기자/사진·사료=김경미 기자 | 2019-08-07 09:04 푸른 빛깔의 돌다리, 600년 역사의 비인 청석교 돌다리 옛 돌다리에서 역사문화적 가치를 찾다<4> 푸른 빛깔의 돌다리, 600년 역사의 비인 청석교 돌다리 비인지역, 해안변을 끼고 있어 오래전부터 왜적의 침입이 빈번청석교 돌다리, 길이 460㎝ 너비 160㎝의 상판만 냇가에 남아지정문화재로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문화재지정 포함 관리 필요서천군청, 청석교 돌다리 알리는 안내간판도 설치해 놓지 않아서천군 비인면은 조선시대 비인현이 있던 유서 깊은 고을이다. 그런 까닭으로 비인지역은 선사시대부터 인류가 정착하고 생활하였음을 입증하는 유적 등이 남아 있다. 서면, 비인, 종천지역은 특히 고인돌 등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대표적인 문화재가 흔히 비인오층석탑으로 불리는 ‘서천 성북리 오층석탑’(보물)이다. 부여 정림사터 오층석탑을 닮은 아름다운 고려시대 석탑이다. 비인읍성 성곽도 일부지만 남아 있다. 왜구를 막기 위해 쌓았던 고려시대의 토성을 조선 세종 기획특집 | 취재=한기원 기자/사진·자료=김경미 기자 | 2019-08-13 09:08 우리나라 최초 인공연못 부여 궁남지의 ‘궁남지 다리’ 옛 돌다리에서 역사문화적 가치를 찾다(5) 우리나라 최초 인공연못 부여 궁남지의 ‘궁남지 다리’ 궁남지는 부여 남쪽에 위치한 백제 별궁연못, 백제 무왕 때 만들어궁남지 섬에는 정자가 있고, 정자 가기 위해 돌기둥에 목조다리 놔궁남지 다리, 돌기둥 세우고 상판·난간 나무로 만든 아름다운 다리부여는 백제의 마지막 수도 ‘사비도성’ 있던 곳, 궁원지 유적 남아부여 ‘궁남지(宮南池)’는 현존하는 우리나라 연못 가운데 최초의 인공연못이다. 삼국사기에는 무왕 35년(634년)조에 “3월에는 궁 남쪽에 못을 파고 20여 리나 먼 곳에서 물을 끌어들여 못 언덕에는 수양버들을 심고 못 가운데는 섬을 만들었는데, 방장선산을 모방하였다”는 내용이 기획특집 | 취재=한기원 기자/사진·사료=김경미 기자 | 2019-08-14 15:17 논산 석성 수탕석교, 고려 말∼조선 초의 전통양식 옛 돌다리에서 역사문화적 가치를 찾다<6> 논산 석성 수탕석교, 고려 말∼조선 초의 전통양식 수탕석교, 미내다리·원목다리와 우리나라 전통적 돌다리 양식논산과 부여의 경계, 성동 뜰을 흐르는 석성천 가로질러 놓여‘영조 16년(1740)에 다리를 고쳐 세웠다’는 중수비(重修碑) 발견우리나라 석교연구에 중요한 학술적 연구자료 평가되고 있어충남 논산에는 3개의 유명한 돌다리가 있다. 조선시대 충청도와 전라도를 연결했던 미내다리, 은진과 강경을 연결한 원목다리, 그리고 부여의 석성과 논산의 은진을 잇는 다리로 넓은 성동 뜰로 농사일을 나가는 마을 사람들을 위해 축조된 수탕석교(水湯石橋,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83호)가 그것이다. 미내다리와 원목다리는 미적으로 완성도가 높고 접근성도 좋아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가 됐지만 수탕석교는 논산 사람 중에도 모르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한다. 수탕석 기획특집 | 취재=한기원 기자/사진·사료=김경미 기자 | 2019-08-26 09:04 ‘만인에게 덕을 끼친다’는 부여 홍산 만덕교 돌다리 옛 돌다리에서 역사문화적 가치를 찾다<7> ‘만인에게 덕을 끼친다’는 부여 홍산 만덕교 돌다리 만덕교돌다리, 부여나 내산에서 홍산현 관아로 통하는 길목에 위치해향토유적 제54호, 부여 홍산 북촌리 428 홍산배수장에 자리하고 있어첨지 서덕해가 돌다리를 만들었다고 하나 정확한 시기 알려지지 않아만덕교비 입비시기 숙종 7년(1681)으로 그 무렵 다리 놓였을 것 추정충남 부여군 홍산면 북촌리의 홍산객사 동쪽 200여m 지점인 홍산배수장에는 만덕교(萬德橋)라는 돌다리가 있다. 부여나 내산에서 홍산현 관아로 통하는 길목에 위치해 있다. 만덕교 돌다리가 있는 홍산 북촌리(北村里)는 홍산의 동·북쪽에 위치하며 고려말기에 침입해 온 왜구를 무찌르기 위해 최영 장군의 말굽소리가 요란했던 곳, 조선 선조 때 반란을 일으킨 이몽학의 말굽소리가 성급하게 뛰어다녔던 역사적인 태봉산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기획특집 | 취재=한기원 기자/사진·사료=김경미 기자 | 2019-09-09 09:06 면천군수 연암 박지원이 세운 건곤일초정과 돌다리 옛 돌다리에서 역사문화적 가치를 찾다<8> 면천군수 연암 박지원이 세운 건곤일초정과 돌다리 연암 박지원의 애민사상을 기리기 위해 정자 ‘건곤일초정’ 복원연꽃으로 가득한 골정지 연못에 초정(草亭)을 짓고 돌다리 놓아면천향교의 유생들이 자주 머물며 시를 읊고 학문을 익혔던 곳연암 박지원 1797년 면천군수 부임 골정지 정비 농업용수 사용당진 면천의 면천향교 앞 저수지에는 볏집으로 지붕을 올린 정자가 하나 있다. 연암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이 면천군수 시절 저수지 한 가운데에 축대를 쌓고 소박한 정자를 지었으며, 이름을 ‘건곤일초정(乾坤一艸亭)’이라 했다고 전해지는 정자다. 이 사실을 기려 지난 2006년 당진군에서는 1억6000만원의 예산을 들여 저수지 안에 현재의 정자를 짓고 돌다리를 놓아 지역 주민들과 관광객을 위한 민속자료로 사용하고 있다.조선시대 실학자로 기획특집 | 취재=한기원 기자/사진·사료=김경미 기자 | 2019-09-21 09:02 어찌 다리가 물위에만 놓이는 것이랴? ‘옥산가교비’ 옛 돌다리에서 역사문화적 가치를 찾다<9> 어찌 다리가 물위에만 놓이는 것이랴? ‘옥산가교비’ 최영 장군 왜구를 물리친 홍산대첩의 무대였던 구룡평야와 태봉산성도홍산현소재지 시장을 장악 보령에서 홍산으로 넘어오기 위해 다녔던 길보령 미산면 도홍리 한 사찰의 스님 이곳에 돌다리를 놓았다고 전해져옛 돌다리, 지금 보이는 것처럼 넓적바위 형상으로 보여 질 수도 있어충남 부여군의 서부에 위치한 홍산면은 면적 25.39㎢, 인구는 부여군 전체 6만7270명 가운데 1480명(2019년 7월 현재)이다. 면 소재지는 안서리이다. 본래 홍산군 지역으로 홍산읍내 서쪽 아래에 있으므로 하서면이라 해 가덕(加德)·차대(車垈)·내동(內洞) 등 12개리를 관할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상서면의 증암·석우 등 17개리와 남면의 일부를 병합해 옥녀봉의 이름을 따서 옥산면이라 하고 부여군에 편입됐다 기획특집 | 취재=한기원 기자/사진·사료=김경미 기자 | 2019-09-30 09:05 승려와 민간인이 공사비 모아 가설한 논산 원목다리 옛 돌다리에서 역사문화적 가치를 찾다<10> 승려와 민간인이 공사비 모아 가설한 논산 원목다리 고종 광무 4년 홍수로 파괴, 승려와 민간인이 공사비 모아 재 가설원목은 간이역원과 길목이 합쳐져 나그네의 휴게소·주막 이르는 말다리 규모 길이 16m, 폭 2.4m, 높이 2.8m로 3칸의 홍예로 돼있어성동면 원봉리 돌다리 1990년대까지 존재, 하천정비 하면서 사라져사람이 지구상에 나타나면서 먹을 것을 찾아다닐 때 앞에 개울을 만나면 어떻게 건넜을까. 쉽게 자를 수 없는 나무를 걸쳐두고 건너는 것보다 주변에 큰 돌이 있으면 이것을 얕은 곳으로 하나둘씩 놓아가며 개울을 건넜을 것으로 추정된다. 오늘날로 말하면 징검다리가 됐을 것이다. 가장 원시적인 다리 형태의 시작이 아니었을까. 지금도 얕은 개울을 건널 때면 물에 잠기지 않을 정도의 돌을 놓아 징검다리를 만들어 건너기도 하기 때문이다. 기획특집 | 취재=한기원 기자/사진·사료=김경미 기자 | 2019-10-12 09:03 처음처음1끝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