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이 낳은 세계적 화가 고암 이응노 기사 (9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그리기 수업 가장 좋아했던 한국‘화단의 거장’ 홍성이 낳은 세계적 화가 고암 이응노 <1> 총괄-고암의 생애 그리기 수업 가장 좋아했던 한국‘화단의 거장’ 그리기 수업 가장 좋아했던 한국‘화단의 거장’분단이데올로기에 희생된 불운의 화가, 한국화의 독창적인 재해석, 문자 추상, 서예적 추상. 홍성군 홍북면 중계리에서 태어나 프랑스, 독일 등 유럽 및 한국 화단의 거봉으로 우뚝 선 고암 이응노에게 붙는 수식이다. 올해는 고암 이응노가 탄생한지 110주년이 되는 해이다. 홍성군에 자리한 고암이응노생가기념관에서는 화백의 탄생 110주년을 맞이해 상설·특별전을 준비하는 등 고암 이응노 알리기에 주력하고 있다. 본보는 이에 맞춰 고암 이응노의 생애와 세계 화단에서 활약했던 그의 작품세계를 알리기 위한 기획취재 ‘홍성이 낳은 세계적 화가, 고암 이응노’를 8회에 걸쳐 연재한다. 홍북 중계리 출신 홍성초 다 기획특집 | 김혜동 기자 | 2014-06-09 10:41 힘든 시기 머물던 곳… 고암의 애틋한 사연 가득 홍성이 낳은 세계적 화가 고암 이응노 <2> 수덕여관과 선 미술관 힘든 시기 머물던 곳… 고암의 애틋한 사연 가득 힘든 시기 머물던 곳… 고암의 애틋한 사연 가득충남 예산군은 고암 이응노를 거론할 때 홍성, 대전과 더불어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홍성과는 지난 2000년대 후반 고암의 출생지를 놓고 법정공방을 벌이기도 했으나 고암이 6·25 전쟁 당시 피난을 내려와 있던 곳이 바로 예산이었으며 대전형무소 출소 이후에도 가족과 함께 머물던 수덕여관이 예산 수덕사에 위치해 있다. 고암의 첫 번째 부인인 박귀희 여사는 고암이 프랑스로 떠난 이후 50여년간 수덕여관을 지켰고 이후 수덕사는 수덕여관을 보존하자는 여론을 수렴해 복원, 바로 옆에 고암 이응노 화백의 작품과 예술세계를 재조명키 위한 ‘선 미술관’을 개관했다. 기획특집 | 김혜동 기자 | 2014-06-13 10:20 그림 그리며 생계 절실했던 고암, 간판집 사업도 홍성이 낳은 세계적 화가 고암 이응노 <3> 전주에서의 고암 그림 그리며 생계 절실했던 고암, 간판집 사업도 그림 그리며 생계 절실했던 고암, 간판집 사업도홍성을 떠나 서울서 그림 배우던 스무살 중반 홀연히 전주로개척사 간판집 사업 성공 거두며 10여년간 개인전등 작품 활동정신적 지주 효산 만나 시서화 배우며 지역 예술인들과 교류도 고암 이응노 화백의 행적과 관련해 가장 연구가 미진한 부분은 바로 전주에서의 족적일 것이다. 고향 홍성을 떠나 서울에서 당시 사설서화학원을 운영 중이었던 해강 김규진 밑에서 전통사군자를 배우던 고암은 그가 스무살 중반 무렵에 홀연히 전라북도 전주로 내려가 ‘개척사’라는 이름의 간판점의 문을 열었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고향집을 가출하다 시피 떠난 고암은 서울 스승의 집에 기거하며 그림을 배웠지만 기획특집 | 김혜동 기자 | 2014-06-20 11:03 고립됐던 달동네… 아기자기한 문화·예술 마을로 홍성이 낳은 세계적 화가 고암 이응노 <4> 고암예술마을, 부산 농촌마을서 배우다 고립됐던 달동네… 아기자기한 문화·예술 마을로 고립됐던 달동네… 아기자기한 문화·예술 마을로홍성군은 지난해 홍북면 중계리 고암이응노생가기념관을 예술마을로 조성키로 하고 올 초 공주대학교 산학협력단에 용역을 의뢰, 고암예술마을 조성의 기본 틀을 짰다. 고암예술마을은 주민들의 참여를 통한 농촌형 마을만들기를 기반으로 주민들의 삶 속에 자연스레 예술이 녹아드는 과정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일찌감치 지역재생사업이 추진됐던 부산광역시에는 농촌마을이 예술·문화 마을로 탈바꿈하며 조용한 시골마을에 새로운 활력이 일고 있는 곳들이 있어 소개한다. ○ 부산 대룡마을다양한 장르 기획특집 | 김혜동 기자 | 2014-06-26 13:57 파리로 간 이응노, 문자추상으로 세계를 놀래키다 홍성이 낳은 세계적 화가 고암 이응노 <5> 1961년 도불 파케티 화랑서 초대전 파리로 간 이응노, 문자추상으로 세계를 놀래키다 고암 이응노는 1989년, 프랑스 파리에서 실험과 도전의 연속이었던 이승에서의 삶을 내려놓았다. 그는 그리웠던 고국과 고향을 뒤로하고 자신의 육신을 파리의 ‘페르 라쉐즈’ 공동묘지에 맡겼다. 이응노는 국제적으로 제1·2차 세계대전이라는 혼돈의 시대와 국내적으로는 나라를 빼앗긴 민족으로서의 굴욕적인 일제식민지를 경험했고 여기에 더해 6·25까지 겪는 등 혼란의 시대를 살아온 예술가였다.또 간첩으로 오인 받아 옥고를 치르는 등 고국에서의 뼈아픈 세월은 예술가로서 고암이 어떻게 그림을 그릴 것인가 이전에 무엇을 그릴 것인가에 대한 실존적 고민으로 이어졌다. 개인을 넘어 시대적 아픔에 방황하던 이응노는 56세의 나이에 대담한 파리행을 시도했다. 다행이 그의 선택은 탁월했고 서양 기획특집 | 홍주일보 | 2014-07-07 15:27 파리 외곽에서 작품 활동 매진… 짙게 배인 예술혼 홍성이 낳은 세계적 화가 고암 이응노<6> 파리의 작은 골목이 이색문화공간으로… 파리 외곽에서 작품 활동 매진… 짙게 배인 예술혼 세르누쉬 박물관과 함께 프랑스 파리에서 고암 이응노 화백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들이 있다. 프레 생 제르베(pre st. gervais)의 아틀리에, 페르 라쉐즈 묘지가 그곳이다. 고암 아틀리에는 파리와 북동쪽으로 맞닿은 교외인 프레 생 제르베에 위치해 있다. ‘아틀리에’는 화가, 사진가, 건축가 등의 예술가들이 작업하는 공간을 일컫는 곳으로 당시 고암은 구두를 만들던 공방을 개조해 아틀리에로 사용했다고 전해진다.고암 아틀리에는 지하철 메리 데 릴라(Mairie des Lilas) 역 근처에 위치해 있다. 르 프레 생 제르베(Le Pre St Gervais)라는 지역의 상트 데 코르네트(Sente des Cornettes) 17번지다. 역에서 나와 몇 개의 큰길을 건 기획특집 | 홍주일보 | 2014-07-10 16:45 주민이 만든 관광명소… 프랑스 예술마을을 가다 홍성이 낳은 세계적 화가 고암 이응노 <7> 주민 참여·이해 바탕으로 관광명소 각광 주민이 만든 관광명소… 프랑스 예술마을을 가다 ◇지베르니지베르니(Giverny)는 파리 서쪽으로 75km 떨어져 있는 곳으로 우리에게는 모네의 정원(Monet's Garden)이 그곳에 있어 잘 알려져 있는 작은 마을이다. 인상파의 거장 모네는 젊은 시절 노르망디를 여행하다가 그 지역의 한 작은 마을 베르농에서 지조르로 가는 기차를 탔다가 우연히 지베르니라는 작은 마을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1883년 지베르니로 거처를 옮긴 후 모네는 이 마을의 사과나무 과수원과 그 옆의 분홍빛 벽의 예쁘장한 건물을 구입하게 된다. 그후 모네는 이 과수원에 온갖 꽃을 심어 꽃의 계곡으로 변모시키고 만다. 이후 1893년에는 과수원 늪지대를 새롭게 사들여 큰 연못을 파게 하고 연못 양쪽을 연결해 주는 둥글게 굽은 일본식 다 기획특집 | 김혜동 기자 | 2014-07-17 15:49 이응노기념관 활성화…지역문화예술 본거지로 키워야 홍성이 낳은 세계적 화가 고암 이응노 <8> 올해 탄생 110주년 특별전 등 행사 다양 이응노기념관 활성화…지역문화예술 본거지로 키워야 올해는 홍성이 낳은 세계적 화가, 고암 이응노가 태어난 지 110주년이 되는 해이다. 홍성군은 올해 고암과 만해 등 홍성이 배출한 위인들을 기리는 의미에서 ‘고암 탄생 110주년’, ‘만해 서거 70주년’, ‘홍주(홍성의 옛 지명)지명역사 1000년’ 등을 기념하는 ‘홍주 얼 계승운동’을 추진하고 있다. 2000년대 후반 일었던 홍성군과 예산군 사이의 출생지 논란이 종지부 된 후 홍성군은 고암의 생가지가 위치해있던 홍북면 중계리에 ‘고암이응노생가기념관’을 조성하고 본격적인 성역화 작업을 진행해 왔다.군은 특히 고암 탄생 110주년을 맞이해 이응노기념관 측에서는 고암의 유족들을 중심으로 관련 기록을 수집․정리하는 구술사 사업을 추진한다. 국내 유일한 고암 연구자로 최근 기획특집 | 김혜동 기자 | 2014-07-24 15:24 인터뷰 김학량 이응노생가 기념관 명예관장 홍성이 낳은 세계적 화가 고암 이응노 <8> 인터뷰 - “동양의 미학으로 서양의 논리를 다룬 화가, 고암” 인터뷰 김학량 이응노생가 기념관 명예관장 이응노생가기념관 김학량 명예관장은 지난해 고암 이응노의 작품세계를 두고 박사논문을 마무리 지었다 . 고암 이응노 연구와 관련 국내에서 독보적인 연구세계를 구축한 김학량 교수에게서 고암의 작품세계와 향후 이응노생가기념관의 발전방향에 대해 들어봤다.-고암은 어떤 화가였나 “고암은 몸을 한시도 가만히 두지 않는, 몹시 부지런한 사람이었다. 선배들의 얘기를 빌리자면 고암은 새벽부터 자기 직전까지 그림을 그리고, 만드는 일을 쉬지 않았다. 재료나 장르에 국한되지 않는 자유로운 창작활동을 했다. 쉼 없이 그림을 그리고 무엇이라도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그러한 행동들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몸으로 태어난 천상 예술가였다. 또 고암은 낯설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수월했던 사람이었다. 예술가들이 봐도 기획특집 | 김혜동 기자 | 2014-07-24 15:32 처음처음1끝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