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과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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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과 정치
  • 김상구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12.12.31 10:5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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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사회를 구성하여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사회적 동물이다. 인간의 욕망과 욕구가 사회에서 빈번하게 좌절될 때 그 사회는 병리적 징후를 드러낸다. 2012년 우리 사회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힐링이었다. 마음의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 잠시 발걸음을 멈추어 서서 마음의 치유를 찾아 나선 셈이다. 세상이 변할 기미를 보이지 않으니 차라리 내가 변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에서였다. SBS의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에 유명 인사들이 출연하여 마음에 숨겨 두었던 공황장애, 사업실패, 동료와의 불화, 우울증 등을 담담하게 털어 놓아 시청자들의 동감을 얻어냈다. 또한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달팽이가 느려도 늦지 않다』같은 스님의 책들은 지쳐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기도 했다.

우리사회는 왜 마음의 치유에 많은 관심을 드러냈을까? 자살률은 몇 년째 세계 1위를 달리고 있고,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적은 것일까? 2010년 한 해 동안 정신질환으로 인한 사회 경제적 비용이 국내 총생산(GDP)의 2.01%에 해당하는 23조원에 이른다고 삼성경제연구소는 추정했고, 2012년 12월 국민 행복지수는 세계 97위에 머무르고 있다. 먹고사는 일이 해결되면 행복감도 증가해야 할 텐데 그러하지 않은 것은 '이스털린의 역설 Easterlin's Paradox'(소득이 증가해도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되면 행복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내용)로 설명 될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우울하다고 느끼고 자살을 택하는 사회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 사회의 구조적 문제점을 발견하게 된다. 1997년 IMF이후 우리사회는 소위 신자유주의라는 무한 경쟁 시스템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의자 9개를 놓고 10명이 경쟁하여 1명을 탈락시키는 의자 놀이를 말한다. 이게임이 무한 반복될 때 의자는 1개만 남을 것이며 게임의 참가자는 모두 '루저, 잉여인간, 찌질이'로 추락하지 않을까 불안감에 휩싸인다. <나는 가수다>와 같은 프로그램에 참가한 가수는 탈락하지 않으려고 혼신의 힘을 다하고, 살아남는다 해도 1주일 뒤에는 원점에서 다시 게임을 시작해야한다. 이러한 시스템이 사회전반에 적용되어 무한 반복될 때 사회구성원은 충전과 방전을 반복하다 소진(burn-out)상태에 이를 것이고, 학자들은 이러한 사회를 '피로사회'(한병철, 독일 카를스루에 조형예술대학교수), '날 선 사회'라고 이름 붙인다.

신경질적이고 예민한 '날 선 사회'에서는 사회적 유대관계가 깨어지고 불안감이 높아진다. 고슴도치처럼 잔뜩 날 선 사람들은 서로를 자극하지 않으려고 거리두기를 시도하며,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 모르는 사태에 대비하기 위하여 CCTV를 여기저기 매달고 차량용 블랙박스를 구입한다. 말 한마디면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이 경찰서와 법정에서 시시비비가 가려진다. 까칠해진 성격은 이웃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가 단절되는 이러한 사회현상의 밑면에는 무한 경쟁이라는 사회 시스템이 자리 잡고 있다.

자본주의와 수정자본주의를 거쳐 지금에 이른 독점자본주의가 극대의 이윤을 추구할 수 있는 방법은 무한 경쟁밖에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런 신자유주의를 추구했던 나라들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고함소리가(미국의 맨하탄과 영국의 런던에서 발생한 시위) 사회 불만의 신호탄으로 쏘아 올려졌다. 기질의 차이인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차라리 내가 마음의 스위치를 내리고 마음 다스려 보자며 스스로 힐링을 찾아 나섰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했던가 경쟁도 지나치면 마음의 병을 낳고 그런 사회에서 사람들은 행복감을 느끼지 못한다. 지나친 경쟁으로 피로감이 누적된 사회는 생산성을 높이지도 못하고 창의성과 정의감마저 실종된다.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읽기에 쉽지 않은 책이 한국에서 베스트셀러에 오르자, 저자 마이클 샌달 교수도 깜짝 놀라는 모습이었다.

무한경쟁의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신자유주의』의 저자 데이비드 하비 교수는 신자유주의를 하나의 '정치적 프로젝트'였다고 주장하고, 이러한 경제체제를 이용한 독점자본가들의 극대 이윤추구를 '탈취에 의한 축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2008년 우리나라 자산의 50% 이상을 4대 재벌이 차지하고 있다. 돈이 돈을 낳는 돈 중심의 사회에서 사회가 재벌의 눈치를 보며 돌아간다. 이러한 경제 시스템을 막을 수 있는 길은 경제의 논리가 아니라 정치로 풀어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다보스 포럼의 창립자인 클라우스 슈바츠는 2012년 다보스 포럼에서 '자본주의 체제에서 사회통합이 빠졌다. 이제 자본주의 시스템을 개선할 때가 되었다. 철지난 자본주의 시스템이 우리를 위기로 내몰았다. 정비하지 않으면 위기를 극복하기 어렵다.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라고 승자독식의 무한 경쟁을 비판하고 있다. 독점자본가의 자아비판인 셈이다.

세계가 무한 경쟁의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는데 경제민주화, 재벌 규제를 외치는 것은 시장경제를 외면하는 일이라는 세력과, 성공의 열매를 균등하게 분배하기 위해서 골목 상권까지 탐욕을 드러내는 재벌을 규제해야 한다는 세력이 우리사회에 팽팽하다. 새로 출발하는 정부는 이 문제를 지혜롭게 풀어가야 상처 받은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정치적으로 치유하는 일이 될 것이다. 새 정권이 사회의 모든 문제를 댓바람에 해결할 수 없다. 모든 사람을 하루아침에 잘살게 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러나 착실한 경제민주화 정책을 통해, 부의 양극화 현상이 점차 해결되지 않는다면 많은 사람들은 마음에 더 큰 상처를 입고, 새 정권에 등을 돌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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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하늘 2013-01-08 07:38:07
마음을 잘 가다듬어서 스스로 힐링을 하고 싶습니다.
모든것들이 피곤하다고 생각이 되어지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이 삶
마음도 상대적 빈곤이 더욱더 심해지는것 같습니다.
정치도 말잔치가 아니기를 ...
2013년 올 한해도 좋은글과 살아있는 제목을 만나기를 확수기대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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