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낌없이 주는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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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낌없이 주는 나무
  • 김상구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13.05.05 22:56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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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학자 라캉은 『에크리』에서 '인간의 욕망은 타자(他者)의 욕망'이라는 말을 반복한다. 이것은 '나(我)'라고 하는 정체성(identity)이 나인 것 같지만 다른 사람의 욕망이 자리 잡아 내가 되었다는 것이다. 인간이 태어나기 전부터 존재해 온 삶의 세계를 엄마가 아이에게 전달해 주었기 때문이다. 말 못하는 아이는 엄마를 짝사랑하지만 이 사랑도 잠시, 아이는 말을 배우며 엄마를 떠나 '아버지의 세계'인 세상살이로 발걸음을 옮겨가야 한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겪으며, 다시는 그 세계로 되돌아 갈 수 없다. 그래서 질서의 세계인 '아버지라는 세계'(도덕, 질서, 관습의 세계)와 '어머니의 세계'(본능적 세계) 사이는 영원히 좁혀질 수 없는 커다란 간극이 존재한다. 어머니의 따뜻했던 가슴은 억압되어 무의식에 저장된다.

우리는 깜짝 놀랄 때 '엄마야!' 소리를 지른다. 위급할 때, 힘들 때, 나를 보호해주던 어머니(상징적 의미)의 품이 그립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한 인간이 태어나 죽을 때 까지 보이지 않는 탯줄로 연결된 존재이다. 직장에 다니는 엄마가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돌아오는 일은 엄마에게 일상이지만, 젖먹이 아이에게는 공포의 시간인지도 모른다. 프로이트가 18개월짜리 손자를 관찰한 'fort(저기)-da(여기)'놀이(엄마가 출퇴근하는 불안감을 실패에 실을 감았다 풀었다하며 불안을 해소하는 놀이)도 엄마가 없는 두려움의 극복 과정을 보여준다. 엄마의 부재(不在)는 아이에게 공포나 다름없다. 엄마는 아이가 올라가 그네도 타고, 숨바꼭질도하는 커다란 나무다.

우연한 기회에 쉘 실버스타인(Shel Silverstein)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The Giving Tree)를 다시 읽는다. 초등학교 2-3학년 즈음에 읽는 동화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옛날에 나무 한그루와 사랑하는 소년이 있었다. 소년은 주워 모은 나뭇잎으로 왕관을 만들어 쓰고, 숲속의 왕자 노릇을 한다. 그러나 소년은 나이가 들어 나무 곁을 떠나 한동안 나무에게로 돌아오지 않는다. 아이는 나무에 올라가 놀기에 너무 성장해 버렸기 때문이다. 소년은 나무에게 신나게 놀아야 하니 돈을 줄 수 없느냐고 묻자, 나무는 돈이 없으니 사과를 따다 시장에 팔아 쓰라고 한다. 소년은 나무위로 올라가 사과를 딴 후 멀리 가버린다. 그러나 오랜 세월 소년은 돌아오지 않고, 나무는 너무 슬프기만 하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년은 돌아와 기쁨에 넘쳐 나무에게 아내와 아이들이 있으니 집 살돈이, 여행 떠날 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소년은 나무를 잘라 배 한척을 만들어 먼 여행을 떠난다. 세월이 흘러 노인이 된 소년은 나무에게 돌아와 난 이제 이가 빠져 사과도 먹을 수 없고, 그네도 탈 수 없다고 말하자 나무는 안간힘을 다해 잘려나간 밑동을 내밀면서 "얘야, 이리 와서 앉으렴. 앉아서 쉬도록 해"라며 그래도 행복해 한다.

어릴 때 소년의 흔들림 없는 우주였고 언제나 올라가 쉴 수 있으리라 믿었던 '아낌없이 주는 나무'도 세월을 이기지 못한다. 그 무성했던 나뭇잎도 하나 둘 떨어지고 가지도 앙상해져 간다. 강렬했던 눈빛도, 목소리도 힘을 잃어간다. 나무열매와 가지와 줄기를 팔아 여행을 다녀온 소년처럼 우리는 나무 밑동에 걸터앉아 세월의 무상함에 젖어들기도 한다. 20세기 최고의 시인으로 칭송받는 예이츠(W.B . Yeats)는 「비잔티움 항행」(Sailing to Byzantium)에서 삶이, '서로 팔을 껴 앉고, 즐거워하고, 새들은 나무에서 노래 부르고, 산란기가 되면 연어는 폭포를 오르고, 고등어는 떼를 짓다가... 막대기에 누더기를 걸쳐놓은 허수아비같은 존재'로 변해가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말한다. 인생이 유한하니 예이츠는 영원함으로 떠나보자는 것이다.

그러나 삼라만상은 생성, 변화, 소멸의 과정을 거쳐 간다. 세상이 바뀌어도 이 과정은 무변(無變)할 것이다. 어릴 때 큰 나무였고 우주였던 부모님도 세월을 비켜가지 못한다. 나무의 왕자 노릇을 했던 소년은 귀밑머리에 하얀 서리가 내리고서야 허수아비같은 어머니의 종아리를 붙들고 지난 세월을 더듬는다. 저 멀리서 남치마를 입은 젊은 날의 엄마가 손짓하며 달려오시는 듯하다. 5월, 어버이날, 어머니가 계신 노인병원의 앞마당에는, 봄비에 젖은 꽃잎이 바람에 바르르 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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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중 2013-05-11 09:22:19
이 나이 먹도록 아직도 서슴없이 받기만 하는 나그네 같아 부모님께 민구하기만 합니다.읽고 나니 더욱 참괴합니다.많은 걸 느끼고 갑니다.감사!!!

서농 2013-05-08 09:53:52
글이 너무감동적이예요!!! 엄마가 보고싶네요......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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