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초점 안경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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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초점 안경의 비밀
  • 정규준 <한국수필문학진흥회이사·주민기자>
  • 승인 2016.03.10 14: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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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어 돋보기를 쓰다 보니 영 귀찮은 일이 아니다. 안경사의 편리하다는 권유로 다초점 안경을 쓰게 되었다. 안경 위쪽으로는 먼 곳을, 가운데는 중간 지점을, 가까운 곳을 볼 때는 아래쪽을 사용한다. 다초점 안경의 특징은 사물을 똑바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물체를 향하여 정면으로 몸을 돌려 초점을 맞춰야만 제대로 볼 수 있다.

다초점 안경을 쓰면 특히 계단을 오르내릴 때 조심해야 한다. 대충 짐작하고 발을 옮기다간 넘어지기 십상이다. 필자도 그렇게 계단을 내려오다가 넘어지는 바람에 발목을 접질려 고생한 적이 있다. 계단 모서리를 평면으로 착각하고 내딛었다가 발목이 꺾이면서 앞으로 고꾸라진 것이다. 살다보면 많은 사람을 만나고 인간관계라는 계단을 오르내리게 마련이다.

사람마다 개성이 다르니 사람의 수만큼 계단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성품이라는 계단에 초점을 맞추고 접근하지 않으면 관계가 삐끗하는 일이 생기곤 한다. 나는 사람을 대할 때 일의 상황이나 상대방의 감정보다는 주로 대의적 명분이나 도덕적 측면을 중시해 왔었다. 그러한 일률적인 잣대는 상대방의 입장이나 기분을 무시하게 되어 사람들이 상처를 받고 내 곁을 떠나도록 하는 계기가 되었다. 말 한마디로 원수가 되고 친구도 된다는 사소한 진리를 많은 실패를 경험한 뒤에 깨달은 것이다.

명분에 치우쳐 나라를 위기에 빠뜨린 예도 역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병자호란은 신흥강국인 청나라에 대한 탄력적인 외교를 버리고, 기울어가는 명나라와의 의리를 고집하다 불러들인 전란이었다. 이로 인해 국토는 피폐해지고 수많은 백성이 볼모로 끌려가는 참상을 겪었다. 현재 북핵문제에 따른 유엔의 제재 결정과 사드의 한반도 배치 문제로 열강의 힘겨루기가 심상치 않다. 위정자들의 유연하고도 슬기로운 처신이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본래 인간의 눈은 다초점 렌즈의 모든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수정체가 자동으로 조절되어 원근 거리의 다양한 상들을 선명하게 볼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삶의 문제들을 정확히 보지 못하고 상처를 주고받고 결별하기 일쑤다. 마음이란 것은 실패라는 거친 사포로 끊임없이 닦아야만 보이는 숨겨진 거울인 것일까. 산다는 것은 어쩌면 인생 중에 여러 갈래의 길이 있음을 깨닫고 그 다채로움을 받아들여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다초점 안경을 쓰게 된 이후로 내 판단보다는 타인의 입장과 감정을 먼저 헤아리는 버릇이 생겼다. 그렇게 상대방의 마음을 읽어주고 인정해주다보니 관계는 순조로워지고 일은 더 잘 처리되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다. 하나의 렌즈로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다초점 렌즈는 안경 발전의 혁명으로 간주된다 한다.
그래서인지 다초점 안경을 잘 쓰고 잘 활용하는 사람은 삶의 계단을 무리 없이 오르내리는 고수처럼 보인다. 능수능란하게 거리를 조정하며 인간관계를 가졌던 한 지인이 있었다. 그러면서도 결코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았던 그를 경외감으로 바라보았던 기억이 난다.

그는 지나온 생에서 업장의 소멸과정을 다 거친 듯, 이번 생에는 기쁨을 누리며 살도록 축복을 받고 태어난 사람처럼 보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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