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나 봄
상태바
봄이 오나 봄
  • 조남민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16.03.17 14: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봄 이기는 겨울 없다더니 드디어 봄이 오나 보다. 드디어 온 것인지 때가 되어 온 것인지는 몰라도 ‘산너머 조붓한 오솔길’과 ‘들너머 뽀얀 논밭’에도 봄이 찾아오는 것이 확연히 느껴진다. 역재방죽 뚝방에 피어난 손톱만한 보라색 봄까치꽃과 우체국 앞 홍성천에 있는 노란 산수유 꽃망울, 남산 초입의 작은 나뭇가지에서 움트는 파릇한 새 순에서는 더 이상 겨울 냄새가 나지 않는다.

대학촌 주변과 명동골목에는 우중충한 ‘등골 브레이커’나 ‘곱창 패딩’대신 컬러풀한 자켓과 짧은 치마차림의 청춘남녀가 자주 눈에 띈다. 봄은 여인의 옷차림에서부터 시작된다는 말이 쉽게 이해되는 풍경이다. 늦겨울의 시샘인 꽃샘추위도 견딜만한 정도의 추위만 몰고 오는 탓에 봄은 별다른 수고없이 춘삼월 달력의 한복판에 편안히 자리하며 온 천지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는 중이다. 

봄은 ‘보임’의 준말이다. 겨우내 꽁꽁 얼었던 들과 산에 따뜻한 기운이 퍼지면서 아지랑이가 모락 모락 피어오르는 모습이 보인다는 뜻으로 생겨난 말이다. 따뜻한 기운은 대지에 꽃을 피우고 나무에 물이 오르게 하며 지겹고 추웠던 겨울의 그림자를 말끔히 씻어낸다. 대부분의 농부는 이때부터 한 해의 농사를 준비해야 한다.

은하, 홍북의 딸기농가나 홍동 신동리 오누이 마을의 냉이재배농가는 이미 한겨울부터 부지런한 몸놀림을 시작했다. 남도 들녘에도 벌써 봄맞이 준비가 한창이다. 남도의 봄은 축제로부터 온다. 투명한 흰 강물위로 간지러운 봄바람이 넘실대는 섬진강변의 광양 다압마을에서는 3월 중순부터 시작되는 매화축제를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다. 강변에 가득 피어난 매화에서 선비의 품격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행복한 봄날의 기억이 될 것이다.

같은 시기에 펼쳐지는 구례 산동마을의 산수유 축제장에서는 지리산을 병풍삼아 마치 한 폭의 수채화를 보여주려는 듯 피어난 알싸하고 몽몽한 산수유를 원 없이 감상할 수 있다. 저 멀리 짙푸른 남해가 한눈에 들어오는 여수의 오동도에는 ‘눈물처럼 후두둑 진다’는 동백꽃 축제가 상춘객의 발걸음을 한동안 유혹한다. 4월은 역시 벚꽃과 유채꽃의 계절이다. 진해를 비롯한 전국 명소에서 다양한 벚꽃축제가 벌어지고, 제주와 청산도에서는 노오란 유채꽃과 파아란 바닷물이 가장 멋진 조화를 이루는 시기를 잡아 축제를 벌이고 있다. 고창의 광활한 청보리밭은 늦봄에 가장 가볼만한 곳으로써 놓치면 후회할 곳이다.

무얼 해도 좋고 아무것도 안해도 좋은 그런 날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화창한 봄날이다. 양지바른 담벼락에 기대 졸면서 내복 뒤집어 이나 잡고 있어도 좋지만, 두꺼운 겨울이불 박차고 나와 봄바람이 유혹하는 대로 길을 나서서 쌉싸름한 봄나물 반찬 한번 먹어보는 것도 즐겁고 행복한 일이다.  봄 볕 가득한 문 밖에 나서면,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이 왔지만 봄이 아닌 듯)이 아닌 춘수만사택(春水滿四澤 봄이 되니 사방 연못에 물이 가득하네)을 몸으로 느끼게 될 것이다.
이제 봄이다. 겨울을 털어내고 밖으로 나가보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