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면문제, 쉬쉬하지 말고 드러내서 책임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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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면문제, 쉬쉬하지 말고 드러내서 책임있게
  • 신은미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1.05.06 08: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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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좋아졌지. 석면환자들 나라에서 다 고쳐준다대?”
“그럼 뭘혀. 국가가 정해준 병원이 천안이라 버스 타고 다녀오자믄 하루도 모자란디”
“석면으로 병 얻은 거 다 옛날얘기여. 지금은 광산도 문 닫았잖여”
“지역경제 안 좋아지니까 석면 얘기는 꺼내지도 마슈”
“그래도 근처에서 큰 공사 하고 있으면 맘이 영 찜찜혀. 논밭 갈 때(경운)도 그렇고.”
“석면지도인가 뭔가도 있다고 하는데.. 우리같은 사람들이 뭘 아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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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면에 대해 홍성사람들이 하는 얘기다. 맞는 얘기도 있고 틀린 얘기도 있지만, 지역주민들은 다들 석면에 대해 조금씩은 알고 있다. 주변에 석면광산이 있었거나 거기서 일했던 사람이 있거나 그도 아니면 한다리 거쳐 석면질환자를 알고 있기 때문에 다른 지역보다 석면에 대한 관심이 높은 것이다.

환경연합 활동으로 홍성에 내려오기 전까지 나는 석면이 WHO가 정한 1군 발암물질로 건강에 매우 위험하다는 것밖에 모르고 있었다. 홍성에 살지 않았다면 ‘석면’이라는 것은 학교 석면건물 철거공사로밖에 접하지 못했을 것이다. 제품화된 석면이 위험하기 때문에 2009년부터 사용이 금지된 것만 알았지 특정지역에 암석과 광맥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관리에 신중을 기해야하는지도 몰랐다.

충남은 전국 최대 자연발생석면 분포지역으로 전국 38개 폐석면광산 중 25개소가 위치해있고, 석면피해구제법이 시행된 2011년부터 10년간 석면피해구제 인정자도 1902명으로 전국 5002명의 38%에 달한다. 충남 안에서도 홍성과 보령, 청양 등에 석면피해자가 몰려있고, 특히 홍성은 공식 인정된 석면질환자만 900여 명으로 가장 많다. 2014년 공개된 자연발생석면 광역지질도를 통해 충남지역에 석면이 집중적으로 분포한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됐고 이후 석면분포가 높은 지역을 대상으로 정밀지질도가 작성됐다. 정부는 2011년부터 석면피해구제법을 통해 석면질환을 인정하고 피해자를 발굴해 지원하기 시작했다. 석면슬레이트에 고기를 구워먹고 아이들이 석면조각을 장난감 삼아 가지고 놀던 게 불과 20여 년 전 일이다. 석면이 인체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에 비해 석면에 대한 올바른 정보 제공과 공론화, 대책 마련은 늦어도 너무 늦었다.

뒤늦게라도 석면피해구제법이 시행되고 석면제품이 금지된 것은 다행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법이 만들어지고 피해자들이 구제를 받는다고 석면문제가 다 해결된 것은 아니다. 석면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는다면 피해는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고, 석면질환이 최소 10년에서 최대 50년의 긴 잠복기를 거친다는 점을 고려하면 석면문제는 과거의 역사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한국일보 기사에 따르면 석면피해자 수가 최대치에 이르는 것은 2045년이다.

따라서 석면문제는 석면광산이 있었던 과거의 일이고, 피해를 겪었지만 어쩔 수 없던 일이며, 지금은 괜찮다고 생각할 일이 아니다. 석면문제를 들춰내면 지역 경제나 이미지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한다면 결국 이곳에 사는 주민이 가장 크고 직접적인 피해를 보게 된다.

우리 지역에 자연발생석면이 존재한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며, 제대로 관리되지 못했을 때 아프거나 죽는다는 것은 우리 이웃들이 증명하는 역사적 교훈이다. 석면이 어디 어떻게 존재하고 있으며 어떤 관리대책이 있는지 주민들은 알아야 한다. 홍성은 자연발생석면이 분포하는 지역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선도적으로 석면피해 예방에 앞장서고 안전대책을 마련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다른 지역보다 더 열심히 피해자를 발굴해 지원하고, 석면질환자들이 멀리 천안까지 검진을 받으러 가지 않도록 지역 내 검진센터 지정을 추진해야 한다. 대규모 개발사업이 진행될 때 석면문제를 1순위 고려사항으로 놓고, 가능하다면 석면슬레이트지붕도 단시간 내 집중적으로 철거해야 한다. 정기적으로 석면 관련한 대기질이나 토양을 모니터링 하고 정보를 공개해 주민들에게 알 권리를 제공해야 한다. 석면이 가장 많이 분포하지만, 주민이나 지역사회에 피해를 주는 석면은 없는 ‘석면안전도시’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런 차원에서 지난달 28일 ‘석면피해구제법 시행 10년, 성과와 문제점’ 토론회에서 논의된 ‘석면피해기록관’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자연발생석면이 가장 많이 분포하고 석면질환자가 가장 많은 홍성에서 더 이상의 석면피해는 없어야한다는 선언인 셈이다. 과거의 아픈 역사로서 기억해야할 필요도 있지만,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피해에 대한 능동적인 대응으로서 말이다. 일본 센난 석면기록관이 좋은 사례다. 센난지역은 100여 년 동안 석면방직산업이 존재해오던 곳인데 그곳의 노동자들이 석면에 노출되어 석면피해자들이 많이 발생했다. 센난에서는 일본정부의 안전관리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물어 국가를 상대로 피해자들이 소송을 했고 10년 후인 2015년 부분 승소했다. 센난에는 석면피해운동을 기록하기 위한 석면기록관이 만들어졌고 전세계적으로 석면피해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명소가 되었다.

‘무조건 위험하다’, ‘지역 망가지니 석면 얘긴 하지도 마라’ 이러한 불안감이나 위기감 조성으로 논의를 덮을 것이 아니라, 석면이 있어도 잘 관리되고 있고 주민들이 보호받을 수 있어 안전하다는 신뢰를 쌓을 일이다. 그러자면 석면 관련 정책도 정비되어야 하고 석면피해기록관 추진도 우리 지역에서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

석면피해자 5002명 중 1758명은 이미 사망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 유해 환경에 노출됐다는 이유로, 또 산업현장에서 일했다는 이유로 지금도 여전히 아파하고 죽어가는 사람이 있다. 석면문제를 무조건 쉬쉬할 게 아니라 한 사람이라도 살리고 더 이상의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자연발생석면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책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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