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날 새벽마다 난장판, "니들끼리 알아서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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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날 새벽마다 난장판, "니들끼리 알아서 해라?"
  • 최선경 기자
  • 승인 2011.04.01 10: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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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청 - 장옥상인 - 노점상 서로 입장 차이 좁히지 못해


지난 28일 20일 넘게 시장 안에 방치된 불법주차차량이 견인됐다. 마침 군청 경제과에서 공무원 몇이 나와 있었다. 수십 번 신고 된 민원을 처리하려고 나온 것인지 우연의 일치인지는 알 수 없었다.

지난 장날(26일)엔 도로 통행의 폭이 불과 1m도 안 됐다. 서로 부딪히고 좌판에 걸려 넘어지기 다반사였고, 물건을 실어 나르는 작은 수레조차 다니기 힘들었다. 심지어 복잡한 틈을 타서 소매치기도 급증한다는 소문이다.

같은 곳에서 함께 장사를 하며 반평생을 보낸 이웃들끼리 장날 새벽 네 시면 서로 싸우고 목청을 높이고 삿대질을 하며 험한 말이 오고 간 것이 벌써 한 달째다.



군수가 직접 나서서 정리할 때가 됐다
지난 25일 재래시장 노점상인 몇이 홍성군의회 김원진의장을 찾았다.

"홍성군청은 전통 시장 현대화 사업을 한답시고 하루 아침에 시장 상인들을 서로 적으로 만들었다. 수십 년 간 한 곳에서 밥 벌어먹고 살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막무가내로 몰아내면 우리들은 이제 어디 가서 뭘 먹고 사냐"라며 호소했다.

과일전을 하던 오창세씨는 "군민들에게 미안해서 고개를 들지 못하겠다. 컨테이너 상인들은 노점상이 앉지 못하도록 이중, 삼중으로 좌판을 깔았고 길이 좁아 불편해 군민들에게 민폐를 끼치고 있다는 걸 알지만 죄인처럼 수십 년 간 장사를 한 그 자리를 지키려고 서 있다. 정말 미안하다"라고 말하며 눈물을 보였다.

"혈압약을 먹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다. 잠도 안 오고 이게 무슨 짓인가? 속이 상해 눈물만 나온다"며 생선전 김성자씨는 울먹였다.

빵집 김현옥씨는 "40년 동안 지켜 온 자리를 하루 아침에 나가라 하니 납득이 가나? 우리가 화가 난 건 군에서 대책을 마련해 주기는 커녕 뭐라 얘기 한마디조차 없었다는 것이다. 새벽에 갑자기 컨테이너가 들어왔고 컨테이너 장옥상인들과 노점상들은 새벽마다 전쟁을 치렀다. 그래도 군에서는 그저 남의 집 불구경이었다. 상인들끼리 싸움을 붙여 놓고 니들끼리 알아서 하라는 행정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인가"라며 울분을 토했다.

이에 김원진의장은 "군은 시장의 생리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 그저 책상에 앉아서 행정을 하려니 무능하다는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 이런 말도 안 되는 행정은 있을 수가 없다. 시장 현대화 사업은 사실 손대면 손해 볼 것이라 경고했다. 설계변경으로 2000만원이든 4000만원이든 예산이 더 들더라도 처음부터 책임있는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제는 군수가 직접 나서서 정리를 해야 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임시시장 위치와 노점상 방치, 문제 발단
임시시장 설치와 관련하여 노점상을 포함한 시장 상인들과 군청과의 객관적인 협의의 장도 없었고, 특히 노점상을 위한 대안 마련이 없었다는 점이 문제를 더욱 키웠다. 임시시장의 위치나 컨테이너 설치와 관련해서 끊임없이 민원이 제기됐는데도 군청은 신속한 대응을 하지 못했다.

민원이 계속 되자 지난 29일 홍성군에서는 시장 안 '홍성토기' 앞쪽으로 현재의 사업지구 내 일부를 정비하여 임시로 노점상인들을 이주하도록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관련 담당자는 "어떠한 장소를 정해 노점상들을 이주시킨다 하더라도 노점상들은 자신이 장사를 했던 곳을 고집할 것이다. 한 마디로 목이 좋은 곳에만 몰려들 것이다. 암묵적으로 서로 자리를 사고팔고 하는 행위도 여전히 형성될 것이며, 군에서 어떤 대안을 내놔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앞으로 시장이 완공된 이후라도 노점상 정리는 진통을 겪을 것이다. 노점상들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안이다"며 입장을 전했다.

결단력 있는 군의 강한 행정력 기대
한편 시장에서 만난 컨테이너 상인 김정순(순이네 식당ㆍ63)씨는 "몇 십 년 사용한 거주지를 빼앗기는데 가만히 있을 사람이 누가 있나? 우리 집 앞에는 과일을 파는 노점이 있다. 요즘 장날이면 둘다 서로 미안해하며 장사를 한다. 특히 공무원들의 태도에 화가 난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했는데 군민들 세금 받아먹고 사는 사람들이 고개 빳빳이 들고 나와 빙빙 돌며 이것 치워라, 저것 치워라 하는데 정말 화가 난다. 부여 같은 경우는 미리 노점상들이 장사할 곳을 마련해주고 현대화 사업을 시작했다. 반면 홍성군은 일절 상인들한테 협조를 구하지 않았다. 현재 컨테이너는 임시시장일 뿐이다. 그렇다면 노점상도 컨테이너 상인도 도로가 비좁아 많이 복잡해도 서로 조금 양보하고 같이 사는 길을 찾았으면 한다. 함께 먹고 살아야 하지 않나? 하루아침에 밥통을 끊어 놓으려고 하면 안 된다"고 하소연을 한다.

한편 철거가 진행되고 있는 사업지구 내에는 아직도 몇 가구가 이전을 하지 않아 건물을 철거하지 못하고 있다.

창신냉동 김창수(상인회 회장)씨는 "컨테이너를 배정받았지만 옮길 엄두가 안 난다. 상인회 회장으로서 가게 앞 노점상들과 서로 싸울 수도 없고, 일단 군에서 정리를 해 주지 않는 이상 철거를 허락할 수 없다"며 군이 나서서 상인들과의 갈등을 조속히 해결해 줄 것을 건의했다.

장옥상인들이든 노점상인들이든 하나같이 책임 있는 군수의 행정력과 리더십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제는 정말 홍성군이 발 벗고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라고 입을 모았다.

거친 손으로 소박한 삶을 파는 사람들
대형마트에 밀려 이제 장터는 쇠퇴하고 말 것이라고 말들 하지만 장날이 되면 어김없이 시장 한켠에는 곡식이며 채소, 과일, 생선들을 바리바리 들고 나온 어머니들이 있다. 얼굴엔 주름이 깊이 패고 마디마디 굵어지고 거친 손으로 좌판을 펴고 하루 온 종일 그 자리를 지킨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개발과 발전이라는 명목으로 파헤쳐지고, 쫓겨나고 다시 새로운 무언가로 채워지고 메워진다. 현대화되고 편한 것만이 전부는 아닐 것이라는 아쉬움이 있다.

"누구 하나 죽어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으려나…"라고 말하는 상인들의 하소연이 귓전을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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